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종인 “안철수,  뭘 말하려는지 모르겠다”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02.03 14:00
  • 호수 158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총선 승부사’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황교안 대표는 식견이 별로 없어 보여”

이념 대결이 극심한 최근의 정치 현장에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정경유착이 심했던 전두환·노태우 정부에서 국회의원(11·12대), 장관(보건사회부), 청와대 경제수석 등 요직을 지냈음에도 재벌 개혁에 있어선 어지간한 좌파 경제학자 이상으로 강성이다. 여야를 넘나들며 국회의원만 다섯 번 했다. 그것도 하나같이 비례대표로. 이념과 지역이라는 해묵은 프레임으론 도저히 해석이 안 된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정치권이 김 전 대표에게 ‘SOS’를 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대 총선을 앞둔 2011년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 비대위원장인 박근혜 의원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것이나, 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삼고초려 때가 바로 그랬다. 박근혜·문재인이라는 대권주자는 ‘김종인’이라는 책사를 앞세우고 선거를 치러 극적인 반전을 이뤄냈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시사저널 임준선

20~40대 정치 신인 그룹 ‘시대전환’과 손잡나

총선을 앞두고 다양한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회자되는 가운데, 김 전 대표는 변수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최근 한 매체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김 전 대표가 총선을 앞두고 의기투합할지 모른다고 보도했다.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도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김종인 전 대표와 한 번 만났고, 통합의 길로 가려 접촉하고 있다”고 말해 정치권에 적잖은 파장을 낳았다. 물론 관련 보도에 대해 김 전 대표는 “사실과 다르다”며 선을 긋고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지금의 정치구도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만큼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행보 역시 주목받는다. 김 전 대표는 1월15일 30~40대 ‘생활진보플랫폼 시대전환’이 주최한 행사에 참석해 “지금이 제3의 정치세력 출현에 있어 최적기”라는 견해를 밝혀 정치권의 큰 관심을 모았다. 그가 내다보는 정치 지형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왜 총선을 앞둔 지금,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예견한 것일까. 매번 총선 때마다 나오는 새 정치세력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설 연휴가 끝난 직후인 1월29일 서울 내수동 대한발전전략연구원에서 만난 김 전 대표는 “지금은 실용적 마인드를 가진 젊고 유능한 새 정치 그룹이 나와 대한민국의 해묵은 난제를 풀어나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얼마 전 시대전환 주최 세미나에 참석해 화제가 됐다.

“지금은 정치의 기본 틀부터 바뀌어야 할 때다. 이승만 정권 12년을 빼고는 군사정권 30년, 문민정권 30년이 다 돼 간다. 문민정권 30년은 진보가 15년, 보수가 15년간 국정을 운영했다. 그런데 솔직히 나라의 미래를 개척한 게 하나도 없다. 우리나라 출산율(가임여성 1명당)이 작년 1명 이하로 떨어졌다. 그러니 자연히 잠재성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방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지 않나. 기성 정당은 다 똑같다.”

2040 세대들이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건가.

“미래에 닥칠 문제는 이들이 해결할 수밖에 없지 않나. ‘우리 문제는 우리가 해결한다’는 뜻에서 이들이 정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586 세대는 물러나야 하나.

“그 사람들(586 세대)이 뭘 했다고. 민주화했다는 걸로 자기네 할 일을 다 했다면 안 되지. 요새 보면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나라의 모습을 보고 있지 않나. 청와대 일개 비서관이 할 말 못할 말 다 하는 건 우리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바다. 한국당이나 민주당이나 지향하는 바가 무슨 차이가 있나. 젊은 세대들에게 내가 그런다. 새로운 정치세력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겠다 말하라고 말이다.”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해 성공하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

“이제는 리더 한 사람의 권위에 압도되는 시대가 아니다. 21세기는 지식정보화사회라는 게 20세기와 다른 점이다. 이 때문에 정치도 변해야 한다. 기존 정당들은 예전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적 청산은 기득권 정당에선 제대로 되지 않는다.”

성공할 수 있을까.

“어떤 식으로 변할지 유심히 보고 있다. 대한민국의 장래가 밝으려면 그들(신인 정치세력) 중에서 탁월한 인물이 나와야 한다. 대부분이 처음 정치를 시작하기에 불충분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당이 만들어지면 그런 것을 보완해 줄 인물들이 함께할 수 있을 거다.”

지금 새 정치세력에게 필요한 게 뭘까.

“의지와 용기다. 한때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이 지도자가 돼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젊은 사람과 나이 먹은 사람은 사고에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남의 꼬붕(참모) 노릇한 사람이 지도자가 될 순 없다. 자기 스스로 노력한 사람만이 지도자가 된다.”

젊은 정치 신인들을 만나면 주로 어떤 이야기를 많이 하는가.

“기존 사고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곁붙어서 ‘출마나 한 번 해 볼까’라고 생각하려면 정치하지 말라고 한다. 이번에 잘하면 제3 세력이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기술적인 조화가 필요하다. 핵심은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고 기존 정치세력은 뒤에서 서포트(지원)하는 정당이 탄생할 수 있단 점이다. 제대로 된 세력이 형성되면 즐겁게 서포트해 줄 생각이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의 메시지와 비슷하다.

“그건 괜한 소리고. 나하고는 별로 관계가 없다.”

 시대전환의 요청이 오면 어떻게 할 건가.

“구체적으로 그 사람들이 뭘 해 와야지. 최소한 형체를 만들어야 한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의 연대설이 흘러나왔다.

“전혀 사실과 다르다. 솔직히 안철수 전 대표가 뭘 말하려는지 모르겠다.”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과 함께한다고 하는데.

“그 사람(박지원 의원)이 하는 소리를 믿지 않는다. 작년 11월 모처에서 누구하고 얘기하는데 갑자기 나타나 만난 것 외에 본 적이 없다.”

대학총장 출신 A씨 등 중도보수 성향의 인사들과 함께 정치를 재개한다는 소문도 돈다.

“나는 전혀 관여를 안 했다. 누군가 그 사람들하고 얘기해 봤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나하고는 무관한 일이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계획이 있는가.

“박근혜·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솔직히 국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기성 정당 활동에는 참여할 생각이 없다. 새로운 세력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그런 세력이 활동하면 미력이나마 도울 생각은 있다. 듣자 하니 윤여준 전 장관과 나를 연결하는데, 개인적으론 잘 모른다. 그분도 나라 잘되기를 걱정하고 있단 소리는 들었다.”

중도 정치판이 커지고 있다.

“보수라는 말 좀 그만했으면 한다. 보수를 상징하는 두 대통령이 저 모양(구속·보석)이 돼 있는데, 국민들에게 보수를 말하면 뭘 생각하겠나. 그리고 다들 참다운 보수가 뭔지 모른다. 진보도 마찬가지다. 매번 세력만 바뀌는 거다. 여당 되면 하나같이 언론·사법부 장악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 나라가 발전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이제는 정당의 지향점을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지금 우리 보수의 개념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다. 솔직히 시장경제를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나.”

1월15일 서울 중구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열린 시대전환 출범 기념 수요살롱에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가 ‘새로운 세대가 이끄는 정치가 필요하다’란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1월15일 서울 중구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열린 시대전환 출범 기념 수요살롱에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가 ‘새로운 세대가 이끄는 정치가 필요하다’란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안철수·박지원 연대 안 한다”

보수 대통합을 어떻게 보는가.

“‘새로운보수당’과 ‘자유한국당’이 합쳐지면 되레 지지도가 떨어진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봤다. 쓸데없이 통합하지 말고, 국민이 뭘 기대하는지를 알고 거기에 부응하려 노력해야 한다. 국민 정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을 듣고 싶어 하는 거다.”

유승민 의원이 말하는 개혁보수는 그런 면에서 어떤가.

“개혁보수가 따로 있고, 보통보수가 따로 있나. 보수정당이 시대 변화에 따라서 잘 순응해 나가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지금 국민 정서는 어떻다고 보는가.

“경제가 어려운데 정권만 잡고 흔드니 사람들이 답답해하는 것 아닌가.”

한국당이 민부론(民富論)이란 경제정책을 펴냈다.

“2030년까지 국민소득 5만 달러를 달성시키겠다고 했는데, 턱도 없는 소리다. 과거 이명박 정부가 747정책(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경제강국 진입)을 폈는데, 성공했나. 그런 소리나 하니 시대정신을 못 읽는 거다. 권력행사도 시대에 맞게 해야 한다.”

황교안식 정치는 어떻게 보는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정치를 처음 하는 건데 식견이 별로 없어 보인다.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한국당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았다. 개혁공천을 잘할까.

“당내 공천관리위원회가 있고 최고위원회가 있는데 공천 최종 확정은 최고위에서 하는 걸로 안다. 공관위에서 해도 최고위에서 달리하면 바뀔 수 있다. (공관위가) 전권을 갖지 않고선 쉽지 않다.”

보수 대통합이 정답일까.

“오늘날 한국당이 왜 이렇게 됐는지를 살펴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한국당과 같은 보수정당은 대통령이 없으면 추위를 많이 타 잘 안 돌아간다. 대통령이 없는 상태인 데다, 대통령 감도 없다. 다들 초심으로 돌아가 진짜 기득권을 포기하고 나라를 위해 뭘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면 바뀔 수 있다. 지나간 탄핵에 대해 집착할 필요가 있나. 과거는 과거대로 잊어야 한다.”

김종인 전 대표가 말하는 문재인 정부

“문재인 대통령은 자기가 한 말에 책임지지 않는 정치인”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친노(親盧)·운동권 인사를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이해찬·강기정·노영민·정청래·김현·임수경 등 현역 의원만 21명이 그에 의해 ‘컷오프’됐다. 당시 사드 배치, 강령 논쟁 등 주요 이슈와 관련해서도 “당신들 지적(知的) 만족을 위해 당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라는 단어 하나 빠졌다고 난리치는 정당으로는 집권할 수 없다”고 밀어붙였다. 결과적으로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기사회생했다. 하지만 이후 대선을 앞두고 김 전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과 갈라섰다.

이날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문 대통령에 대해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며 날을 세워 비판했다. 주요 국정과제에서 경제민주화가 후순위로 밀린 것에 대한 서운함이 짙게 남아 있는 듯했다. 경제민주화와 관련해선 “지금의 경제상황과 경제민주화는 별개의 문제”라면서 “진짜 경제가 어렵다면 그걸(경제민주화 정책) 더 했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제민주화는 경제를 성장시키는 해법이 아니다. 경제민주화는 시장경제가 발생시키는 모순을 제도적으로 방지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