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엎친데 덮친격”…8번 확진자 머문 군산 ‘한숨’
  • 호남취재본부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0.02.0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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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불안감에 휩싸인 군산
확진 판정 60대 여성 동선 따라가 보니…거리 ‘적막’
확진자 방문한 내과·음식점 휴업…소상공인·주민 ‘불안’ 호소

2월 3일 오후, 전북 군산의 거리. 차량만 분주히 오갈 뿐 행인이 드물어 적막했다. 그러나 평화로운 분위기와 달리 현지에서 만난 많은 주민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국내 8번째 확진자가 아들과 함께 지난달 말 4박 5일간 생활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군산시청 로비에서 만난 70대 노인은 “큰 소리를 안 내서 그렇지 사람 있는 곳을 가자면 얼마나 겁이 나는지 모른다”며 “주민들이 모이면 코로나바이러스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군산 시내를 관통해 도착한 월명동 근대역사의 거리. 적산 가옥이 즐비한 이곳은 ‘시간여행 공간’이라 일컬어지며 국내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주말과 평일 가릴 것 없이 젊은 층 관광객들이 팔짱을 끼고 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이날 역사의 거리에는 주민으로 보이는 몇 명만이 마스크를 낀 채 오가 불안감이 감돌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국내 여덟번째 확진자가 다녀간 것으로 확인된 군산 월명동 역사의 거리가 평소와 달리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2월 3일 오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국내 8번째 확진자가 다녀간 것으로 확인된 군산 월명동 역사의 거리가 평소와 달리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혹시 우리 가게도 다녀갔나? 불안해 죽겠어”

8번째 확진 판정을 받은 A(62·여)씨가 지난달 26일 오후, 이곳에 있는 한 음식점과 대중목욕탕에 다녀간 사실이 지난 1일 뒤늦게 밝혀지면서 긴장감이 흘렀다. 기자가 길을 지나가는 60대 중반의 여성 주민에게 문제의 목욕탕 위치를 묻자 전후 내막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뭐 할라고?”라고 되물으며 경계심과 불안감을 표했다.   

A씨가 들렀던 목욕탕에 들어서니 마스크를 낀 주인으로 보이는 여성 직원 한명 만이 안내데스크를 지키고 있었다. 안내데스크에는 손 세정제와 신종 코로나 주의를 당부하는 안내판이 놓여 있었다. 사무실 안쪽에서는 군산경찰서 수사과에서 나온 형사 4~5명이 연신 어딘가와 전화 통화를 하며 분주히 움직였다. 경찰은 당시 A씨와 접촉자를 찾기 위해 목욕탕에 함께 있던 인물들을 찾고 있다. 

앞서 전북도는 심층 역학 조사를 통해 A씨의 휴대전화 GPS와 해당 목욕탕 CCTV 등을 통해 A씨의 입욕 사실을 확인했다. 전북도 관계자는 “대중목욕탕 방문자와 접촉자를 확인하기 위해 카드 접수 내역과 휴대폰 사용 현황은 물론 군산시가 시민에게 대중목욕탕 방문자까지 신고받아 역학적인 연관성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목욕탕에서 걸어서 5분 남짓, A씨가 점심식사를 한 것으로 알려진 콩나물국밥 음식점을 찾았다. 맛집으로 유명한 이 식당은 ‘7일까지 내부수리를 위해 휴업하겠다’는 표시를 하고 문이 닫힌 채였다. 영문을 모른 일반 손님은 식사하러 왔다가 문이 닫힌 식당에 어리둥절하기가 십상이었다. 바로 옆 건물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은 부근 음식점에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역사·영화의 거리 내 상점들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군산의 유명 제과점은 이날 임시로 휴업했다. 제과점 관계자는 “원래는 정기 휴일이 아니지만 코로나 영향 때문에 임시 휴업을 결정했다”며 “임시휴업도 문제지만, 혹시나 우리 매점에 들른 것으로 소문이라도 잘못 나면 큰일이다”고 걱정했다. 편의점들도 A씨가 군산 시내 거리를 누볐다는 소식에 울상을 짓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별일 있겠냐 싶다가도, 혹시 나와 접촉한 손님 중 한 명일까 불안한 게 사실”이라며 했다.

1월 26일 오후 국내 8번째 확진자가 찾은 것으로 확인된 군산시 월명동 대중목욕탕 ⓒ시사저널 정성환
1월 26일 오후 국내 8번째 확진자가 다녀간 것으로 확인된 군산시 월명동 대중목욕탕 ⓒ시사저널 정성환

“군산 실핏줄 경제마저 붕괴 걱정”

이마트 군산점 앞에서 만난 한 중년 남성은 가뜩이나 어려운 지역경제의 실핏줄마저 막히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현대중공업 조선소와 한국GM 폐쇄 이어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서민경제 생태계의 붕괴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군산은 2017년 7월 군산조선소 가동중단과 지난해 5월 한국GM 군산공장의 폐쇄 결정이 이뤄지면서 근로자 실직과 협력업체 폐업, 소상공인 매출 감소 등 지역경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이다. 여기에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우려까지 겹치면서 군산 지역경제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실제 확진자 발생 소식이 전해지면서 소상공 자영업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월명동에서 국밥집 일신옥을 운영하는 박신애(60·여) 대표는 “최근 며칠 사이에 관광객들이 눈에 뜨게 줄어들면서 매출이 30%가량 급감했다”며 “평소 주말이면 꽉 차던 길 건너편 호텔 주차장도 엊그제(1일)는 텅텅 빈 것을 봤다. 주변에 몰려있는 게스트하우스들 예약도 줄줄이 취소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확진자가 다녀간 것으로 확인된 이마트 군산점은 지난달 31일 오후 6시부터 휴업에 들어갔다가 나흘 만에 이날 영업을 재개했다. 하지만 평소 주차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붐비던 이곳은 생필품 매장인 1층을 제외하곤 의류 등 매장이 들어선 2~3층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군산시에 따르면 8번 확진자인 A(62·여)씨는 지난달 29일 오후 1시 43분부터 2시 19분까지 30여분 동안 이마트 군산점에 들러 장을 봤다.

중국 후한시 한국국제패션센터 한국관 ‘더 플레이스’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A씨는 군산시 성산면에 있는 자신의 주택(별장)에서 체류 중 1월 25일 기침 증세가 약간 있다가 사흘(28일) 뒤 열이 37.9도까지 오르고 기침, 가래 등의 증상이 뚜렷해지자 전북도청에 신고했다. 전북도는 의사환자(조사대상 유증상자)로 분류하고 군산의료원에서 X-RAY 등 인플루엔자 검사와 전북보건환경연구원에서 검체를 채취해 검사를 진행했으나 음성 판정을 받고 격리해제 됐었다. 이 환자는 29일 군산의 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으며, 이마트 군산점 등을 들린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증세가 호전되지 않자 또다시 국가지정격리병상인 원광대병원에 입원, 폐CT 등 2차 검사를 받았으며 31일 최종 양성 판정을 받았다. 
   
전북도에 따르면 4일 현재 국내 8번 확진자 A씨가 전북에서 접촉한 시민이 39명이다. 여기에는 그동안 파악되지 않았던 군산시내 대중목욕탕(아센사우나)을 찾은 9명이 처음 포함됐다. 또 A씨가 의심증세로 입원해 확진 판정을 받은 원광대병원 의료·보건 종사자 13명과 군산시내 병원·식당·대형마트의 접촉자도 포함됐다. 전북에서는 군산 26명, 익산 13명이며 전북 이외 지역 접촉자도 35명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국내 여덟번째 확진자가 다녀간 것으로 확인돼 문을 닫았던 이마트 전북 군산점이 2월 3일 영업을 재개한 가운데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국내 여덟번째 확진자가 다녀간 것으로 확인돼 문을 닫았던 이마트 전북 군산점이 2월 3일 영업을 재개한 가운데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지역사회 비상체제 돌입…모든 유치원·초·중·고교 휴업 돌입

전북도와 보건당국은 자가격리자 44명을 포함한 도내 능동감시 대상자 113명에 대해 하루 2차례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특히 A씨가 대중목욕탕에 다녀간 26일 오후 2∼5시 같은 곳을 방문했다고 신고한 시민 190명을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벌이고 있다. A씨가 30여분간 머물렀던 이마트 군산점은 확진일인 지난달 31일 오후부터 2일까지 임시 휴업했다. 이마트 군산점과 대중목욕탕은 3일부터 정상 영업을 시작했다. A씨가 방문했던 군산의 음식점들과 내과는 이날도 문을 닫았다. 

군산에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환자가 발생하자 지역사회가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시는 지역 어린이집 206곳과 아동센터 46곳에 대해서도 긴급 휴원 명령을 내렸다. 어린이집과 아동센터는 오는 8일까지, 유치원과 초·중·고교·특수학교는 14일까지 각각 문을 닫는다. 군산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8번째 확진자가 지역의 대형마트와 목욕탕 등을 거쳐 간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예방 차원에서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시는 당분간 공공 부문의 다중이용시설을 휴장하고 체육대회와 문화행사도 취소했다. 체육시설은 수영장과 실내 배드민턴장 등이 대상이며 오는 9일까지 휴장한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도서관과 박물관, 철새 조망대도 당분간 문을 닫는다. 이달 열릴 예정이었던 금석배 축구대회를 비롯한 6개 체육대회는 모두 취소한다. 7∼8일 개최하려던 째보선창 인심축제와 읍·면·동별 정월대보름 행사도 취소하기로 했다. 시민정보화교육과 읍·면·동의 주민자치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평생학습관과 여성사회대학 등은 개강을 24일 이후로 연기하기로 했다. 군산시는 사태 추이를 지켜보며 공공시설의 재개장 여부 등을 결정하기로 했다.

채효 군산시 공보담당관은 “바이러스 잠복기간 등을 감안하면 각종 학교 휴업 기한인 ‘14일’이 확산 여부에 따른 시민 불안감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관측한다”며 “비록 지금은 혹독한 시간이지만 모든 시민이 똘똘 뭉쳐 이겨내 위기를 군산발전의 반전의 기회로 삼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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