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소정당 전수조사]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틈새 뚫을 수 있을까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0 16:00
  • 호수 1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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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결혼미래·규제개혁…군소정당들은 선명성 전쟁 중
29개 군소정당 전수조사…연락처 먹통, 유령 사무실도 많아

기본소득당, 새벽당, 코리아당, 한민족사명당….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정당 수는 39개. 이 중 원내의석을 갖지 못한, 이름부터 낯선 원외 군소정당은 29개에 이른다. 여기에 창당준비위원회를 꾸려 총선 전 정식 창당을 준비하고 있는 곳도 21개나 된다. 이번 4·15 총선에선 지난 20대 총선의 2배인 50여 개 정당이 투표용지에 이름을 올려, 용지 길이만 75cm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의 활발한 총선 도전은 비례대표 득표율에 가깝게 의석을 배분하도록 바꾼 준연동형비례대표제의 수혜를 노린 것이란 분석이 많다. 그러나 비례대표 최소 기준인 득표율 3%의 벽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게다가 선거철 집집마다 배달되는 선거공보물 제작비만 해도 최소 2억원. 한 쪽짜리 공보물을 만들기도 넉넉지 않은 대다수 군소정당은 선명성 짙은 당명과 캐치프레이즈를 대신 내세워 ‘셀프 홍보’에 나서고 있다. “모두에게 기본소득 60만원”(기본소득당), “전 국민 무료 결혼 정보서비스”(결혼미래당), “규제 부처 축소, 인공지능 공무원 도입”(규제개혁당), “반(反)중국·친(親)미국”(새벽당) 등이 대표적이다.

29개 군소정당 중 20대 국회 들어 새로 만들어진 정당은 9개다. 30대 안팎의 젊은 리더들이 청년정치가 실종된 국회를 비판하며 만든 경우가 여럿이다. 자연히 당원들의 평균 연령도 낮다. 1990년생 용혜인 대표가 이끄는 기본소득당 당원 1만8000여 명의 평균 연령은 약 27세다. 용 대표는 “1020 세대가 전체 85%를 이루고 있다. 우리가 내건 기본소득 60만원으로 삶의 변화를 가장 크게 느낄 세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올드한 보수 이미지를 깨겠다며 창당한 새벽당은 과거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옆에서 함께 단식하던 1985년생 박결 대표가 이끌고 있다. “기성 정당의 꽃꽂이가 되지 않겠다”며 세대교체를 들고나온 미래당 또한 3040 세대인 오태양·김소희 공동대표를 앞세우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미래한국당 창당에 대한 원외 군소정당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사진은 2월5일 미래한국당 창당대회에서 창당 반대를 외치다 제지당하는 오태양 미래당 공동대표 ⓒ 시사저널 박은숙
자유한국당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미래한국당 창당에 대한 원외 군소정당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사진은 2월5일 미래한국당 창당대회에서 창당 반대를 외치다 제지당하는 오태양 미래당 공동대표 ⓒ 시사저널 박은숙

정당 주소지 직접 찾아가보니 주택·술집

이들 군소정당에 대해 시대 흐름을 다양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일부 정당의 경우 엄숙한 총선판을 희화화하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우후죽순 생겨난 이들 정당을 선관위 차원에서 하나하나 관리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총선을 두 달 남짓 남긴 지금, 군소정당들은 국회의 견고한 벽을 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시사저널은 선관위에 등록된 공식 연락처와 선거사무소 주소를 중심으로 29개 군소정당의 현황을 조사했다.

선관위 홈페이지에 전화번호가 적혀 있지 않은 그린불교연합당을 제외한 28개 정당 연락처로 닷새간 몇 차례씩 통화를 시도했지만, 당 대표 및 정당 관계자와 바로 연결된 경우는 12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16개 정당 중 9곳은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으며, 7곳은 ‘없는 번호’ 또는 ‘고객의 사정으로 통화가 어렵다’ ‘전원이 꺼져 있다’는 등의 안내음이 흘렀다. 이들 정당 가운데는 휴대전화에 번호를 입력했을 때, 강남의 고깃집 상호가 뜨는 곳도 있었다.

선거사무소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관위에 등록된 주소에 따르면 이들 선거사무소는 대부분 서울 시내 상가빌딩이나 오피스텔에 위치해 있었다. 주소가 불분명하거나 연립주택·아파트가 주소로 명시돼 있는 일부 정당의 선거사무소를 직접 찾아간 결과, 상당 기간 인적이 느껴지지 않는 곳도 여럿이었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한 상가를 주소로 등록한 친박연대 사무실. 2012년 선관위에 등록된 이 당은 과거 친(親)박근혜계 의원들이 모여 유력하게 활동했던 친박연대 당명을 그대로 인용한 신설 정당이다. 기자가 2월3일 방문했을 때, 사무실 문에는 3개월 전의 우편물 도착 안내서와 2019년 12월4일자로 전기 공급을 끊겠다는 통보문이 붙어 있었다. 여러 번 노크했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는 휴대폰 매장 직원은 “오랫동안 위층(친박연대)을 오가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친박연대 관계자는 2월5일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2월 내로 여의도에 새 사무실을 꾸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친박연대 사무실 문에 수개월 치의 우편물 도착안내서와 전기사용계약 해지 통보문이 붙어 있다. ⓒ 시사저널 구민주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친박연대 사무실 문에 수개월 치의 우편물 도착안내서와 전기사용계약 해지 통보문이 붙어 있다. ⓒ 시사저널 구민주

그 밖에 2013년 4월 선관위에 등록된 한나라당은 서울 종로구 ‘서촌 먹자골목’ 인근 연립주택을 선거사무소로 등록해 놓았다. 2019년 7월 창당 후 4만여 명의 당원을 보유한 새벽당 주소엔 선거사무소 대신 술집이 위치해 있었다. 이에 대해 박결 새벽당 대표는 시사저널에 “선관위 홈페이지에 등록된 신촌 주소지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한 상태”라고 해명했다.

보통 선거철에만 반짝 뜨는 군소정당들은 대부분 선거에서 1석도 얻지 못하고 사라지는 게 현실이다. 20대 총선 당시에도 ‘흙수저당’ ‘거지당’(거대한 지혜를 모으자는 뜻) 등이 등장했다가 곧 사라졌다. 이번에 준연동형비례대표제가 도입돼 군소정당들의 도전을 촉진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원내 진입을 막는 장벽은 여전하다. 전국적으로 정당 득표율 3% 이상을 얻어야 비례대표 의석을 받을 자격이 주어지는 봉쇄 조항이 대표적이다. 20대 총선에서 이 3%를 넘긴 정당은 21개 정당 중 4개에 불과했다.

“바뀐 선거법 더 힘들다…위성정당 코미디”

정치 선진국으로 꼽히는 독일은 2013년 총선 이듬해 우리와 같은 3% 최소 기준을 폐지했다. 선거 직후 군소정당들이 해당 조항의 위헌성을 헌법재판소에 제소했고, 헌재가 “이 기준이 정당들의 공정한 기회를 저해한다”며 위헌 판결을 한 것이다.

여기에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창당하면서 군소정당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실제 2월5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한국당 창당대회에 미래당 오태양 대표가 난입해 “가짜 정당 해산하라”고 외치는 소동도 있었다. 군소정당 대표들은 “오히려 지난 총선보다 비례대표 의석 얻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이래원 국제녹색당 대표는 “바뀐 선거법 영향으로 정당들이 더 난립해 우리끼리의 경쟁만 더 치열해졌다”며 “한국당까지 위성정당을 만들며 정치판을 코미디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용상 인권정당 대표 역시 “선거법을 바꿨어도 결국 거대 정당들이 지역구도 먹고 비례대표도 다 먹게 될 거다. 이번에도 (군소정당은) 어느 한 당 국회에 새로 들어가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차라리 비례대표를 포기하고 지역구 도전에 나서 ‘장렬히 전사하겠다’는 아이러니한 풍경도 벌어지고 있다. 특히 정치 1번지라 불리는 서울 종로 출마를 결단한 코리아당·인권정당·새벽당 등 군소정당 대표들이 여럿이다. 여기에 창당준비위를 등록한 후 창당의 최소 조건인 당원 5000명 모집을 위해 뛰고 있는 21개 예비정당 가운데에도 현재 지역구 도전을 노리는 이가 적지 않아 군소정당 출마 후보군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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