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인재 영입’ 막장 드라마
  •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0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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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되풀이 되는 정치권의 ‘인재 영입 참사’…선거용 이미지 아닌 인품·역량부터 철저히 살펴야

기업에서 핵심인재를 영입할 때 인사팀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해당 인재의 역량과 성품을 정밀 검증한다. 영입 대상 인재가 과거 어떤 성과를 거두었고 조직에서의 대인관계는 어떠했는지 그리고 리더십은 있는지 주변 인물로부터 다양한 평판을 조회한 후 영입을 최종 결정한다. 평판이 엇갈리는 핵심인재의 경우, 좀 더 많은 이들을 대상으로 해당 인재의 성품과 역량을 면밀히 살펴본다. 극소수의 의견으로 해당 인재에 관해 잘못 판단하는 오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심사숙고 끝에 영입해도 해당 인재가 성공을 거두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인재 영입 과정에 비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선출이라는 막중한 자리에 세울 각 정당의 인재 영입 방식을 보면 기가 찬다. 국회의원은 국민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고 국정을 운영 및 감독하는 입법부 핵심 구성원이다. 역량과 인품이 고루 겸비되고 소명의식을 투철한 인물이 국민을 대표해야 하기에 정당은 기업에 비해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 인재의 가치관과 철학 등을 심사한 후 영입해야 한다. 그런데 늘 우리나라 정당들은 손쉬운 이미지 정치에만 몰두, 감성적 스토리와 대중적 인지도를 보유한 인물 찾기에 여념이 없다.

그 결과, 정당의 인재 영입 기준은 지금껏 하나도 새로울 게 없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들은 TV에 주로 나온 인물들을 최우선 영입 리스트에 올려왔다. 수많은 방송인, 언론인, 화제의 인물들이 어제까지 맡던 뉴스와 교양 프로그램, 자신의 천직(天職)을 던져버리고 국회의원 자리에 제일 먼저 탑승했다. 인지도가 높다는 이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이들의 영입을 통해 국회가 정책적 완성도를 높인 경우를 국민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배우나 모델을 선발하는 과정도 아닌데 정당은 늘 역량이나 성과보다 오직 이미지만을 중시한다.

민주당 2번째 ‘영입 인재’ 원종건씨가 1월28일 국회 정론관에서 ‘미투’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민주당 2번째 ‘영입 인재’ 원종건씨가 1월28일 국회 정론관에서 ‘미투’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힌 후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이미지만 보고 선발하는 정치권의 인재 영입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을 선출해야 할 중요한 자리에 이미지만을 고려해서 인재를 영입하는 기준은 단 하나다. 선거에서 참신함과 정서적 감동을 통해 일시적으로 바람을 일으키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언제나 영입된 인재들은 특정 정당 한 곳에서 영입 제안을 받기보다 다수 정당으로부터 제안을 받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인물의 성품과 역량을 판단하는 것보다 해당 인물이 대중에게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쌓았는지 그리고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통해 어필할 수 있는 스토리가 얼마나 많은지에 관해서만 정당이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인재 영입의 불투명한 과정과 인재영입위원회의 허술함이 빚어낸 극단적 합작품이 바로 ‘원종건 사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심사해서 영입했는지 국민은 아직도 알 방법이 없다. 영입 과정이 불확실하고 해당 인재의 성과나 역량이 공개되지 않았는데도 더불어민주당은 ‘당의 미래’, ‘당의 소중한 자산’이라는 낯 뜨거운 미사여구를 늘어놓았다. 민주당은 원종건씨에 대한 평판을 사전에 얼마나 치밀히 조사했는지, 정서적 울림을 던질 수 있는 이미지에만 몰입하다 자살골을 넣은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헛발질 영입’은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박연대 비례대표 1번으로 배지를 단 양정례 의원은 두드러진 경력이 없었음에도 최연소 의원 타이틀을 달았다. 양 의원은 선거 전부터 다양한 루머를 불러 일으켰고 당선 이후에도 숱한 문제를 만들었다.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을 어렵게 모셨다고 발표했던 자유한국당도 참담한 상황인건 마찬가지다. 해당 인재의 가치관, 국정 철학, 소신 등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직 이미지만을 보고 선발하는 인재 영입 절차는 이미 불쾌한 쓴웃음을 주는 현실판 막장 드라마가 된지 오래이다.

 

인재 영입은 일회성 이벤트 행사가 아니다

정당의 인재 영입 행사는 선거 때마다 되풀이된다. 총선이 진행되는 4년마다 화제의 영입 인사로 거론된 다양한 인물은 4년 후 또 다른 인물로 손쉽게 대체됐다. 이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세대, 어떤 계층을 대표하는 인물로 선정됐는지 제대로 공개된 적은 거의 없었다. 총선만의 문제도 아니다. 5년마다 열리는 대선 전 각 정당은 당 대표 또는 대선후보의 이름으로 수 백 장의 임명장을 찍어낸다. 임명장을 받은 인물이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해당 정당은 ‘임명장은 큰 의미가 없는 문서다’라며 스스로 그 의미를 깎아 내린다.

정치라는 공적 영역에서의 인재 영입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이미지로 승부할 수 있는 이벤트 행사가 절대 아니다. 국민의 세금이 지원되고 국회의원으로서의 특권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주당과 한국당 더 나아가 모든 정당이 인재 영입에서 성공하려면 우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인재 선발을 공개적으로 진행해 정계 입문을 희망하는 지원자들의 지원서를 받고 면접 등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 선발해야 한다. 블랙박스에서 선발된 인재는 그 어떤 계층도 대변할 수 없고 역량과 인품도 보장하기 어렵다.

과거 모 정치인에게 TV 다큐나 교양 방송만 보면서 인물을 찾지 말고 긴 시간을 두고 공개 모집을 통해 인물을 찾는 게 어떻겠느냐가 조언한 적이 있다. 심사 단계별로 지원자가 정당의 철학이나 비전에 맞는지 검토하고 인품을 평가할 수 있는 인성검사 등의 방식을 객관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훨씬 인재 선발에 효과적이다. 그러나 정치는 단기간 승부라며 그렇게 긴 시간을 두고 인재를 심사하고 선발할 필요가 없다는 뜻밖의 답변을 들었다. 매스컴에서 최근 화제가 된 인물을 영입하는 것이 시간과 비용 모든 측면에서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는 답변에서 절망을 느꼈다.

이른바 선거 베테랑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소속 정당에서 청년위원으로 봉사해온 젊은 인재들을 미래 정치인으로 육성하지 않고 TV나 언론에서 화제가 된 인물만을 자신의 인재 영입 리스트로 올린다. 이 과정에서 해당 인물이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정치인들은 늘 국민이 정치에 관해 불신을 갖고 있다고 항변하지만 정당의 인재 영입 과정만 봐도 정치인들은 정말 불신을 얻어내는데 천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로 인한 피해는 늘 국민 몫이라는 점이 우리 정치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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