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내분으로 번지는 ‘우한 포비아’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0 11:00
  • 호수 1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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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 귀향자가 전하는 ‘코로나 공포증’
우한 주민 신상 공개되고, 미등록 우한 주민 현상금도 걸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이 확산하면서 성과 성, 도시와 도시의 이동을 제한하는 조치가 줄지어 나오고 있다. 외출 금지령은 지난 2월2일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에서도 발동됐다. 원저우는 우한에서 멀리 떨어진 연해 도시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환자가 저장성 내에 가장 많다. 따라서 원저우는 외출 금지령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로 통하는 고속도로를 봉쇄하는 조치도 단행했다. 현재 중국 정부가 공식 확인하고 있지 않지만, 후베이(湖北)성을 둘러싼 6개 성·시 대부분이 후베이 사람의 진입을 직간접적으로 막고 있다. 후베이성 내에서는 우한에서 다른 도시로 나간 주민을 찾아내 격리하고 있다. 그리고 수팅(가명·여)도 그 격리된 이들 중 한 명이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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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을·직장·학교의 안전은 스스로 지켜야”

수팅은 우한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한 부동산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수팅에 따르면 1월22일 오전부터 우한이 봉쇄될지 모른다는 소문이 시중에 떠돌았다. 그러자 휴가원을 내고 일찍 고향에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당일 밤 입석표를 구매해 샤오간(孝感)으로 향하는 고속열차에 몸을 실었다. 샤오간은 우한 서북쪽으로 72㎞ 떨어진 후베이성 내 도시다. 밤늦게 집에 돌아온 수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1월23일 전면적인 우한 봉쇄령이 내려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튿날 샤오간 시정부는 우한에서 귀향한 사람에게 자진 신고토록 명령했다.

수팅은 주민위원회 사무소로 찾아가서 등록했다. 촌민위원회는 그에게 △2주 동안 일절 외출을 삼갈 것 △날마다 체온을 재서 위챗(微信)으로 촌민위원회에 보고할 것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도 마스크를 쓰고, 따로 식사하며 오직 개인 식기만 쓸 것 등을 명령받았다. 수팅은 “매일 온도계로 체온을 체크해 보고하지만 3~4일에 한 번씩 촌민위원회 관계자가 직접 와서 확인한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고향에 돌아와서 가족들에게 폐를 끼친 게 너무 미안하다”며 “집 밖 대문에는 ‘우한 귀향자의 집’이라는 딱지가 있어 가족들이 이웃들에게 눈총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후베이성과 인접한 충칭(重慶)시에서도 며칠 전 대대적인 가구 조사를 벌였다. 각 가정에 우한이나 후베이에서 온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조치였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도 경찰과 촌민위원회가 함께 가가호호 방문해 조사했다. 불과 한 달여 전 필자는 아파트 관리소에 인적 사항을 재등록했으나, 이번에 다시 찾아온 경찰에게 여권과 입주증명서를 검사받았다. 하지만 이는 우한 혹은 후베이 주민들이 대륙 전역에서 겪는 포비아 현상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1월27일 허베이(河北)성 스자좡(石家莊)시의 징징쾅(井陉礦)구는 지방조례를 발표했다. 한데 그 내용이 황당했다.

1월14일 이후 우한에서 돌아온 사람 중 ‘미등록자’를 신고한 주민에게 2000위안(약 34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우한 사람을 색출하려고 현상금을 지급하는 지방정부는 징징쾅구뿐만 아니다. 이미 여러 성·시의 구와 현이 300~1000위안의 현상금을 공공연하게 내걸고 있다. 후베이성과 인접한 허난(河南), 안후이(安徽), 장시 등지의 여러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나서서 후베이와 통하는 도로와 터널을 돌벽이나 흙으로 막았다. 또한 마을 입구에 자체 검문소를 설치해 오가는 사람을 검문검색하며 후베이 주민의 진입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당은 뒤로 빠진 채 관련 부서·지방정부가 전면에

지난 2월2일 중국 SNS와 커뮤니티 사이트에 한 모녀의 사연이 올라왔다. 사연은 이랬다. 하루 전날 루웨진이라는 50세 여성이 26살인 딸과 함께 주장(九江)대교를 건너려 했다. 딸은 백혈병 환자로, 본래 후베이성 우한의 한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환자들이 병원으로 몰려들었다. 그로 인해 항암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고향인 황메이(黃梅)현으로 돌아갔으나, 딸의 병세는 갈수록 위중해졌다. 결국 루웨진은 온몸을 이불로 둘러매고 마스크를 쓴 딸과 함께 장시(江西)성 주장시로 가려고 길을 나섰다.

그러나 주장대교 장시 방면의 검문소에서 두 모녀의 발길이 막혔다. 경찰이 “후베이성 봉쇄령이 떨어졌다”며 장시성으로 넘어오는 걸 거부했기 때문이다. 주장시는 1월25일부터 후베이성에서 넘어오는 모든 사람과 차량의 통행을 막은 상태였다. 다리 위에 달린 확성기에서는 “후베이성 주민은 주장시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경고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에 루웨진은 “나는 갈 필요가 없으니 제발 내 딸만 가게 해 달라”며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루웨진의 호소가 1시간여 동안 이어지자, 주장 시정부는 두 모녀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두 모녀는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에 갈 수 있었다.

이 이야기에 수천 건의 댓글이 달리면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대부분 주장 시정부의 인도적인 처사를 칭찬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간간이 두 모녀를 비판하고 현재 중국이 겪고 있는 상황을 비판하는 댓글도 있었다. 황메이현은 행정구역상 황강(黃岡)에 속한다. 황강은 우한과 인접한 인구 750만 명의 도시다. 2월5일까지 황강시의 신종 코로나 확진 환자는 1645명, 사망자는 25명이 발생했다. 이는 도시 단위로 우한 다음으로 많다. 우한에 대한 전면 봉쇄 이전에 60만~70만 명의 사람이 황강으로 넘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1월23일 아침 고향으로 돌아간 루웨진 모녀도 있었다.

따라서 일부 네티즌은 댓글로 “사정은 딱하지만 다른 이들을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행위”라고 비난했다. 현재 황강은 신종 코로나 환자 수가 급증해 ‘제2의 우한’이 돼 가고 있다. 그로 인해 2월1일부터는 ‘긴급 통지’를 발표해 중국 최초로 외출 금지령을 내렸다. 즉 모든 가구는 이틀에 한 번씩 오직 1명만 외출해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다. 이를 어기면 공안기관이 체포해 엄중히 처벌토록 했다. 예외는 환자나 의사, 방역요원, 약국 근무자 등이다. 이를 위해 시내 곳곳에는 검문소가 설치됐고, 통행하는 사람과 차량이 통행증을 소지했는지 검사하고 있다.

현재 중국 SNS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같은 마을에 살거나, 같은 직장과 학교에 다니는 우한 출신의 신상털기가 벌어졌다. 이미 수천 명의 우한 출신의 이름·주소·전화번호·이동 상황 등이 온라인에 퍼졌다. 이런 현실에 중국인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일각에서 “같은 중국인인데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다. 하지만 “내 마을, 내 직장, 내 학교의 안전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이에 따라 자오커즈(趙克志) 공안부장은 신종 코로나 대책회의에서 “허가 없이 마음대로 도로를 막고 검문소를 설치하면 법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대륙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된 신종 코로나의 공포로 인해 당장 중국인들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일 뿐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권위와 가장 높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공산당의 방침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당의 방침’은 중국인이라면 어겨서는 안 되는 절대선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중국은 신종 코로나 관련 대처에 있어 당은 뒤로 빠진 채 관련 부서와 지방정부가 앞장서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대해 중국의 한 변호사는 필자에게 “신종 코로나 덕분에 중국이 서구 국가들처럼 지방자치제를 실시하게 됐다”고 자조 섞인 어조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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