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문율 1층 상가’에 대한 선호는 왜 낮아지나[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06 08:00
  • 호수 1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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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의 위축과 붕괴가 ‘도시 공간 변화’에 미치는 영향

사람들로 넘쳐나던 상권이 어느 순간 텅 비어가고 있다. 질병이 가져온 흉터처럼 ‘임대 문의’라는 안내문을 달고 있는 상가들은 점점 늘고 있다. 전통 상권이든, 새로 유명해진 곳이든 관계없이 대부분 상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래시장과 같은 특정한 형태의 상권이나 특정 업종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 자체의 상권이 붕괴하고 있다.
 
큰 파도가 도시의 상권에 몰아닥치고 있다. 한동안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는 급등했다. 기존 상인들이 감당하지 못하고 떠나고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만 남게 된다. 그렇게 지역 내 다양성이 저해된다. 흥미를 잃은 소비자들은 더 이상 해당 지역을 찾지 않게 된다. 결국 한 지역의 상권은 쇠퇴하게 된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소규모 상가(주 용도가 상가 등인 2층 이하․연면적 330㎡ 이하인 일반건축물)의 2019년 2분기 공실률은 5.54%였다.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017년 1분기 3.93%로 최저를 기록한 이후 계속 상승해 2018년 2분기 5.25%로 집계된 이후 5% 이하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중대형 상가(주 용도가 상가 등인 3층 이상․연면적 330㎡ 초과인 일반건축물) 공실률의 경우 2019년 2분기 11.4%로 지난 5년간 분기별 조사에서 최고치를 기록했다. 

1월29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 건물 1층이 비어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1월29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 건물 1층이 비어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지역 내 다양성 해치는 젠트리피케이션

여러 이유가 있다.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감소, 52시간제 도입에 따른 주 이용객 행태변화와 더불어 젠트리피케이션 등이 그 배경으로 거론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단기적 탐욕으로 상권을 망칠뿐만 아니라 건물주-세입자간의 불평등한 갑을관계의 대명사로 꼽혀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권리금 보장을 위한 법률적 장치가 강화되고 있으며, 임대료 상승을 통제하기 위한 지자체의 중재 및 개입도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상권들은 급속한 쇠퇴를 겪고 있으며, 회복의 조짐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차별화의 실패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과거 특정 지역에서만 경험할 수 있던 것들을 이제는 어느 지역에서나 비슷한 수준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표준화된 프랜차이즈의 확대와 더불어 소규모 음식료업종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특정 지역에 대한 충성도가 낮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급속한 취향의 변화를 거론하기도 한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SNS를 통해 새로운 유행이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형성되었다가 급속하게 사그라지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특정 지역이 뜬다는 이야기에 해당지역으로 진입해보지만 단기간에 트렌드가 변화한다. 기대했던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철수하면서 해당 지역이 폐허로 되는 양상이 빈발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인터넷 기반 상거래의 보편화와 각종 배달앱의 보급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9년 11월 온라인쇼핑 규모는 총 12조7576억원에 달한다. 이는 전년 동월 대비 2조1462억원이 늘어난 수치다. 무려 20.2%가 증가했다. 특히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의 경우 전년 동월 대비 28%가 증가하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각종 배달앱 이용이 보편화되면서 음식 서비스의 경우 1년 사이에 100.3%라는 믿기 힘든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런 흐름이 지속되면서 많은 업종에서는 ‘높은 임대료를 내면서 상권에 매장을 개설 또는 유지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됐다. 결과적으로 불문율처럼 생각되던 ‘1층 상가’에 대한 선호가 급속히 낮아지고 있다.

여기에 1인 가구의 증가, 대형 유통업체 및 식품업체의 가정간편식 개발·보급이 이어지면서 최소한의 기본 수요마저 감소하는 경향이 관찰되고 있다. 심지어 업무지역에서도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구입하여 혼자서 점심을 해결하는 경우가 늘면서 식음료업체들의 어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배달앱으로 대표되는 전자상거래의 그림자

대규모 상권지역뿐만 아니라 동네 상권 역시 큰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새벽배송으로 대표되는 신선 유통업의 확대와 더불어 세탁 등 전통적인 동네업종으로 분류되던 것에 대해서도 앱을 통한 집중화가 이뤄지고 있다. 필요한 대부분의 일을 스마트폰 앱으로 처리함에 따라 동네상권을 방문하는 빈도는 급속히 줄고 있다.  

이러한 상권의 축소와 붕괴는 도시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주택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나지만 상업적 수요는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주거 임대료의 상승과 상업용 공간의 공실증가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역사적으로 도시는 언제나 상업과 유통 기능을 핵심으로 해왔으며, 그렇게 형성된 상권들은 도시의 상징과 같은 존재였다. 도시 자체의 쇠퇴와 관계없는 상권의 위축과 붕괴는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며, 이러한 현상이 도시의 공간구조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는 모호한 상황이다.

1990년대 이후 아파트 보급에 따라 만들어진 단지 내 상가들이 증가하면서 도시 가로(街路․시가지의 넓은 도로. 일반적으로 교통안전을 위하여 차도와 보도로 구분되어 있다)의 활력을 저해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에 따라 2000년대 이후 조성된 대규모 신도시 및 시가지의 경우 가로를 따라 늘어서는 연도형 상가를 조성하고 있는데 이런 상가들이 공실로 남으면서 오히려 도시의 활력을 더욱 저하시키고 있다. 세종시나 혁신도시와 같은 신도시에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상권의 붕괴로 인한 영향은 그곳에서 경제활동을 영위하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러한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고령자 및 저소득층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 오프라인 매장에서 해결하던 일들을 이제는 온라인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경우가 증가하면서 디지털 격차는 이제 생존의 문제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흐름을 제도나 정책, 규제 등으로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진 ‘○리단길’들의 운명은 시작점인 경리단길과 같을 가능성이 높다. 과거로의 회귀와 복귀를 고민하고 노력할수록 변화하는 사회와 도시의 공간 사이의 거리는 더욱 멀어질 따름이다. 오히려 이러한 흐름을 인정하고 기존 상업지역의 주거-상업 복합지역으로의 전환, 필수적인 업종에 대한 지원과 유지 등을 고민하는 것이 미래의 변화에 도시가 적응하는 길일 것이다. 저소득층과 고령자가 많은 곳의 경우 공공기관에 의한 급식을 포함한 필수업종의 유지를 고민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느 지역이 새롭게 뜰 것인가를 고민하고 따라하는 것은 금방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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