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격차 시대에 맞는 ‘장소 플랫폼’ 만들어라
  • 김현수 단국대 교수(도시계획·부동산학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04 14:00
  • 호수 1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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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별로 흩어진 정책·예산지원 통합해 지역균형발전 위한 혁신허브 조성해야

‘지방 소멸’ 지역이 확대되고 지방 산업이 쇠퇴하며 지방 주택시장이 식어간다는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지방 대학의 입시경쟁률이 급락한다는 소식은 이제 일상적으로 접한다. 그런데 그 양상이나 속도가 전과 달라지고 있어 주목된다. 228개 시군 중에서 소멸이 우려되는 지역이 100여 개에 달하고 매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기술혁신이 가져올 미래는 점치기가 쉽지 않다.

최근 열린 ‘CES 2020’에서 가장 이목을 끈 상품은 자동차와 드론이었다. 기술혁신을 이끌어가는 미국에서는 200개가 넘는 유니콘 기업이 출현했고 매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애플 등 시가총액이 1조 달러가 넘는 기업이 등장한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기술기업들이 성장할수록 제조업, 도소매업, 운송업 등 전통 산업과 이러한 산업이 입지한 도시들은 전에 없던 쇠퇴를 겪게 된다.

도요타 자동차의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1월6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CES 2020’에서 미래 도시인 도요타 우븐 시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EPA 연합
도요타 자동차의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1월6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CES 2020’에서 미래 도시인 도요타 우븐 시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EPA 연합

4차 산업혁명으로 수도권-비수도권 격차 더 커져

세계경제포럼(WEF)은 4차 산업혁명의 진전으로 500만 개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20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긴다고 했다. 없어지는 일자리는 대개 제조업과 도소매업, 건설운송업 등 전통 산업이고, 새로 생기는 일자리는 기술기업, 신성장 산업이다.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는 주로 비숙련 인력들인데, 새로 생기는 일자리는 고도의 교육을 받은 혁신인력들이 차지한다. 즉, 산업구조의 변화가 계층구조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통제조업이 입지한 부산·경남 지역 등 해안가의 국가산업단지와 인근지역에서는 일자리가 감소하고 있고, ICT·소프트웨어·미디어·헬스케어 등 새로운 산업은 수도권의 대도시에 집중하고 있다. 총인구의 50%가 수도권에 거주하는데 생산인구, 특히 혁신인력의 집중도는 이보다 더 높을 것이다. 앞으로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가 더 커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참여정부 때 중앙행정 기능과 공공기관을 세종시와 혁신도시로 이전했고, 현재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계획을 수립했던 20년 전과 지금은 큰 차이가 있다. 5G 통신에 의해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가 구축돼 가고, 그때는 없었던 고속철도로 전국이 촘촘하게 연결되고 있다.

고속의 통신망과 교통망으로 전국이 연결되면서 생산인구와 성장산업이 수도권과 대도시로 몰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교통 여건이 좋고, 인구 규모가 크며, 정주환경이 좋은 서울 강남권과 판교, 상암, 구로, 성수, 마곡과 경부 축 중심으로 집적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사람들은 새로운 일자리, 급여가 높은 일자리를 원하는데 그런 일자리는 점점 더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일부 지역으로 모인다.

전통 제조업과 도소매업 중심의 산업에서는 일자리 증가가 더디거나 감소하고 유지되더라도 소득증가율이 낮다. 따라서 고령자만 남은 농촌지역, 대도시와 떨어진 중소도시들의 쇠퇴와 소멸이 심각하게 우려된다. 기술혁신의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인구와 산업의 이동도 빨라지고 쇠퇴지역의 침체도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장소 통합적인 공간·기업·사람 지원 정책 필요

좋은 일자리와 더 나은 기회를 찾아 이동하는 사람들을 막을 방법은 없다. 제조업 일자리는 공업지역 총량규제를 통해 관리할 수 있겠지만 현재 수도권으로 몰리는 기업들은 ‘공장’보다 ‘오피스’에 가까운 형태다. 전통 제조업의 입지는 공항과 항만, 도로와 철도 같은 기반시설과 산업단지가 결정하는 구조(people to job)였다. 하지만 지금의 신성장 산업은 혁신인력이 있는 곳에 투자해야 성공할 수 있다. 혁신인력이 있는 곳으로 기업이 따라가는 구조(job to people)이기 때문이다.

구글과 아마존이 뉴욕으로 가는 이유도 기업이 원하는 혁신인재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행정구역 단위로 주민등록 인구수를 통해 균형·불균형을 구분 짓는 것도 적절치 못하다. 지리적 균형보다는 네트워크 균형을 중시해야 한다. 즉 어디에서 살든, 어디에서 일하든 원하는 서비스를 빨리 소비하고 향유할 수 있으면 만족할 만하다. 고속교통과 초연결 통신망으로 지역 격차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필두로 해 정부 각 부처들이 다양한 균형시책을 추진 중이다. 특히 산업쇠퇴 방지와 혁신성장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있다. 아쉬운 점은 이런 정책들이 공간적으로 분산돼 있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점은 부처별로 지원 수단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규제완화와 특례, 재정지원 등을 통해 창업과 기업 성장을 지원하는 형태인데, 이러한 사업들의 입지가 점점 더 대도시와 대도시 인근지역으로 모인다.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산업단지, 고속철도 이용이 불편한 혁신도시들은 ‘혁신’을 성공시키기에 한계를 가지고 있다. 아파트 분양과 단지 조성은 잘 이루어졌으나, 실제 혁신 클러스터 조성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 등 대도시는 잘 발달된 교통망을 가지고 있으며 철도와 항만 등 국공유지를 활용해 혁신성장의 장소 플랫폼을 조성하는 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부처별로 다기한 창업과 기업 성장 지원정책을 한 장소에 집중시키고 혁신인력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청년주택과 쾌적하고 편리한 환경, 창업 공간과 연구개발에 대한 통합적 지원정책은 쇠퇴한 대도시의 도심을 살릴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이다. 즉 공간과 기업과 사람에 대한 정책이 장소 통합적(place based economy)으로 이뤄져야 한다.

일자리와 창업·기업 성장 지원 기능은 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서 지원한다. 대학 지원은 교육부가 맡고 있다. 쇠퇴한 현장의 산업단지와 대학 등을 지원하기보다는 이러한 조건을 갖춘 곳을 ‘장소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신성장 산업을 육성하고 또 그 파급 효과를 주변지역으로 확산할 수 있는 솔루션이다.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혁신지구를 장소 플랫폼으로 삼아 중기부의 창업 지원과 산업부의 기업 지원, 교육부의 대학 지원 정책들을 통합해 지원함으로써 지역균형발전의 허브를 만들어야 한다.

런던의 킹스크로스, 파리의 스테이션F, 미국의 켄달스퀘어 등은 대도시의 입지 잠재력과 혁신역량을 잘 통합해 성공시킨 혁신지구(innovation district) 사례다. 기술혁신이 가져오는 초격차 시대에 맞게 혁신성장할 수 있는 지방 대도시의 거점 장소에 부처별로 흩어져 있는 정책과 예산지원을 통합하고 ‘장소 플랫폼’을 조성해 줌으로써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혁신허브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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