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정 모두 ‘퍼스트 무버’ 돼야 AI 인재 국내에 머문다
  • 이지형 성균관대 인공지능(AI)학과 학과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1 16:00
  • 호수 1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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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대학과 기업에 ‘AI 미래’ 빼앗기지 않을 생태계 가동 시급

바야흐로 인공지능(AI) 시대다. AI 인재에 대한 수요가 넘쳐난다. 어떤 곳에서든 데이터가 쌓이고 있고, 그 데이터를 이용한 부가가치 생산은 선택이 아닌 필수 요건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AI 인재는 현장의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는 것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수요-공급의 불균형은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닌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AI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기존의 인력 공급 인프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AI 인력 수요에 대응하고, 국내 AI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고자 정부는 2019년 AI대학원 사업을 추진했다. 그해 봄 고려대, 성균관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3곳과 가을에 포항공대(포스텍), 광주과학기술원(GIST) 등 2곳을 선정했다. 오는 3월이면 총 5개 대학이 AI대학원을 운영하게 된다. AI대학원은 세계 수준의 고급 AI 인력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필자가 총괄 책임을 맡고 있는 성균관대 AI대학원은 현장 중심의 AI 혁신·융합 교육 및 연구를 수행하고, 현장밀착형 산학 협력 활동과 다양한 해외 협력을 통해 국제 경쟁력을 갖춘 AI 선도 인재를 양성하고자 한다. 

필자는 AI대학원을 맡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고민도 많이 했다. ‘어떻게 세계 최고의 AI 인재를 양성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외의 인재를 유치할 것인가’ ‘어떻게 국내 인재를 국내에 머무르게 할 것인가’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과 인력의 질이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인데도 이런 질문이 유효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지형 성균관대 AI학과 학과장이 2019년 3월27일 열린 입학설명회에서 대학원 설립 및 운영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성균관대 제공
이지형 성균관대 AI학과 학과장이 2019년 3월27일 열린 입학설명회에서 대학원 설립 및 운영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성균관대 제공

인재 양성 위해선 ‘교육+α’ 필요  

곱씹어 보니 세계 최고 인재 양성을 위해 부족한 것이 있었다. 바로 인재 양성을 위한 생태계다. 세계 최고 인재는 단순히 교육 시스템으로 양성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기업이 세계 최고의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고의 인재가 나올 수 있을까. 나온다 한들 우리나라 기업에 머무르려 할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고의 인재가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기업이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될 수 있는가. 이 문제들은 서로 얽혀 있으므로 잘 풀어 순환되도록 하지 않는다면 세계적 수준의 AI 인재 양성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AI 인력 양성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정부는 좀 더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정부는 국민 세금으로 일하는 곳이니 당연히 형평성과 균형성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기계적 균형미’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매우 빠르게 변화하는 AI 기술의 특징을 고려해야 한다. 필요한 AI 인재의 질적·양적 수준에 따른 수요를 추산하고, 이를 양성할 수 있는 효율적 방안을 마련해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이미 설립된 AI대학원의 경우 세계 수준의 인재 양성을 위한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집중 투자해 우리나라 AI를 이끌어 갈 인재들을 장기적 안목에서 안정적으로 양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또 하나는 AI 인재들이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대학이 배출한 인재가 계속 생존하지 못한다면, 대학에선 인재를 양성할 수 없다. 대학을 졸업한 인재가 일할 기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기업이 잘돼야 인재가 크고, 인재가 커야 기업이 큰다. 이 선순환 구조를 위한 토대를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가 기업들에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빠른 추격자)가 아닌 퍼스트 무버(first mover·선도자)가 돼라고 요구하듯 정부도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 과거에 하던 대로 ‘되는 것은 되고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한다면, 이것은 패스트 팔로워만도 못한 전략이다. 기업이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해 퍼스트 무버가 되듯 정부도 그렇게 해야 한다. 정부는 AI 관련 회사들이 혁신적 성장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줘야 한다. 이것이 인공지능 시대에 ‘퍼스트 무버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국내 대학들, 세계가 주목할 연구 해야 

AI 인재 양성 생태계의 꽃은 기업이다. 기업은 AI 인재가 뿌리내리고 일하면서 최종 가치를 생산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AI 인재를 양성하는 목적이 바로 기업을 위해서다. 따라서 기업은 인재 양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더욱이 누구를 보면서 따라갈 수가 없는 퍼스트 무버에게는 인재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잘 익은 과일만 찾으면 익기 전에 다른 사람이 따간다. 기업도 대학과 인턴십 등 산학 협력 및 인력 교류에 적극적이고 실제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제는 대학 졸업 후 기업 취직이란 단순 연결에 머물러선 안 된다. 대학과 기업이 거리를 좁히고 서로 중첩해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그래야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인재가 양성되고 현장의 문제로부터 세계적 기술을 개발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생태계 순환의 원동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아울러 AI 인재 양성의 핵심이 되는 곳은 대학이다. 그런데 대학이 핵심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최고 대학을 나온 사람을 영입해 세계 최고 대학의 연구를 따라 해서 세계 최고의 학술지나 학술대회에 발표하는 것을 세계 최고 AI 대학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진 않은가 반성해야 한다. 이는 그저 패스트 팔로워 전략일 뿐이다. 우리가 아는 세계 최고 대학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대학은 이제 퍼스트 무버로서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세계 사람들이 보고 따라 할 수 있는 새로운 연구와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 우리 대학이 남들이 찾지 못한 새로운 AI 관련 문제를 찾아내야 한다. 또 그 안에 있는 새로운 가치를 발굴해 세계가 우리를 주목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은 인재를 얻기 위해, 학생은 인재가 되기 위해 우리 대학을 주목하고 선택할 것이다. 이것이 생태계 순환의 시작점이 된다. 

이렇게 정부-기업-대학이 모두 퍼스트 무버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 AI 인력 생태는 자연스럽게 구축돼 선순환하면서 우리나라의 AI 산업과 기술도 자연스레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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