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명동’의 몰락…편의점보다 빈 상가가 더 많았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0.01.3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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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설 앞둔 청주의 밤거리…“계란빵 8시간 동안 세 판도 못 팔아”

2006년 충청북도의 민선 4기 슬로건은 ‘경제특별도’였다. 경제 살리기에 집중하겠다는 의지가 여실히 반영돼 있다. 12년이 지난 2018년, 통계청이 조사한 충북의 1인당 민간소비(1551만원)는 전국 최저로 나타났다. 민간소비는 지역의 소비생활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다. 낮은 민간소비는 지역민이 돈을 쓸 만한 여건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왜 충북 도민들은 지갑을 닫은 걸까. 1월21일 화요일 오후 7시30분. 충북 청주시 청원구 음식점 대추나무집에 들렀다. 이곳은 충청도 향토 음식으로 분류되는 ‘짜글이찌개’를 처음 개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SBS ‘백종원의 3대천왕’에 나와 단숨에 유명세를 탔다. 지금도 충북 공직자들이 자주 찾는 식당 5위 안에 꼽힌다.

기자가 식당을 방문했을 때는 비교적 널널했다. 총 80석이 마련돼 있었는데 식사 중인 손님은 16명이었다. 회식 중이던 단체 손님 9명이 떠나니 더 횅하게 느껴졌다. 평일 저녁 시간임을 감안해도 ‘전국구 맛집’이라기에는 다소 미흡해 보였다. 식당 사장 양재철씨(72)는 “방송 출연하고 2년 동안은 꾸준히 손님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 때에 비해 30% 정도 줄어든 것 같다”고 했다. 2018년 전까지는 손님들이 줄을 서는 날이 더 많았다고 한다. 

1월21일 오후 9시쯤 방문한 충북 청주시 성안길의 한 옷가게. 22일까지 영업하고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 밑에 '임대문의' 글씨가 보인다. ⓒ 시사저널 공성윤
1월21일 오후 9시쯤 방문한 충북 청주시 성안길의 한 옷가게. 22일까지 영업하고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 밑에 '임대문의' 글씨가 보인다. ⓒ 시사저널 공성윤

 

'경제특별도' 충북, 2018년 민간소비 최저

양씨가 밝힌 당시 월 평균 순수입은 약 2000만원. 양씨는 “지금은 1000만원이 안 되는 달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그래도 근방에서 우리 식당이 제일 장사가 잘 되는 편”이라며 “들리는 얘기로 다른 식당은 심각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정책이 지역경제를 위축시켰다”는 취지로 20분 가까이 열변을 토했다.

가게를 나와 청주 번화가 중 한 곳인 성안길로 향했다. 이곳은 청주의 명동으로 불릴 만큼 쇼핑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가장 비싼 땅이 몰려 있다는 점도 명동과 같다. 성안길 초입에 있는 커피빈(청주 상당구 북문로1가)의 지난해 공시지가는 평당 3471만원을 기록, 충북 전체에서 1위에 올랐다. 

단 내실은 분명 명동과 달랐다. 기자가 방문한 오후 8시40분에는 유동인구를 충분히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사람이 적었다. 공실도 수시로 눈에 띄었다. 커피빈을 가로지르는 성안길의 중심로(성안로) 약 430m를 따라 걸으며 공실 개수를 세어봤다. 총 8개였다. 성안길 전체 구역의 편의점 수(4개)보다 많았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청주의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14.5%로 조사됐다. 서울 명동은 0%에 가까웠다. 

1월21일 오후 9시30분경 CGV 청주성안길점. 직원 외에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 시사저널 공성윤
1월21일 오후 9시30분경 CGV 청주성안길점. 직원 외에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 시사저널 공성윤

 

성안로에 있던 계란빵 포장마차의 한켠에는 꽉 찬 계란판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주인 김정출(69)씨는 “오후 1시부터 장사했는데 아직 3판(90개)도 못 팔았다”고 푸념하듯 말했다. 22년째 이 근처에서 계란빵을 팔았다는 김씨는 “7년 전만 해도 300개 넘게 팔았다”고 밝혔다. 성안길 대로변에서 나들가게(중소벤처기업부가 지원하는 종합소매점)를 운영하는 60대 김용희씨도 “5~6년 전에 비해 매출이 반 이상 줄었다”고 토로했다. 근처의 50평 남짓한 가게에는 ‘폐점정리’ 간판이 달려 있었다. 한때는 올리브영 자리였던 곳이다. 

그럼에도 임대료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한다. 인근 공인중개사 조아무개씨는 “성안로 중심가에서 10평짜리 상가를 구하려면 월세를 200만원에서 600만원은 줘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3분기 10평 기준 서울 상가 평균 월세(67만원)보다 비싸다. 강남대로(325만원)와 비슷한 수준이다. 

임대료가 떨어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조씨는 “건물주들이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해 가격을 잘 안 내리려 한다”고 했다. 정의당 충북도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종대 의원은 지난해 11월 토론회에서 성안길을 언급하며 “그동안 무분별한 성장주의로 인해 도시의 정체성이 훼손되고 구도심 공동화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1월21일 청주 성안길 중앙로. 오후 9시가 넘으니 불 꺼지는 상가가 점점 늘어났다. ⓒ 시사저널 공성윤
1월21일 청주 성안길 중앙로. 오후 9시가 넘으니 불 꺼지는 상가가 점점 늘어났다. ⓒ 시사저널 공성윤

 

"무분별한 성장주의로 정체성 훼손"

상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두드러졌다. 최근 신시가지 조성으로 ‘핫’하다는 율량동의 밤거리를 둘러봤다.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찾는다고 알려진 이곳은 술집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었다. 

다만 이날 밤 10시 넘어 기자가 방문했을 땐 텅 빈 술집이 군데군데 보였다. 그 중에서도 한 프랜차이즈 술집에는 손님들이 가득 차 기다리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해 근처 분식 포장마차를 운영 중인 이아무개(30)씨는 “가격이 싸고 인테리어가 예뻐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고 설명했다. 이곳의 안주 가격은 모두 6000~1만원 대에 형성돼 있었다. 

밤 11시20분. 주로 20대가 모인다는 ‘젊음의 거리’ 충북대 중문 일대에 들렀다. 대부분의 가게가 조용한 가운데 유독 한 술집 앞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이곳 역시 저렴한 가격과 즉석만남이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고 한다. 

맞은편에서 바를 운영하는 강석현(35)씨는 “근처 가게에 사람들이 몰리니 파급효과가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4년 전 오픈 때에 비하면 매출은 반토막났다”고 토로했다. 기업들의 상권 잠식이 매출 격차를 키웠다는 주장도 있다. 강씨는 “주변에 폐업한 가게들을 대형 주류사가 인수한 뒤, 일반 생계형 가게처럼 간판을 달고 술을 싸게 공급한다”고 귀띔했다. 

충북의 밤은 다시 빛날 수 있을까. 정초시 충북연구원장은 1월22일 “사람들이 소비욕구를 도심에서 충족할 수 있도록 기반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포츠시설이나 여가시설 등 생활형 SOC(사회간접자본)와 대형 쇼핑몰을 적극 유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두영 충북경제사회연구원장은 “실질적인 임금과 소득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7년 충북 1인당 개인소득은 1842만원으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4위에 그쳤다. 

1월21일 밤 11시30분경 충북대 중문 근처 한 주점. ⓒ 시사저널 공성윤
1월21일 밤 11시30분경 충북대 중문 근처 한 주점. ⓒ 시사저널 공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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