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연쇄살인범 그후] 보험금에 눈멀어 가족 3명 독살한 주부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23 14:00
  • 호수 158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편 두 명과 시어머니 살해하고 딸은 미수에 그쳐…숨진 남편 재산 상속 놓고 법적 다툼도

경기도 포천에 사는 노아무개씨(여·46)는 평범한 주부였다. 그는 1991년 12월 사업가인 김아무개씨(45)와 결혼해 1남1녀를 낳았다. 한때 남편의 사업이 호황을 누리면서 노씨는 ‘사모님’ 소리를 들으면서 풍요롭게 살았다.

하지만 잠시였다. 남편의 사업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부부 사이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노씨는 남편의 돈벌이가 시원치 않아 늘 불만이었다. 사치 욕구와 허영심을 채울 수 없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다. 남편의 사업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빚 때문에 부동산이 압류될 위기에 처했다.

남편 김씨는 재산을 지키기 위해 ‘위장 이혼’을 결심한다. 포천 신북면에 있던 부동산을 위자료 명목으로 노씨에게 명의 이전했다. 이후 부동산을 처분했고, 이 중 3억5000만원은 시어머니 채아무개씨(91)에게 주기로 했다. 노씨도 여기에 동의했지만 매각이 이뤄진 후에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전남편 김씨는 “돈을 내놓아라”며 다그쳤지만 노씨는 처음부터 돈을 줄 마음이 없었다. 그는 시어머니에게 줘야 할 돈을 가로채기 위해 서류 위조까지 서슴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자신과 전남편 사이의 딸과 아들에게 증여하는 것처럼 사실확인서를 위조한 것이다. 김씨는 “이건 가짜”라며 계속 돈을 요구했다.

결국 노씨는 남편과 시어머니를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2011년 5월2일 노씨는 전남편을 찾아갔다. “마실 것 좀 사 왔다”며 음료수(알로에)를 냉장고에 넣어뒀다. 이건 보통 음료수가 아니었다. 노씨는 여기에 맹독성 농약인 제초제 ‘그라목손’(파라콰트)을 섞었다. 위장을 하기 위해 같은 색의 음료수를 골랐을 정도로 치밀했다.

ⓒ  일러스트 오상민
ⓒ 일러스트 오상민

음료수와 음식에 농약 넣어 살해

얼마 후 시어머니 채씨는 무심코 냉장고에 있던 음료수를 꺼내 입에 넣었다. 역겨운 냄새가 나자 삼키지 않고 그대로 뱉어내면서 화를 면했다. 하지만 전남편 김씨는 노씨의 덫을 피해 가지 못했다. 5월9일 새벽, 김씨는 전날 마신 술 때문에 목이 말랐다. 그는 냉장고를 열어 음료수가 있는 것을 보고는 그걸 들이켰다. 곧이어 복통을 일으켰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사망했다. 사인은 폐렴이었다.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당시 방에서는 농약 성분이 들어 있는 500mL 음료가 발견됐다. 가족들은 평소 김씨가 “사업 부진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실제 김씨는 7000만원의 사채를 사업자금으로 끌어다 썼지만 이를 갚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었다. 경찰은 별다른 타살 혐의점이 보이지 않자 신병을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노씨는 미성년자 아들(17)을 대리해 김씨 명의로 가입됐던 생명보험 9개에서 4억5000만원을 타냈다. 보험에 가입한 지 오래됐다는 이유로 보험사들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시어머니 채씨도 얼마 후 숨지면서 노씨는 남편의 부동산 매각대금까지 독차지할 수 있었다. 노씨의 첫 번째 살인은 이렇게 쉽게 성공했다.

그의 살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첫째 남편을 살해한 지 1년 뒤 그는 지인의 소개로 만난 이아무개씨(43)와 재혼했다. 결혼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이씨의 어머니 홍아무개씨(79)는 총각인 아들이 애가 둘이나 딸린 이혼녀와 결혼하는 것을 극구 반대했다. 하지만 노씨가 임신을 하자 더는 결혼을 막을 수 없었다. 2012년 3월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하고 정식 부부가 됐다. 같은 해 11월말 노씨 부부는 홍씨를 모시고 살게 됐다. 노씨는 결혼을 반대한 시어머니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다.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고 이것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약 한 달 후 노씨는 “어머니 이거 몸에 좋은 것이니 드세요”라며 박카스를 건넸다. 며느리가 주는 것을 마신 홍씨는 복통을 호소했지만 노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기지 않았다. 결국 홍씨는 급성 폐렴으로 사망했다. 노씨가 건넨 박카스에 제초제 그라목손이 섞여 있었던 것이다. 이씨의 가족들은 연세가 많아 자연사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노씨는 두 번째 살인도 성공할 수 있었다.

범죄는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한다고 했다. 한 번 시작된 살인은 중독성이 강해 두 번, 세 번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노씨는 두 번째 살인까지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자 더욱 자신감을 가졌다. 그는 재혼한 남편까지 살해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짰다. 이번에는 밀가루에 그라목손을 섞고 반죽해서 말린 후 가루로 만들었다. 2013년 4월, 노씨는 김치찌개를 끓이면서 농약 밀가루를 조미료처럼 넣었다. 그라목손의 특징은 생선 썩는 듯한 퀴퀴한 냄새가 나고 짙은 초록색을 띤다는 것이다. 노씨는 냄새와 색깔을 감추기 위한 음식물을 고르다가 김치찌개를 선택했다.

그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남편을 서서히 죽게 만들었다. 그라목손은 한 번에 마시면 식도까지 화상을 입을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소량을 여러 번 섭취하면 장기가 조금씩 망가진다. 노씨는 한꺼번에 많은 양을 넣지 않고 여러 차례에 걸쳐 조금씩 섞어 넣는 방법으로 남편을 그라목손에 중독시킨 것이다.

시어머니가 숨진 지 7개월쯤 지난 2013년 8월 중순, 남편 이씨가 사망한다. 사인은 폐렴이었다. 노씨는 한 살배기 아들 대신 5억3000여만원의 사망보험금을 대리 수령했다. 노씨의 네 번째 범행이었고, 세 번째 살인이었다. 병원 치료 중 지병으로 숨진 것으로 처리돼 수사기관에는 아예 통보되지 않았다.

그의 다섯 번째 희생양은 자신이 낳은 친딸(20)이었다. 2014년 여름, 노씨는 농약을 섞은 밀가루를 음식물에 넣은 후 딸에게 먹였다. 딸은 세 번이나 복통으로 쓰러져 병원을 찾았다. 노씨는 딸의 입원보험금 700만원을 수령했다. 그는 두 남편과 시어머니를 죽이고 딸을 다치게 해서 10억원이 넘는 돈을 챙겼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기 마련이다. 잇따른 가족의 죽음에 의심을 품은 사람이 있었다. 두 번째 남편의 누나였다. 그는 남편이 죽었는데도 슬퍼하는 기색도 없이 돈을 물 쓰듯 하는 올케를 수상하게 생각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동생의 죽음도 석연치 않았다. 멀쩡하던 동생이 갑자기 사망한 것도 그렇고 어머니와 같은 ‘폐렴’이라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더욱이 병원에서는 농약 중독으로 의심된다는 말까지 들었다. 당시 이씨는 직접 농사를 짓지 않았고, 어린 아들까지 둔 상황에서 스스로 농약을 마시고 자살할 이유가 없었다. 누나 이씨는 보험사에 찾아가 보험금 수령 여부를 알아봤더니 올케가 찾아간 것으로 나왔다.

누나 이씨를 상담한 보험사 직원도 가족들이 연이어 죽었다는 말에 의문이 들었다. 그는 노씨가 가입한 보험 상품과 보험금 지급 내역을 꼼꼼히 살펴봤다. 겨우 2년 만에 남편 둘이 죽었고, 거액의 보험금을 탔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경찰에 보험금을 노린 범죄가 의심된다고 신고했다. 경찰도 관련 서류를 검토하고 내사에 들어갔다.

보험금을 노리고 전·현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맹독성 제초제를 먹여 살해한 혐의로 노아무개씨가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보험금을 노리고 전·현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맹독성 제초제를 먹여 살해한 혐의로 노아무개씨가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매장된 시어머니 시신에서 농약 검출

경찰은 숨진 노씨의 전남편과 두 번째 남편, 시어머니의 병원 진료기록을 확보해 분석했다. 사인이 하나같이 ‘폐렴’인 것에 경찰의 의심은 더욱 깊어갔다. 경찰은 진료기록과 사망진단서를 들고 독극물 중독치료 분야 권위자인 순천향대 의과대학 홍세용 교수를 찾아갔다. 그는 “그라목손 성분 때문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소견을 냈다. 홍 교수는 “시신을 부검해 보면 농약 성분이 검출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숨진 세 명 가운데 남편 두 명은 이미 화장했고, 시어머니 홍씨만 매장된 상태였다. 경찰은 유족을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고 부검 동의를 얻어냈다. 이제 홍씨의 시신을 부검하면 독살 여부를 가릴 수 있게 됐다. 경찰은 분묘 전문가를 동원해 홍씨의 시신을 관에서 꺼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통해 부검을 실시했다. 결과는 홍 교수가 말한 그대로였다. 홍씨의 몸에서는 그라목손이 검출됐고, 독살당했다는 것이 확인됐다.

2015년 2월28일 오전 7시, 경찰은 노씨를 존속살인과 상해, 보험사기 등의 혐의로 체포했다. 그의 집을 압수수색해 냉장고 위에 있던 그라목손을 찾아냈고, 장독대 뒤에서 농약이 섞인 밀가루 반죽도 발견했다. 집 안에서 증거물까지 나오자 노씨는 체념한 듯 범행 일체를 털어놨다. 그는 “이제라도 잡혀 범행을 멈출 수 있게 돼 오히려 다행”이라는 말도 했다.

자칫 완전범죄가 될 뻔했던 끔찍한 ‘농약 연쇄살인’은 이렇게 세상에 드러났다. 범행 동기는 ‘돈’이었다. 재판에 넘겨진 노씨에게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지만 1, 2심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10년간 위치추적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내렸다. 노씨가 살해하려고 했던 딸은 “엄마를 용서한다”며 재판부에 탄원서까지 제출했다. 노씨가 상고를 포기하면서 무기징역이 그대로 확정됐다.

노씨에 대한 법적 판단은 끝났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다. 재혼한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 살 배기 아들은 노씨의 친권이 박탈되면서 아동보호시설에 맡겨졌다. 숨진 남편의 재산 상속을 놓고 법적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노씨는 돈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어린 아들의 상속 후견인으로 전남편의 20대 아들을 지정했다. 이에 대해 유족들은 “노씨가 전남편 아들과 재혼한 남편 아들 모두 살인자의 자식이니 이들끼리 똘똘 뭉쳐서 살게 해 달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명품 쇼핑’ 등 보험금으로 호화생활 즐겨

노씨는 두 명의 남편을 살해한 후 10억원대의 보험금을 챙겼다. 이 돈은 노씨가 호화생활을 하는 밑천이 됐다. 그는 흥청망청 돈을 쓰기 시작했다. 고급 승용차를 구입하고 골드바 21개를 샀다.

백화점에서 하루 수백만원씩 명품 쇼핑을 하면서 VIP 대접을 받았다. 겨울에는 스키장 회원권을 이용해 스키를 즐겼다. 자전거 동호회 활동을 위해 2000만원 상당의 고급 자전거를 구입하기도 했다. 현금이 부족하다 싶으면 ‘골드바’를 내다 팔았다. 검거 당시 그의 집에서는 각종 명품이 쏟아져 나왔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