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때 윷놀이, 도박죄 될까 [남기엽 변호사의 뜻밖의 유죄, 상식 밖의 무죄]
  • 남기엽 변호사 (kyn.attorney@gmail.com)
  • 승인 2020.01.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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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 명절 때 윷놀이, 수십만 원 걸면 도박죄가 될 수 있다

경마장 안, 세찬 바람을 가르며 말들이 달린다. 군중의 함성은 하늘을 향해 솟고 모두가 작은 삶을 구겨 쥐며 말발굽만 바라본다.

이해 못할 발음들이 신기하게도 저마다의 숫자를 외치는 찰나 음악은 멈추고 꿈들도 정지된다. 조용히 찢겨 나뒹구는 꿈들을 보며 눈을 감는다. 더러는 비참한 표정으로 꾸깃꾸깃 마권을 접으며 고개를 숙인다. 어릴 적 봤던 경마장의 풍경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 곳엔 존엄하다는 수천 명의 인간이 열 마리의 말에 인생을 건 광경이 존재했고, 월드컵 따위는 가볍게 뛰어넘는 진심을 담은 응원(이라기보다는 집착)이 있었다.

경마장에서 느낀 충격은 당시 오래 지속됐다. 돈을 잃기 위해 돈을 걸면서도 왜 계속 그 사실에 분노하며 계속해서 돈을 거는 걸까. 이유는 간단했다. 그건 도박이었다.

도박은 유희로 즐길 수 있다. 친구끼리 장기 한 판 두며 아이스크림 내기 하는데 법의 잣대로 인신구속을 논하는 것은 지나치다. 하지만 이러한 유희성을 허용함으로 인해 한계는 무한급수로 뻗어나가고 그 광활한 한계 안에 많은 이들이 국가 공인도박장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오늘도 인생을 잃어 간다.

어떤 도박이 합법이고 어떤 도박이 불법인가. 그 위법성의 한계는 형법 제 246조에 근거, 법원이 판단한다. 형법상 처벌받는 도박인지, 일시오락정도에 불과(법조문치고 말도 이상하다)한 놀이인지에 관하여 법원은 몇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① 도박의 시간과 장소 ② 판돈이 얼마인지 ③ 도박하는 자들에게 사회적 지위가 있는지 ④ 재산은 얼마나 있는지 등을 종합하여 결정한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동창들이 사회인이 되어 만나 저녁밥을 걸고 화투를 친다면 그건 일시오락에 불과하다. 흔히들 하는 커피 사기 가위바위보, 판돈2~3만원의 카드놀이도 오락으로 본다.

수십 만 원이면 어떨까. 법원은 수백 억 자산가들이 모여 3시간가량 판돈 60만 원을 걸고 카드놀이를 한 경우 무죄라고 봤다. 하지만 새벽 4시에 모르는 사람들끼리 오직 ‘카드놀이’를 위해 모여 판돈 60만 원가량을 걸고 ‘훌라’를 한 경우에는 유죄로 봤다.

주의할 점은 가진 돈이 없으면 판돈이 적어도 유죄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초연금 9만원을 받아 생활하던 남성이 1점에 50원씩 화투놀이를 한 경우 유죄다. 돈이 많으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법원 나름대로 이렇게 세심하게 정도를 고려해 판단한다지만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인텔리들의 수법은 점점 지능화된다. 사설 도박장이 흥행하고 승부 조작도 빈번하다.

도박은 여타 범죄와 달리 처음부터 당사자 간 합의를 전제로 시작되기에 신고 횟수도 드물다. 이건 비극이다.

도박은 하면 할수록 잃는 게임이다. 확률이 50%인 게임은 없다. 시설과 딜러를 제공하는 측이 ‘커미션’을 몇%가 되었든 가져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확률은 50%보다 낮다. 수학적으로 계산해 봐도 하면 할수록 분모가 분자의 증가속도보다 크기 때문에 잃는 이치는 자명하다.

스포츠 사설 도박장은 배당을 토토스포츠에 근거해 배당률을 계산한다. 원래 한 경기의 승부에 대한 베팅을 모두 모아 전산작업화 시켜 배당을 산출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작업이 아닌데 토토는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여기에 무임승차한 사설 도박장은 토토보다 미량의 배당만 높여 고객들을 끌어 모으고 막대한 커미션을 챙긴다. 이것은 진행형이다.

명절 윷놀이도 판돈 및 관계에 따라 처벌됨은 전술한 바 있다. 그러니까 당신이 고향에 내려가 고향친척의 친구를 소개받아 모르는 사람들끼리 판돈 수십만 원에 달하는 ‘포커’를 하면 도박이 아니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그렇게 처벌하는 국가는 오늘도 열심히 강원랜드를 운영 중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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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지역경제를 위해서, 유희를 위해서였다지만 강원랜드로 인해 가정이 박살나고 한 개인이 파탄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고 그 시나리오 역시 진행형이다.

우리는 이러한 카지노 설치가 설령 막대한 경제적 이득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누가 그 희생자가 될지는 모르는 러시아 룰렛을 돌리는 것에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공동선을 추구하는 데 적합한 행위일까? 이것은 마치 1000장의 제비 중 ‘인생 파탄’의 제비 몇 장을 숨겨놓고 그것을 뽑는 사람 모두가 ‘설마 나는 안 걸리겠지’라며 안도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희생자가 나옴은 자명하다. 개인이 희생자가 될 확률은 적어도 희생자가 수천명이상 나온다는 확률은 100인 것이다.

카지노에서 수억 원을 잃고, 경륜·경마장에서 수천만 원을 잃어도 도박이 아니지만 수십만 원의 판돈이 걸린 ‘훌라’는 도박이 된다. 주식담보대출, 신용․미수 단타로 막대한 돈을 잃어도 이것은 시장경제의 윤활유에 불과하지만 내기 골프는 도박이 된다.

그럼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함은 상식이다. 대체 토토가 왜 필요할까? 경마장이 왜 필요할까? 경마장에 재미로 몇 번 간 경험이 있지만 그들의 “경마는 재미로 해주시고 마권은 10만 원 이하로만 구매해 주십시오”라는 말은 연예대상 수상자가 “다른 사람이 받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말만큼이나 진심이 없다.

경마장이 그 큰 시설과 많은 조교사들과 말들을 운영해 나가려면 결국엔 경마를 ‘도박’으로 생각하고 거액을 잃어주는 사람이 필수적이다. 게다가 경마장은 커미션이 무려 20%가 넘는다. 그러면서도 고객님들은 돈을 조금만 써달라니 이런 인식론적 교사범이 어디 있을까. 경마장은 폐쇄되던가 아니면 정말 개인이 소액을 구입할 수밖에 없게끔 제도적 장치를 강구해야 한다.

스포츠 토토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정말 스포츠 진흥을 위해 꼭 필요할까?

부르디외는 “계획된 문화자본은 서민들을 좀먹고 결국엔 그들을 갉아먹는다. 도박은 그 문화자본이 최악의 형태로 재현된 결과”라고 말했다. 가족들끼리 심심풀이로 화투치다가도 몇 만원 잃는다 싶으면 의가 상할 수도 있는 게 바로 금전이요, 도박인데 그러한 도박을 필요 이상으로 국가가 권장하는 동시에 서민들의 수십만 원 놀이는 처벌될 수 있음은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여태껏 도박중독자, 도박의 폐해에 대해 너무 ‘남일’로 생각해온 것 아닐까? 어느 연예인은 자신이 주식으로 10억 원 이상을 날렸음을 토크 소재로 사용하지만 어느 연예인은 수백만 원의 내기 골프로 퇴출됐다. 사회가 제도에 의탁해 개인에게 사회 운영을 부과할 수 있더라도 그들을 룰렛에 돌려 재원을 뽑아낼 수는 없다. 이 때 요구되는 것이 법이다. 지금도 늦었지만 더 늦어선 곤란하다.

명절 때 윷놀이, 수십만 원 걸면 도박죄가 될 수 있다.

사족: 명절 때 가족들끼리 설령 십 수만 원 판돈을 걸고 화투를 쳐도 사실 처벌되지는 않다. 첫째 신고할 사람이 없을 것이고, 둘째 신고하더라도 20만 원 이하는 실무상 훈방처리를 하며, 셋째 가족들 간에 화투를 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

남기엽 변호사대법원 국선변호인서울지방변호사회 공보위원서울지방변호사회 형사당직변호사
남기엽 변호사
대법원 국선변호인
서울지방변호사회 공보위원
서울지방변호사회 형사당직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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