경자년, 울고 웃는 쥐띠 회장님들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0.01.23 10:00
  • 호수 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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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띠 총수 중 상당수가 가족 문제로 곤욕

경자년(更子年) 하얀 쥐의 해가 밝았다. 동양철학에서 쥐는 부지런하고 신중하면서도 재치 있고 민첩한 성격을 가진 동물로 평가된다. 그중에서도 흰쥐는 지혜와 힘을 상징한다. 경영자가 갖춰야 할 덕목을 모두 갖춘 셈이다. 그렇다면 국내 재벌가에 쥐띠 총수는 누가 있을까.

위부터 허창수 전경련 회장,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정몽진 KCC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 ⓒ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
위부터 허창수 전경련 회장,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정몽진 KCC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 ⓒ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

1948년생 박찬구·허창수 회장이 ‘맏형’

현역 쥐띠 중 맏형은 1948년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과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다. 먼저 박 회장은 경영난에 빠진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달리 그룹을 잘 이끌어오고 있다. 무리한 사업 확장보다 내실을 중시하는 경영 스타일을 고수해 온 결과다. 주력 계열사인 금호석유화학은 석유화학업계 불황에도 홀로 미소를 짓고 있다. 대부분 석유화학업체들이 에틸렌 가격 하락으로 어닝쇼크를 기록하고 있는 반면, 금호석유화학은 합성고무 부문 호조로 상당한 실적을 올리고 있다. 특히 2018년 연결 영업이익이 2017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하며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올해도 웃을 것으로 보인다. 천연고무 가격 상승으로 합성고무가 대체재로 주목받으면서 금호석유화학이 생산하는 부타디엔고무(BR)나 스티렌부타디엔고무(SBR) 등 제품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여기에 지난해 8월부터 생산량을 늘려 가동한 NB라텍스 공장 증설의 효과도 올해부터 금호석유화학 수익에 반영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허 회장은 지난해 12월 15년간 유지해오던 GS그룹 회장직을 내려놓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지휘봉은 막내 동생인 허태수 GS그룹 회장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허 회장은 올해에도 여전히 재계에 머무를 전망이다. 전경련 회장으로 2021년 2월까지 임기를 마무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2011년부터 시작해 역대 최장인 임기 10년을 채우게 된 것이다. GS그룹 회장직을 내려놓았음에도 허 회장의 어깨는 여전히 무겁다.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전경련의 위상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허 회장은 올해 전경련 회장 임기 마지막 해를 맞아 추락한 전경련의 위상을 회복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1960년생 쥐띠 중에는 정몽진 KCC 회장이 눈에 띈다. 그는 지난해 말 동생인 정몽익 KCC 수석부회장과의 계열분리를 마무리 지었다. KCC를 중심으로 한 실리콘·도료 사업은 정몽진 회장이, KCC글라스를 통한 유리·건축자재·인테리어 사업은 정몽익 수석부회장이 각각 나눠 맡는 구도다. 정몽진 회장은 새 체제로 출범한 ‘뉴(New) KCC’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현재는 기존 실리콘 사업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이를 위해 최근 세계 3대 실리콘 업체 중 하나인 미국 모멘티브를 30억 달러(3조5139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이 회사 인수를 계기로 KCC는 향후 해외 사업에 무게를 실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도 1960년생 쥐띠다. 그는 지난해 주력 계열사인 제주항공을 궤도에 올려놓는 데 집중했다. 저비용항공사(LCC)의 난립으로 업체 간 경쟁이 점차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채 총괄부회장은 제주항공의 항공기 보유 대수를 늘리고 예약 발권, 예매 홈페이지 등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제주항공은 LCC업계의 굳건한 1위 자리를 지켰다. 여기에 지난해 말에는 이스타항공을 인수하며 시장 재편에 시동을 걸기도 했다.

‘백화점업계 라이벌’로 통하는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과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1972년생 동갑내기 쥐띠다. 나이 외에도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젊은 나이부터 경영수업을 시작해 현재 백화점사업을 담당하고 있으며,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은둔형 경영자’로 분류된다는 점도 같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업계로부터 경영능력을 인정받는 경영인이라는 점이 닮아 있다. 정 총괄사장은 온라인쇼핑의 발달로 백화점업계가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대형화·고급화 전략으로 지난해 영업이익 상승세를 이어가는 등 괄목할 성과를 냈다. 또 2015년 뒤늦게 진입한 면세점사업 부문에서도 신세계면세점을 ‘빅3’ 반열에 올려놓는가 하면, 신세계인터내셔날의 화장품 브랜드 비디비치의 매출을 인수 7년  만인 지난해 100배 이상 성장시키기도 했다. 정 회장도 VIP 전략을 중심으로 현대백화점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정 회장은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렌털·가구·면세점사업 등 신사업 분야에 진출해 시장에 안착시켰다.

위부터 이재현 CJ그룹 회장,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
위부터 이재현 CJ그룹 회장,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

1960년생 이재현·최태원 등도 수난

쥐띠 회장들 가운데 웃지 못할 상황에 처한 이도 적지 않다. 1960년생 쥐띠인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등은 모두 가족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우선 이재현 회장의 경우 최근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이 대마초 밀수 혐의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이 부장은 2013년 CJ제일제당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아왔으며 최근에는 지분 승계 작업도 진행돼 왔다. 이런 가운데 마약 사건으로 시장에 경영능력을 입증하기도 전에 이 부장은 대내외 불신을 사게 됐다. 현재 이 부장은 지난해 10월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풀려난 상태다. 그러나 재판이 올해까지 이어지면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진행된 2심에서 검찰은 이 부장에게 징역 5년을 구형한 상태다.

여기에 이 회장은 계열사들의 전반적인 부진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실제 CJ CGV는 해외투자 실패로 막대한 손실이 발생, 이를 수습하기 위해 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 법인의 지분 정리 작업을 벌이고 있다. CJ푸드빌도 2018년 말 부채비율이 1004.6%(부채 5524억원)까지 치솟는 등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푸드빌 내에서 유일하게 안정적인 수익을 내오던 투썸플레이스 지분을 매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CJ제일제당은 미국 냉동식품업체 쉬완스 인수 등 무리한 M&A로 부실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런 부실 해소를 위해 CJ그룹은 현재 불필요 자산 매각을 통한 재무 건전성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부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세기의 이혼소송’을 벌이고 있다. 당초 합의 이혼을 시도했지만 무산되면서 2018년 7월부터 이혼소송을 시작했다. 노 관장은 이혼소송이 시작된 이후부터 계속해서 이혼을 반대하는 입장을 지켜왔지만 지난해 12월 태도를 바꿨다. 이혼에 찬성하는 대신 위자료와 함께 최 회장이 보유한 SK(주) 지분 42.3%에 대한 재산분할을 요구한 것이다. 노 관장이 요구한 SK(주)의 지분 가치는 12월24일 종가 기준으로 1조4380억원에 달한다. 재판 결과에 따라 최 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태영 부회장은 동생 남매와 가족 간 분쟁을 벌이고 있다. 부친인 정경진 종로학원(현 서울PMC) 설립자로부터 물려받은 상속재산을 두고서다. 갈등이 시작된 건 정 부회장의 여동생인 정은미씨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비리 의혹을 폭로하면서다. 그는 정 부회장이 부친으로부터 서울PMC 지분을 증여받은 뒤 위·편법을 동원해 자신의 지분을 늘렸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또 정 부회장이 출근도 하지 않으면서 거액의 월급과 상표권 로열티를 지급받아 왔으며, 임의대로 회사 주요 자산을 매각했다고도 했다. 이를 두고 정 부회장과 정은미·해승 남매는 소송을 주고받으며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MB 사위’ 조현범 사장 횡령 혐의로 구속

1972년생으로 현역 쥐띠 중 최연소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위로 잘 알려진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이다. 그는 현재 개인비리로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다. 하청업체에서 납품을 받게 해 주는 대가로 6억원 안팎의 뒷돈을 챙기고, 2억원 가량의 계열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와 관련해 지난해 11월 구속기소된 것이다.

조 사장에 대한 수사는 서울지방국세청 특별 세무조사에서 비롯됐다. 국세청은 조사 중 비리 혐의를 포착해 조세범칙조사로 전환했고, 이후 한국타이어를 검찰에 고발했다. 국세청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조 대표의 개인비리 혐의를 인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일로 조 사장은 올해 설을 구치소에서 보내야 할 처지가 됐다.

(왼쪽부터)정상영  KCC 명예회장,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 시사저널 임준선·연합뉴스
(왼쪽부터)정상영 KCC 명예회장,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 시사저널 임준선·연합뉴스

‘최고참·막내 쥐띠’ 경영인은 누구?
정상영 KCC 명예회장·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최고령’…김동준·서진석은 1984년생'

쥐띠인 재벌 총수 일가 경제인 중 최고령은 1936년생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이다. 두 사람은 현재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난 상태다. 정 명예회장은 일찍이 장남 정몽진 KCC 회장과 차남 정몽익 KCC 수석부회장, 삼남 정몽열 KCC건설 사장 등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이후 그는 사회공헌활동에 전념하면서 은퇴한 경영자의 좋은 예를 만들고 있다. 실제 정 명예회장은 그동안 청년희망펀드와 안성시민장학회, 동국대학교, 울산대학교,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위원회 등에 수십억원의 사재를 출연해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회장도 ‘회장’ 타이틀을 달고 있긴 하지만 이미 오래전 일선을 떠났다. 그러나 올해 장 회장은 마음이 편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녀들과 사위가 크고 작은 논란에 휘말려 있기 때문이다. 최근 삼남인 채승석 전 애경개발 대표가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한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회사 경영을 내려놨다. 또 사위 경영인이던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는 현재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중이고, 차남 채동석 애경산업 부회장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대한 총수 일가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국회 보좌관 출신을 브로커로 고용하도록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막내 쥐띠는 1984년생이다. 아직 30대의 젊은 나이지만 경영 최전선에 나선 이도 있다. 김동준 키움인베스트먼트 대표와 서진석 셀트리온 수석부사장이 그런 경우다.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김 대표는 2009년 삼일회계법인에 입사해 사회에 첫발을 디뎠고 2014년 계열사인 다우기술 사업기획팀 차장으로 입사하면서 그룹에 합류했다. 이후 고속승진을 거듭한 결과 2018년 3월부터 키움인베스트먼트를 이끌어오고 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의 장남 서진석 수석부사장도 2017년 셀트리온스킨큐어 대표에 오르면서 일선에 모습을 드러낸 데 이어 지난해 4월부터는 셀트리온 제품개발부문장(수석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밖에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의 장남 이규호 코오롱인더스트리 전무와 구자철 예스코 회장의 장남 구본권 LS니꼬동제련 상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차녀 정영이 현대무벡스 차장 등 1984년생 쥐띠들은 현재 경영수업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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