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붙은 ‘스카우트 전쟁’…한발 앞선 민주당에 애타는 한국당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1.2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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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양정철·최재성·백원우 주도 ‘인재 영입’ 속도전
한국당, 판세 돌릴 ‘반전 인사’ 영입에 성공할지 주목

“판사, 검사, 군인, CEO, 박사 죄다 저기(민주당)로 갔잖아.”

자유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실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진행 중인 ‘인재 영입’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보수당이 주도해야할 경제·안보·사법 관련 전문가들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먼저 내어준 게 패착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어 “(황교안) 대표가 민주당의 인재 영입을 보고 쇼라고 하는데, 우리 영입 인재 기준은 그럼 뭐냐고 한 번 되묻고 싶다”며 “감동도 파격도 실리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총선이 불과 10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 간 스카우트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23일까지 민주당은 12명, 한국당은 7명의 인재 영입을 발표한 가운데, 기선은 민주당이 잡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법조계, 학계, 금융계 등 각 분야를 포괄하는 인재들을 연이어 영입하며 시선을 모으고 있다. 반면 한국당은 인재 영입의 속도와 무게감 모두에서 밀리고 있다는 불만이 당 내부에서부터 팽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태호엄마’ vs 한국당 ‘이미지 전문가’

더불어민주당이 ‘12호 인재’로 영입한 이소현씨(37)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12호 인재’로 영입한 이소현씨(37) ⓒ연합뉴스

 

설 연휴를 앞둔 23일 민주당과 한국당은 나란히 새로운 영입 인재를 발표했다. 민주당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어린이 생명안전법안 개정을 정치권에 호소해온 ‘정치하는 엄마들’ 중 한 명인 이소현씨(37)를 영입했다”고 소개했다.

이씨는 지난해 5월 인천 송도 축구클럽 차량사고로 아들 태호(당시 8세)군이 숨지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이씨는 이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과 함께 어린이를 태워 운행하는 차량을 ‘어린이 통학버스 신고대상’에 포함하고, 동승자의 좌석 안전띠 착용 확인과 안전운행기록 작성을 의무화하는 등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 이른바 ‘태호·유찬이법’ 발의를 이뤄냈다. 이 법은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이씨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같은 불행을 겪은 엄마들과 국회를 수도 없이 오갔다”며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치, 아이들의 안전보다 정쟁이 먼저인 국회를 보며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입당 소회를 밝혔다.

 

자유한국당이 ‘7호 인재’로 발표한 ㈜예라고 대표 허은아씨(47) ⓒ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이 ‘7호 인재’로 발표한 ㈜예라고 대표 허은아씨(47) ⓒ연합뉴스

같은 날 한국당은 ‘7호 인재’를 발표하며 맞불을 놓았다. 한국당이 내세운 인재는 이미지 전략가 ㈜예라고 대표 허은아씨(47)였다. 허씨는 정치인과 기업 임원을 대상으로 '퍼스널 브랜딩 코칭'을 해온 이미지 컨설팅 분야의 전문가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이미지 컨설팅 분야의 국제 인증 학위 CIM(Certified Image Master)를 취득하기도 했다.

허씨는 "현재 대한민국 정치 현실은 답답하다. 한국당이 제1야당으로서 여·야라는 정치 양 날개를 균형있게 견제하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그간의 영입 인사들을 보며 한국당에 변화 의지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앞으로 한국당을 진정성 있는 이미지로 바꿔나가겠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공감하고 소통하는 당의 이미지를 갖추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국당만의 색이 보이지 않아”

양당 모두 20명 안팎의 인재 영입을 예고한 가운데, 민주당이 먼저 반환점을 돌았다. 민주당 인재영입위원회는 이해찬 대표 주도로 인재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이 대표는 최종 면접에 참여할 뿐, 후보 추천이나 미팅 등은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최재성 의원, 백원우 민주연구원 부원장 3명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는 인재 영입 과정에 큰 잡음은 나오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각계각층에서 인재를 모아오는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이 23일까지 발표한 인재들의 출신 이력을 살펴보면 △교수 2명 △경제 전문가 및 CEO 3명 △군인 1명 △법조인 3명 등이다. 이들은 ‘스토리’ 보다 실무에 방점이 찍힌 인재로 평가받는다. 이 외 태호엄마 이소현씨를 비롯, 대기업 사원 출신의 ‘느낌표 청년’ 원종건씨(27), 전 중앙119구조본부 소속 항공대원 오영환씨(31) 등은 스토리를 내세운 인재로 꼽힌다.

한국당이 23일까지 발표한 인재는 탈북자 인권운동가 지성호씨(39)와 '체육계 1호 미투'로 유명한 전 테니스 선수 김은희씨(29), 극지탐험가 남영호씨(43), 공익제보자 이종헌씨(47), 경희대 객원교수 김병민씨(37),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통일연구센터장(49), 그리고 ㈜예라고 대표 허은아씨다. 앞서 '공관병 갑질 논란'으로 비판받았던 박찬주 전 육군대장의 선례를 밟지 않기 위해, 평판 조회 과정을 꼼꼼히 거친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에서는 현재까지는 민주당의 인재 영입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분위기다. 당장 한국당 내부에서조차 민주당에 스포트라이트를 뺏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른바 ‘패스트트랙 정국’에 관심이 쏠린 사이, 당이 총선 전략마저 제대로 짜지 못한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내부에 팽배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당 한 의원은 “(영입 인재를) 봤는데 능력보다는 감성에 치중한 인사가 아닌가 싶다”며 “문제는 뭔가 확고한 색이 없다. 보수정당으로서의 차별성도 내세울 줄 알아야 하는데, 어설프게 (민주당을) 따라 해선 이도저도 안 된다”고 푸념했다.

‘보여주기식 인사영입’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황 대표가 판세를 돌릴 ‘반전 인사’ 영입에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치평론가 김홍국 경기대 겸임교수는 “(한국당이) 박 전 대장에게 기대한 것은 강직하고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군 출신 인사의 이미지였을 텐데 도리어 삼청교육대 논란 등으로 중도층과 젊은 층의 이탈만 낳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한국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보수 결집만으로는 힘들다. 예상을 벗어나는 참신한 인사를 영입해야지, (박 전 대장과 같은) 인사를 고집하다가는 무엇보다 당내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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