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자 역풍’에 우는 민주당…또다시 덮친 ‘미투 트라우마’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1.31 14:00
  • 호수 1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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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일 아냐” 한국당도 ‘전전긍긍’

“민주당을 청년들에게 사랑받는 정당으로 만들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인재 영입 2호 원종건씨(27)는 지난 1월23일 지역구 출마를 선언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나 “파란을 일으키겠다”던 청년의 당찬 포부가 무너지는 데는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원씨가 전 여자친구를 상대로 성폭력을 휘둘렀다는 ‘미투(Me Too)’ 의혹이 제기돼서다. 2030세대를 겨냥한 회심의 카드였던 원씨가 되레 청년의 공적으로 전락하면서, 민주당 지도부의 근심도 깊어지는 모양새다. 당 안팎에서는 예고된 참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검증 없이 화제성에만 초점을 맞춘 ‘이벤트성 인재 영입’이 화를 자초했다는 얘기다.

미투 논란에 휩싸인 더불어민주당 2번째 영입 인재인 원종건씨가 1월28일 국회 정론관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미투 논란에 휩싸인 더불어민주당 2번째 영입 인재인 원종건씨가 1월28일 국회 정론관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이남자’ 잡으려다 놓친 ‘이여자’

지난 1월27일 오후 8시경 민주당 인재영입위원회에 비상이 걸렸다. 영입위 핵심 멤버인 이해찬 대표부터 민주연구원의 양정철 원장과 백원우 부원장 등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주당이 인재 영입 2호로 불러들인 원종건씨가 느닷없이 ‘성폭행 의혹’에 휩싸여서다. 원씨의 전 여자친구 A씨가 원씨로부터 성폭행 등 데이트 폭력을 당했다는 글과 카카오톡 대화 캡처 사진 등을 한 커뮤니티에 올린 게 발단이 됐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성폭행 및 폭언 정황을 적은 다이어리뿐만 아니라 성폭력피해자통합지원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내역과 피해 사진 등이 제시됐다. 원씨가 여성혐오 발언을 일삼았다는 폭로도 이어졌다. 피해자 A씨는 방송사와 대면 인터뷰를 진행할 정도로 당당했다. 결국 다음 날인 28일 원씨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했다. 민주당이 ‘청년 인재’라며 원씨 영입을 발표한 지 정확히 30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현재 원씨는 A씨의 폭로를 ‘사실이 아니다’라고 못 박은 뒤, 언론과의 접촉을 피해 잠적한 상태다. 민주당에 영입된 인재들이 모인 SNS 채팅방에 짧은 사과만을 남긴 채 방을 나갔고, 1월30일 민주당을 탈당했다. 총선을 위해 데려온 인재가 되레 ‘악재’를 몰고 오면서 민주당의 근심도 깊어졌다. 민주당은 가뜩이나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던 20~30대들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진 상황이었다. 이를 만회하고자 데려온 게 ‘이남자(20대 남자)’ 원씨인데, 오히려 미투 의혹에 휩싸이며 ‘이여자(20대 여자)’들의 반감만 사게 된 셈이다.

당 지도부는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한 채 연일 고개만 숙이고 있다. 이해찬 대표는 1월29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어제 영입 인재 중 한 분이 사퇴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며 “사실과 관계없이 인재영입위원장으로서 국민과 당원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을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당에서 좀 더 철저히 조사하겠다”며 향후 인재 영입과 관련해서도 “이후에는 사전에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한국당도 똑같다”…’이벤트성 영입’ 부작용

당 안팎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인재영입위가 인재에 대한 홍보에만 치중한 채, 검증 작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당 내부에서는 그간 인재 영입을 주도했던 양정철 원장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마저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한 관계자는 “야구로 따지면 (양 원장은) 능력 있는 스카우터다. 문제는 이름값과 과거 이력으로만 선수를 선발하다 보니, 부상 이력이나 인성 등은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역 의원들의 비판도 이어졌다. 김해영 의원은 1월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선거 국면에서 영입 인재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공천에서 혜택을 받을 경우 당내에서 열심히 준비하는 이들의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당의 영입 정책을 에둘러 비판했다.

야당도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원씨 논란 전까지 민주당과 비교해 인재 영입의 ‘질과 양’ 모두에서 밀린다는 평가를 듣던 자유한국당으로선 절호의 반전 기회를 잡은 셈이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원씨에 대해 “인재(人材)인 줄 알았는데, 사람으로 인한 재앙인 인재(人災)”라고 비난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한국당 간사인 송희경 의원은 “원씨는 민주당 영입 당시 ‘페미니즘 이슈가 21대 국회의 숙명이자 시대정신’이라고 말했다”며 “원씨의 이중적 태도가 가히 두려운 수준”이라고 힐난했다.

그러나 한국당의 인재 영입 실상도 민주당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당 역시 원씨의 ‘스토리’에 관심을 갖고 미팅을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1월28일 자신의 SNS에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정치 이벤트화에 능숙한데, 요즘은 자유한국당에서도 따라 하느라 정신이 없다”며 “원종건씨는 민주당으로 가기 전에 자유한국당에서도 영입 제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실제 원씨는 민주당 입당 전에 기자와 만난 사석에서도 “정치하는 데 당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정치평론가들은 이번 ‘원종건 사태’가 총선 흥행에만 함몰된 한국 정치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고 진단한다. ‘용병’에만 의존한 채, 당내 인재 풀(Pool)은 관리하지 못한 당 지도부의 무능이 불러온 참사라는 것이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야 모두 소위 이야기가 되는 사람만 찾다 보니 정치인으로서의 자질 등을 검증하지 못한 것”이라며 “어느 한 분야에서의 성공이 정치에서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인재를 검증하지 못하고 길러내지 못하는 게 우리 정치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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