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콘텐츠와 쇼핑의 경계를 허물었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2 14:00
  • 호수 1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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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노린 콘텐츠 커머스가 시장에서 뜬 이유

29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하나의 영상이 재생된다. 선택한 영상은 ‘직장인 출근 룩’이다. 한 가지 코트를 두 번에 걸쳐 입으면서 두 가지 콘셉트를 보여준다. 영상에 등장하는 패션 아이템인 셔츠, 슬랙스, 타이, 코트가 하단에 작은 상품 사진으로 떠 있다. 누르면 바로 구매 페이지로 넘어간다. TV 채널을 돌리듯 위아래로 영상을 골라 가면서 시청할 수 있고, 굳이 아이템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머플러 매는 법’ ‘직장인 코디법’ 등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지난 1월, 29초 쇼퍼블(Shoppable) 비디오 29TV를 정식 출시한 온라인 편집숍 29CM의 얘기다.

MZ세대(1980~2000년생인 밀레니얼 세대와 1995~2004년 Z세대)를 타깃으로 한 콘텐츠 커머스가 떠오르고 있다. 태생은 ‘온라인’, 사람을 모으는 방법은 ‘영상’이다. 영상의 종류도 과거 홈쇼핑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홈쇼핑이 반복적으로 상품의 정보와 장점을 나열하는 것이라면, 콘텐츠 커머스는 MZ세대가 상품을 보고 ‘직접’ 판단하게 한다. ‘꼭 구매하시라’ ‘놓치면 후회한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젊은 세대의 호흡에 맞춘 숏폼(짧은 단위로 소비되는 영상)과 그들의 흥미를 끄는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 영상이 상품을 알리기 위해 활용된다. 영상으로 광고하는 시대, 이제 콘텐츠와 커머스의 경계가 무너졌다.

이제, 영상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좀 ‘해 봤다’는 사람들이라면, ‘한강물도 걸러준다’는 샤워기 영상을 기억할 것이다. 일반 샤워기를 반으로 잘라 녹슨 내부를 보여주고, 새 샤워기로 한강 물을 끌어 올려 샤워하면서 샤워기가 얼마나 오염물질을 여과하는지 실험하는 영상들이다. 성일화학이라는 무명의 중소기업이 생산하는 샤워기를 연간 수십만 개 팔리는 스타 상품으로 만들어버린 이 영상은 차세대 유니콘으로 주목받는 블랭크코퍼레이션(블랭크)의 작품이다.

베개에 닿는 머리 무게를 분산해 목의 편안함을 유지하게 만든 ‘마약베개’ 역시 영상으로 입소문을 탔다. 달걀을 베개 사이에 넣고 발로 밟아도 깨지지 않는 동영상으로 화제를 모은 이 베개는 140만 개 이상 팔려 나가는 기염을 토했다. 이로 인해 블랭크는 획기적인 제품을 개발하고 이를 영상 콘텐츠로 만들어 판매와 연결하는 콘텐츠 커머스 시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 기업공개(IPO)까지 추진하고 있는 블랭크를 비롯해 지난해 11월 유니콘 기업으로 이름을 올린 무신사, 온라인 패션몰 29CM, 차세대 유니콘으로 주목받고 있는 여성 의류 편집숍 스타일쉐어까지,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MZ세대에게 열광적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 그리고 영상을 통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는 점이다.

29CM가 지난 1월 출시한 29초 쇼퍼블 비디오 29TV. 다양한 영상을 보면서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다.
29CM가 지난 1월 출시한 29초 쇼퍼블 비디오 29TV. 다양한 영상을 보면서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다. ⓒ29CM 29TV 캡쳐

기업들이 영상을 활용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MZ세대가 영상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MZ세대가 선호하는 모바일 콘텐츠는 동영상이 37.4%로 1위였고 텍스트(24.1%), 사진·움짤(12.7%), 그림·일러스트(11.9%)가 그 뒤를 이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MZ세대가 광고와 마케팅을 콘텐츠로 받아들이면서 경계가 모호해졌고, 기업 역시 MZ세대의 의견을 수용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마케팅이기도 하면서 콘텐츠이기도 한 것이 MZ세대의 환영을 받는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한 가지 더. 이미 이커머스 시장에서 MZ세대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 응답자의 86%가 이커머스를 이용한 적이 있고, 미성년자를 포함한 Z세대가 이커머스를 이용해 본 비율도 54%에 달했다. 베이비붐 세대(만 53~72세)의 36.8%만이 이 커머스를 이용해 본 것을 볼 때, MZ세대가 이커머스 시장에서 훨씬 잠재적인 소비자임이 분명하다.

신지형 KISDI ICT통계정보연구실 연구위원은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VOD 이용과 같이 능동적으로 미디어를 소비하며, 전자상거래의 이용자 비율이 높고 온라인에서의 구매 정보 습득이 활성화된 것으로 보인다”며 “어릴 때부터 디지털 기기에 노출되고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는 것에 익숙한 세대다. 이들 세대의 미디어 기기 이용 목적이나 활용 방식은 미디어 콘텐츠 소비, 소통, 정보 습득, 구매 등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더욱 다양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태생은 온라인, 성장도 온라인

MZ세대를 끌어들인 기업들의 태생은 온라인이었다. 온라인의 장점은 콘텐츠 커머스 영역을 확장하는 데 거침이 없다는 것이다. 블랭크의 남대광 대표는 ‘세상에서 가장 웃긴 동영상’ 채널을 만들고, ‘딩고 뷰티’ ‘딩고 트래블’ 등 멀티 채널을 구축하면서 디지털 공간에서의 콘텐츠 유통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16년 설립된 블랭크는 소비자가 쇼핑몰이 아닌 소셜 미디어에서도 물건을 구매할 수 있도록 새로운 구매 패러다임을 만든 스타트업으로 평가받는다. 이렇게 확산된 콘텐츠 커머스 방식은 이제 대기업에서도 차용하고 있다. 블랭크는 ‘SNS 대란템’을 만들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지난해에는 유튜브를 통해 패션 서바이벌 오디션 예능 ‘고등학생 간지대회(고간지)’를 선보이면서 MZ세대와의 소통을 강화했다. 지금까지 짧은 영상 클립을 노출했던 것과 달리, 유튜브에서 호흡이 긴 예능 프로그램 제작에 도전한 것이다.

블랭크코퍼레이션은 패션 서바이벌 예능 '고등학생간지대회'를 통해 MZ세대와의 소통을 효과적으로 해냈다는 평가다. 우승자 유비는 직접 디렉팅한 패션 브랜드 ‘비펙트’를 론칭했다. ⓒ블랭크 제공
블랭크코퍼레이션은 패션 서바이벌 예능 '고등학생간지대회'를 통해 MZ세대와의 소통을 효과적으로 해냈다는 평가다. 우승자 유비는 직접 디렉팅한 패션 브랜드 ‘비펙트’를 론칭했다. ⓒ블랭크 제공

타깃은 말 그대로 고등학생. 이 프로그램은 13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모았다. 프로그램에 단계적으로 광고 콘텐츠를 넣었고, 고간지 참가자들의 합숙소 곳곳에 자사 제품을 배치해 광고 효과도 얻었다. 블랭크는 현재 고간지 시즌2를 준비 중으로, 올해 3월 중 방영을 앞두고 있다. 올해는 또 추가적인 신규 예능 콘텐츠를 론칭하면서 MZ세대와의 호흡에 나섰다. 초보 자취생과 함께 하는 유튜브 예능 ‘구인구집’과 작가 겸 방송인 허지웅과 함께 하는 유튜브 예능 ‘허지웅답기’ 등이다. 임경호 블랭크코퍼레이션 커뮤니케이션 총괄은 “블랭크의 콘텐츠 프로그램 전략은 콘텐츠의 세계관과 팬덤 위에 브랜드 사업과 커머스를 연계하는 하나의 생태계 마련”이라며 “일례로 Z세대 패션 아이콘을 발굴하는 ‘고등학생 간지대회’ 등을 통해 패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유비’를 선발하고, 유비가 직접 디렉팅한 패션 브랜드 ‘비펙트’ 론칭 등을 통해 다양한 패션 아이템으로 커머스 접점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온라인 패션스토어 1위, 무신사도 마찬가지다. 기업 가치 2조2000억원의 온라인 패션 커머스, 세계 최대 벤처캐피털인 세쿼이아캐피털로부터 200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 한국의 10번째 유니콘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붙는 무신사다. 2003년 인터넷 커퓨니티 프리챌에 만들어진 패션 운동화 커뮤니티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이 지금의 무신사가 되기까지, 그 배경은 온라인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조만호 무신사 대표가 사진과 정보를 공유하던 운동화 커뮤니티는 2006년 웹진의 형태로 변모했고, 2009년 커머스 기능을 도입하면서 지금의 패션 이커머스 기업이 됐다. SNS에서 ‘무신사 룩’ ‘무신사 포즈’ 등의 신조어를 낳으며 국내 스트리트 패션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았고, 무신사가 처음 소개한 커버낫이나 디스이즈네버댓 등 신생 브랜드는 ‘유행템’이 됐다.

무신사는 유튜브 무신사TV를 통해 MZ세대와 영상으로 소통하고 있다. '보이는 소리, 들리는 패션'이라는 설명으로 운영되고 있는 ASMR 영상 '무신소리'는 수만~수십만 건의 조회수를 보이고 있다. ⓒ 유튜브 무신사TV
무신사는 유튜브 무신사TV를 통해 MZ세대와 영상으로 소통하고 있다. '보이는 소리, 들리는 패션'이라는 설명으로 운영되고 있는 ASMR 영상 '무신소리'는 수만~수십만 건의 조회수를 보이고 있다. ⓒ 유튜브 무신사TV

콘텐츠 커머스 사업 전략은 무신사의 드라마틱한 성장세의 배경으로 꼽힌다. 무신사는 콘텐츠 역량 강화를 위해 무신사 매거진과 무신사TV 등 콘텐츠 제작, 운영팀들을 미디어 본부로 통합하고 부문장으로 김현수 이사를 전격 영입했다. 김현수 이사는 CJ ENM 오쇼핑, 티몬 사업기획실장 및 패션사업혁신본부장을 거쳐 29CM 부사장을 역임한 이커머스 콘텐츠 전문가로 통한다. 무신사TV는 출범 8개월 만에 구독자 12만 명을 넘겼다. 지난해 무신사가 공개한 콘텐츠 수는 6만6000개가 넘는다.

여기 올라오는 영상은 ‘본업’이었던 운동화 관련 콘텐츠만이 아니다. 모델 한현민, 래퍼 레디 등 셀럽들의 옷장 공개 영상, ‘출근룩’이나 ‘남친룩’ 정복 영상, 반려견 의상 따라잡기 등 MZ세대가 관심을 보일 만한 영상 속에 자연스럽게 제품을 소개한다. ‘보이는 소리, 들리는 패션’이라는 설명 아래 운영되는 ASMR 영상 ‘무신소리’도 인기다. 캠핑 모닥불 소리, 바버숍에서 면도하는 소리, 신발 분해하는 소리 영상 역시 수만 건의 조회 수를 보이고 있다.

 

이제는 라이브 시대…“콘텐츠 커머스 더 확대될 것”

온라인에서 시작된 패션 플랫폼으로는 SNS 기반의 패션·뷰티 플랫폼 스타일쉐어를 빼놓을 수 없다. ‘스쉐러(스타일쉐어 이용자)’라는 말을 만들어낸 곳이기도 하다. 패션 정보를 묻고 답하는 서비스로 시작된 스타일쉐어는 본래 옷을 직접 찍어 올린 뒤 옷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패션 놀이터’로 2011년 만들어졌다. 2016년 커머스 기능을 도입하면서 Z세대의 주요 패션 플랫폼이 됐다. 15~29세 여성의 80%가 스타일쉐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질 정도로 젊은 여성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10대를 소비자로 끌어당긴 스타일쉐어는, 소비시장에서의 10대 영향력을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벤처캐피털들로부터 꾸준히 투자금을 유치하고 있다. VC업계에서 보는 스타일쉐어의 기업 가치는 20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거래액이 2018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하고, 2018년 인수한 온라인 패션 쇼핑몰 29CM의 매출이 증가한 영향이다.

스타일쉐어가 주력하는 것 역시 ‘영상’이다. 용돈을 현금으로 주로 사용하는 10대 소비자들을 위해 편의점 간편결제 서비스 등을 도입하면서 Z세대 소비자들을 확보해 온 스타일쉐어는 이제 MZ세대 소비자를 굳히기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2월5일 시작한 ‘스쉐라이브’가 그 예다. 고객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상품을 판매하는 비디오 커머스 채널로, 생방송을 시청하면서 마음에 드는 상품을 하단의 버튼을 눌러 구매하는 형태다. 결제를 진행하거나 다른 상품을 구경할 때도, 화면은 계속 재생된다. MZ세대가 주요 고객인 플랫폼답게, 콘텐츠 시청과 쇼핑의 경계를 없애는 데 주력한 것이다.

삼성패션연구소의 《2020년 패션 시장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약 130조원에 이르는 온라인 시장에서 모바일의 비중은 60%를 돌파하면서 전체 시장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유튜브를 비롯한 스트리밍 플랫폼의 영향력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 특히 MZ세대에게 높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플루언서들이 개인 채널에서 상품을 소개하고 브랜드를 추천하면서, 라이브 커머스의 영역으로 진출하고 있다. 라이브 커머스를 위한 전문 플랫폼의 등장도 이어진다. 2019년 2월 실시간 스트리밍 커머스 업체 그립이 론칭된 것도 그 예다. 스타일쉐어 역시 MZ세대를 잡기 위해 이 기류를 탔다. 샌드박스 소속 연두콩, 메가 크리에니터 레이나 등 크리에이터들과 손잡고 정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김익성 한국유통학회장은 “MZ세대의 생각과 감성을 함께할 수 있는 콘텐츠가 있는 동영상이 유대감을 가져오면서 이것이 네트워크로 형성돼 비즈니스화된 것”이라며 “유튜브가 소비광고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 역시 비즈니스 타깃이 MZ세대로 옮겨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MZ세대에게는 문자보다 내용이 있는 영상이 빠른 이해도와 신속한 이미지 형성에 도움이 된다. 콘텐츠 커머스 문화는 더욱 확대될 것이기 때문에 영상의 도덕성, 사회적인 영향력 등도 기업들이 고려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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