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더 오만한가’를 심판하는 선거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03 16:00
  • 호수 1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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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 않는 모습으로 외면당한 한국당…정부.여당도 성찰 않는 모습으로 변해

‘예측 가능한 총선은 없다.’ 2012년의 19대 총선, 2016년의 20대 총선 결과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같은 말에 공감할 것이다. 두 선거는 대부분의 예상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아 당시 정국을 뒤흔들었다. 이명박 정부 말기에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제1 야당인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은 지려고 해도 질 수 없다는 선거에서 지고 말았다. 4·11 총선이 치러지던 2012년 초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2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시민단체 세력과의 통합에 이어 통합진보당과의 야권 연대까지 성사시켜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에 대해 판세의 우위를 점했다. 누가 봐도 민주당의 승리가 예견되던 선거였다.

하지만 선거전에 들어가자 정봉주 전 의원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출마한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이 터져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의 더없는 먹잇감이 되었다. 김 후보 공천 철회 요구가 확산되었지만 ‘나꼼수’ 지지층을 의식한 민주당은 그대로 선거를 치렀고 결과는 새누리당 152석, 민주당 127석의 패배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나꼼수 마니아층의 지지만 의식해 물러서지 않는 오만한 모습을 보이다가 전국 선거를 망치는 우를 범했다.

2016년의 4·13 총선 결과 또한 그러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의 불통 통치에도 콘크리트 지지층은 박 대통령의 40%대 지지율을 유지시켜 주었다. 게다가 국민의당 창당으로 야권 분열 구도에 힘입어 새누리당이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역시 지려야 질 수 없는 선거였다.

하지만 그 같은 예상을 깨고 새누리당은 122석에 그쳐 제1당 자리를 더불어민주당에 내주며 참패했고, 여소야대 국회가 만들어졌다. 새누리당에 등 돌린 보수중도층이 대거 국민의당으로 이동한 영향도 컸다. 국민의 눈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벌어진 ‘친박 공천’ 파동이 낳은 결과였다. 박 대통령의 오기와 독선으로 막장으로 치달은 여당의 오만을 유권자들은 단호하게 심판한 것이다.

추미애 신임 법무부 장관이 1월3일 경기도 과천정부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해 취임사를 하고 있다. 추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검찰 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와 지지는 역대 최고조”라며 “이제는 검찰 안에서도 변화와 개혁을 향한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고 밝혔다. ⓒ 시사저널 임준선
추미애 신임 법무부 장관이 1월3일 경기도 과천정부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해 취임사를 하고 있다. 추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검찰 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와 지지는 역대 최고조”라며 “이제는 검찰 안에서도 변화와 개혁을 향한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고 밝혔다. ⓒ 시사저널 임준선

‘정권 관련 수사 외압’ 논란이 큰 변수 될 듯

두 선거에서 나타난 특징은, 숨어 있던 성난 표심이 선거 전에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뚜껑을 여는 순간 판을 뒤흔들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일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방송에 나와 선거 결과를 전망한 대부분의 정치평론가들이 헛다리를 짚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선거 기간에 돌출된 변수에 의해 승부가 좌우되었다는 점 또한 공통적인 특징이었다. 평소의 정당 지지율에 상관없이, 막상 승패를 가른 결정적 요인은 선거가 임박한 시기에 돌출한 대형 악재였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면 4월15일 치러지는 21대 총선은 어떻게 될까. 마찬가지로 예측이 어려운 선거가 될 것 같다. 자유한국당에 누가 표를 주겠느냐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신념의 소유자들에게는 낯선 소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민주당이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한국당이 제1 야당인 이상 민주당의 승리는 떼놓은 당상이라고 믿는 민주당 지지자가 적지 않다. 그런 시선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이제까지의 상황에서는 타당했지만, 앞으로 남은 두 달 반 동안은 희망사항에 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4·15 총선에는 승부를 예측하기 더욱 어렵게 만드는 두 가지 변수가 있다. 첫째 변수는 조국 사태로 시작해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청와대 선거 개입 의혹을 놓고 청와대와 검찰이 대치했던 일련의 상황, 특히 정권 관련 수사에 대한 방해와 외압 논란을 유권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점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들어선 이후 정권 관련 수사팀들을 사실상 공중분해시키며 검찰 수사를 무력화한 질주 광경에 대해서는 박근혜 정부 시절의 수사 방해를 능가한다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청와대와 추 장관발(發) 수사 외압의 역풍은 이번 총선의 뇌관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판단과 태도가 이번 총선이 야당 심판 선거가 될 것인지, 정권 심판 선거가 될 것인지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 변수는 야권에서 진행 중인 보수 통합 혹은 보수중도 통합 논의의 결과다. 그동안 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대세력이기도 했지만, 역으로 문재인 정부가 믿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원군이기도 했다. 한국당이 지금 모습 그대로인 한, 아무리 민주당이 잘못해도 야당에 역전당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황교안 대표가 밀어붙여 온 ‘묻지마 반대’ 식의 극단적 노선은 민주당 지지율의 하락에도 한국당의 지지율이 상승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다. 그래서 민주당도 싫어졌지만 그렇다고 차마 한국당을 지지할 수는 없다는, 갈 곳 잃은 표심이 많아진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하지만 선거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이 정당들이다. 혁신통합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보수 통합 논의를 진행 중인 한국당과 새보수당은 서로의 명분을 만들어주며 어떤 식으로든 통합을 성사시킬 가능성이 크다. 김형오 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이 통합신당의 공천 물갈이를 주도하며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보인다. 보수세력의 통합 과정에서 황교안 대표 등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들이 뒤로 물러서고 새로운 얼굴의 선대위가 선거를 이끈다면 보수 통합신당이 상당수의 부동층을 끌어들이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이다. 민주당이 지금 모습의 한국당만 대입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든 결국 이긴다는 신념으로 선거를 치른다면 큰 낭패를 보게 될지 모른다. 

2016년 4월13일 20대 총선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는 새누리당 관계자들의 표정이 어둡다. ⓒ 시사저널 이종현
2016년 4월13일 20대 총선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는 새누리당 관계자들의 표정이 어둡다. ⓒ 시사저널 이종현

보수 통합신당의 리더 교체 여부도 관건

다만 중도 독자세력화를 다시 모색하는 안철수 전 대표의 행보가 이번 총선에서 얼마만 한 변수가 될 것인지는 워낙 유동적이라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민주당도 한국당도 싫은 부동층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입지에 더없이 좋은 시기지만, 대선 패배 이후로도 큰 실망을 안겨준 상태인지라 총선 변수가 될 정도의 재기가 가능할지는 불확실하다. 

잘못하고서도 잘못했다는 소리를 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 사람을 오만하다고 한다. 그동안은 한국당이 그래 왔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 행한 원죄들을 진정으로 참회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만 매달린 모습은 개과천선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집권세력에 대한 실망과 불만이 늘어나도, 그렇다고 한국당 좋은 일 시켜줄 수는 없지 않느냐는 국민 정서가 견고했던 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책임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청와대와 민주당의 모습도 그러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잘못한 일이 있어도 제대로 된 성찰 한 번 하지 않고 버티는 모습, 선악의 프레임에 갇혀 자신들은 언제나 선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이라고 믿는 모습이었다. 소통과 겸손의 약속은 3년이 되지 않아 오만과 독선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이제 누가 더 오만하게 비치느냐에 따라 심판받는 강도가 정해질 것이다. 21대 총선은 누가 더 오만한가를 심판하는 선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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