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대권 꿈꾼다면 황교안·유승민과 같은 링에서 싸워라”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2.07 11:00
  • 호수 1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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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형준 혁신통합추진위원장 “절대강자 없는 보수 대권판, 안 전 대표에게 기회일 수도”

왼쪽으로 기울어진 정치판에서, 통합은 보수·중도 진영의 숙명이 됐다. 그러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지난 1월9일 혁신통합추진위원회(혁통위)가 출범하면서 통합 발판은 마련됐지만, 통합 범위와 방법 등을 두고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 간 샅바 싸움이 한창이다. 통합 대상으로 꼽히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통합 대신 신당 카드를 빼들었다. ‘반문 텐트’ 아래서 ‘동상이몽’만 계속되는 상황. 과연 총선 전 보수·중도 통합은 현실화할 수 있을까.

2월3일 여의도에서 만난 박형준 혁통위원장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면서도 “유력 대선후보들이 같은 링에 올라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이 보수·중도의 경쟁력을 키우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신당 창당을 선언한 안철수 전 대표에 대해서는 “나와 생각이 많이 다르지 않다”며 여전히 통합 가능성을 열어뒀다. 다만 “3등만 양산하는 정당을 만드는 건 현 국면에서 분열만 낳을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그는 “밑바닥 민심을 보면 ‘문재인 정권 심판론’이 확산하고 있다”며 오는 총선에서 보수 야권의 반격을 예고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 시사저널 최준필

“황교안·유승민 이견, 민주주의 단면일 뿐”

혁통위원장 수락 이유가 궁금하다. 잘해도 욕만 먹을 자리 아닌가.

“중이 자기 머리를 스스로 못 깎으니까(웃음). 사실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이른바 적폐청산 이후 보수가 궤멸 직전이다. 누군가는 찢어진 걸 꿰매야 했다. 범보수 통합을 추진하는 단체인 플랫폼 ‘자유와 공화’ 공동의장을 맡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혁통위원장 수락 전부터) 물밑으로 다양한 정치세력들하고 교감해 왔다. 무엇보다 보수·중도가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하는 것을 국민이 보고 싶어 하지 않나.”

중재자 아닌 선수가 돼 출마할 수도 있었는데.

“그런 욕망이 불쑥불쑥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선수로 뛰면 사익을 생각 안 할 수 있겠나. 자기 입지를 자꾸 생각할 것이다. 안 그래도 어려운 게 통합 작업이다. 나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기 위해 불출마 선언부터 했다.”

결국 통합이 되려면 당 지도부 간의 담판이 있어야 한다. 황교안 대표와 유승민 위원장 사이에 이견이 있어 보인다.

“그 두 분이 갖고 있는 정치적 상징성이란 게 있다. 다만 손바닥도 마주쳐야 박수를 친다고, 어느 한 쪽만의 의지로 (통합을) 억지로 할 수 없다. 통합 열차는 출발했고, 결국 때가 오면 일정한 수준에서 (이견이) 좁혀져 하나로 아우르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민주주의 정치는 일정한 싸움을 조건으로 하기에 (갈등을) 완벽히 없앤다는 건 애초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통합이 강조되는 건 싸움에도 길이 있어서다. 같이 싸우더라도 소위 링을 벗어나서 싸워서는 안 된다.”

정치는 견제와 균형을 바탕으로 돌아가지 않나. 생각이 다르면 꼭 같은 링으로 올라갈 필요가 있을까.

“우리나라 정치는 적대가 너무 심하다. 각자가 자기 진영만 생각하는 정치 구도가 만들어졌는데, 이걸 중화시키려면 어느 정도 의견을 수렴해 나가면서 다퉈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책임 있는 정치다. (통합신당에) 합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다만 그렇게 꾸려낸 정당에서 수많은 정치 지망생을 운반할 수 있을까. 정치 지도자 몇 명만 살기 위한 정당이 되면 곤란하다. 그러면 분열만 계속될 것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박형준 혁신통합추진위원장 등이 1월31일 국회에서 열린 혁신통합추진위원회 제1차 대국민보고대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박형준 혁신통합추진위원장 등이 1월31일 국회에서 열린 혁신통합추진위원회 제1차 대국민보고대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지역 기반 없는 안철수의 신당, 3등만 양산할 것”

보수와 중도를 아우르는 통합을 말했다. 그러나 우리공화당이나 김문수 전 경기지사, 전광훈 목사 등 극우세력이 중도진영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시하고 있다. 한 지붕 아래 공존이 가능한가.

“참 어려운 문제다. 다만 당의 정체성을 너무 좁게 설정하는 것은 과거 계급정당과 비슷한 모델이라 생각한다. 변해야 한다. 하나의 당이 단일한 정체성을 가질 필요가 없다. 캐치올파티(catch-all party·특정한 계급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표하고자 하는 정당)가 옳은 방향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분열해 나가겠단 세력을 억지로 잡을 필요도 없다. 물론 묻고는 싶다. ‘정말 뭣이 중헌디?’라고. 힘을 합쳐서 보수를 재건하고 혁신하고 통합해,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안철수 전 대표는 신당을 꾸려 총선을 치르려 한다.

“(안 전 대표와) 비슷한 색을 갖는 사람이 이미 (통합신당에) 많이 합류했다. 문병호 전 의원과 김영환 전 의원을 비롯해 국민의당·바른미래당 지역위원장 및 당직자 출신이 많이 들어왔다. 안 전 대표가 중도신당을 내세우는데, 우리와 생각이 많이 다르지 않다고 본다. 다만 (안철수신당이) 완전 새로운 모습도 아니고, 우려를 안 할 수 없다. 안 전 대표는 (지난 총선에서) 호남을 기반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안 전 대표는 호남 기반을 잃었다. 지역 기반이 없다면 (안철수신당이) 총선에서 딱 3등들만 양산하고 비례 몇 석을 얻는 정당이 될 수 있다. 그런 정당이 얼마나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안 전 대표 입장에선 보수세력 위주인 통합신당에 합류할 경우 득보다 실이 클 수도 있다. 같은 당에 몸담을 경우 황교안 대표와의 세 다툼에서 불리할 수도 있다.

“물론 대권주자들은 독립적인 존재감을 갖고 싶어 한다. 이해한다. 그러나 대선을 노린다면 당내 예선전부터 재밌어야 한다.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지지도를 올린 것처럼 말이다. 같은 링에서 유력 대선후보들이 올라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이 보수·중도의 전체 파이를 키우는 길이다. 황 대표를 포함해 아직 야권 내 절대 강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보수와 중도가 합친 후 시너지를 발휘해 판을 키우는 전략으로 가야 한다. 독불장군에게 미래는 없고, 명분에 집착하면 전략이 안 나온다.”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형집행정지·가석방) 얘기가 나온다. 

“대법원 판결도 나기 전에 사면을 하라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법 감정이다. 전직 대통령이 3년씩 교도소에 갇혔던 적이 있었나. 박 전 대통령의 건강도 좋지 않다. 국민이 원한다면 문 대통령도 결단해야 한다. 국민 통합의 관점에서도 그게 맞다.”

여권에서는 ‘박 전 대통령 사면’을 총선판을 흔들기 위한 꼼수라고 비판한다. 국민 통합이 아닌 분열만 부추긴다는 주장이다.

“과거 대통령들도 민심 이반이 심할 때는 반대편 민심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자기 지지층의 요구만 듣는 게 책임 있는 정치인의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자기 지지층만 생각하고 정치를 한다. ‘조국 사태’를 봐라. 문재인 정권에 대한 실망이 이미 중도까지 넘어왔다. 그래서 보수·중도 진영 통합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늘어난 무당파, 통합신당에는 기회”

선거철마다 되풀이되는 당의 이합집산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안 변하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변하는 게 좋고, 조금 변할 바에는 제대로 변하는 게 좋다. 문제가 있는 상태로 유지하는 게 더 큰 문제다.”

민주당에 실망한 유권자가 한국당에 표를 던지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 최근 ‘무당파’가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맞다. 실제 한국당의 가장 큰 문제가 ‘비호감’ 이미지가 너무 두텁다는 것이다. 이걸 극복해야 한다. ‘도로한국당’이 아닌 한국당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보여줘야 (표심을) 잡을 수 있다. 그래서 혁신이 중요하고, 실제 황교안 대표도 의지를 보여줬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이 되면서 당내 잡음도 많았지 않나. 황 대표가 혁신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실제 꽤 큰 공천 혁신이 이뤄질 것이다. 과거와 같이 보스가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하는 물갈이가 아니라, 새로운 사람으로 당을 채울 계기를 마련해 준 셈이다.”

통합신당 출범이 코앞이다. 지도체제 등이 정해졌나.

“많은 상황과 변수가 있다. 통합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되느냐의 문제인데, 일단 협의가 진행되어 봐야 알 수 있다. (지도체제 등은) 확정이 안 됐다.”

통합 작업 완료되면, 21대 총선에서 의석수를 어떻게 예상하나.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문제도 발생했고, 경제·안보 이슈도 쌓여 있다. 이런 문제들이 총선 전 어떻게 해결되느냐에 따라 결과도 갈릴 것이다. 현재는 여야 모두 상대의 실수만 기대하는 모습이고, 지금 의석수를 예상하는 건 무의미하다. 다만 밑바닥의 저류로 보면 문재인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확산하고 있다. 야권에 분명 유리한 지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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