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인대’냐 ‘서인부대’냐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0.02.04 14:00
  • 호수 1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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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인천 ‘제2 도시’ 쟁탈전
정작 곳간과 삶의 질은 바닥

‘제2의 도시’는 무슨 기준으로 뽑는 걸까. 이는 관행적으로도, 법적으로도 규정된 바 없다. 수도 역시 그 기준이 성문법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 다만 조선 왕조 이래 600여 년을 거치면서 ‘수도=서울’이란 공식이 관습헌법(헌법과 동일한 효력의 관행)으로 굳어졌다. 

제2 도시 선정 기준이 없다는 것은 모든 지자체에 기회가 열려 있다는 뜻도 된다. 그중에서도 쌍두마차로 꼽히는 곳은 부산과 인천이다. 보통 한국에서 제2 도시라고 하면 부산이란 인식이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었다. 한반도의 관문 역할과 함께 임시수도로 지정됐던 역사가 그 배경으로 작용했다.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부산의 지역지 부산일보조차 제2 도시 자리를 인천에 뺏길 수 있다는 기사를 내놓고 있다. 유정복 전 인천시장은 예전부터 언론에 “제2 도시는 인천이 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른바 ‘서인부대론(서울-인천-부산-대구)’이다.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의 야경(왼쪽)과 인천 연수구 송도동 송도국제신도시 ⓒ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의 야경(왼쪽)과 인천 연수구 송도동 송도국제신도시 ⓒ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인천 부상에 위협받는 부산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니다. 우선 부산의 인구가 흔들리고 있다. 통계청의 2019년 10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부산의 조출생률(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은 5.0을 기록했다. 7대 특별·광역시 중 최저다. 반면 같은 기간 도시를 빠져나간 인구는 부산이 서울 다음으로 많았다. 그 수는 3만6000명으로 총 전입 수(3만3700명)보다 많게 나타났다. 적게 태어나고 많이 떠나가는 셈이다. 인구는 내수 시장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도시 경쟁력의 척도로 꼽힌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은 2040년 ‘인구절벽’ 위험이 가장 큰 도시로 부산을 지목했다. 

인천은 반대로 인구가 급증한 도시 상위권에 든다. 최근 5년 사이 약 7만9000명이 늘어났다. 지난해 말 주민등록 통계 기준으로 7대 특별·광역시 중 유일하게 인구 증가세를 보였다. 아직 총인구는 300만 명에 5만 명 정도 못 미치는 규모지만, 지금 추세가 지속되면 2034년에 부산을 추월할 것으로 통계청은 내다봤다.

도시의 경제력을 가늠할 때 활용되는 지역내총생산(GRDP)은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양새다. 2017년에는 인천이 약 84조원으로 부산(83조2000억원)을 처음으로 눌렀다. 이듬해에는 부산이 89조7000억원으로 인천의 88조4000억원을 다시 따라잡았다. 다만 1인당 GRDP로 따져보면 2018년 부산과 인천이 각각 2639만원, 3007만원으로 인천이 앞선 형국이다. 

주판알을 튕겨보면 부산과 인천이 호각세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제2 도시를 꼭 외형적 수치로만 구분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국제 도시 트렌드 연구소 뉴시티즈는 “제2 도시는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종익 전국도시재생지원센터협의회장은 지난해 9월 시사저널이 주최한 포럼에서 “주민은 도시의 정책 대상자가 아니라 이해관계자”라고 강조했다.  

이런 측면에서 제2 도시의 부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사는 2017년 연구보고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순위 경쟁에 목매는 도시들은 곳간이 한정돼 있으면서도 새로운 정책과 경제부양 수단, 각종 계획, 파트너십 전략 등을 실험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제2 도시에 대한 연구는 좀 더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

시민 삶 뒷전인 순위 경쟁 

실제 인천의 재정건전성은 절벽으로 치닫고 있다. 인천시는 올해 통합재정수지 적자가 624억원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흑자 행진이 6년 만에 멈추는 셈이다. 재정자립도를 보여주는 지방세도 부산에 비해 여유롭지 못하다. 2018년 인천의 지방세는 4조4600억원으로 부산(4조9300억원)보다 4700억원가량 낮다. 지방세에서 40% 안팎을 차지하는 취득세가 줄어든 탓으로 풀이된다. 주택매매 위축 등이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삶의 질 측면에선 양쪽 모두 제2 도시와 거리가 멀다. 지난해 말 인천의 주민생활 만족도는 50.4%, 부산은 48.7%로 조사됐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각각 11위와 14위다. 둘 다 전국 평균(53.0%)에 못 미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조사 결과다.  

제2의 도시에 걸맞은 문화시설도 다른 지자체에 수적으로 밀린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공공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등 문화시설이 인천에 총 104곳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7대 특별·광역시 중 3번째로 많지만, 인구 100만 명 기준으로는 5번째다. 부산도 내세울 게 없다. 문화시설은 인천보다 총 3곳 더 많지만 인구 100만 명 기준으로 보면 꼴찌다. 이와 관련해 외형보다 내실을 다져야 할 때라는 쓴소리가 나온다. 

중앙정부의 정무적 판단이 양쪽의 격차를 벌려 놓는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1월28일 문체부가 국내 첫 국제관광도시로 인천이 아닌 부산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총선을 앞두고 격전지인 부산에 힘을 실어준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인천시청 관계자는 1월30일 “정무적 판단은 근거가 없는 것 같다”며 “인천이 서울과 가까이 있으니 지역균형발전 논리가 작용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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