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클라쓰》로 보는 ‘드라마×웹툰’의 시너지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5 10:00
  • 호수 1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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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의 경계 얇아지니 웹툰 기반 드라마 전성시대 열려

JTBC 금토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는 작가 광진이 그린 웹툰이 원작이다. 원작 웹툰은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연재되며 2억3000만 건의 누적 조회 수를 기록했다. 평점 9.9를 기록할 정도로 두터운 팬덤도 갖고 있다. 그렇게 ‘인생 웹툰’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런 웹툰이 드라마화할 경우 오히려 부담이 된다. 웹툰과 드라마의 이른바 ‘싱크로율’ 비교가 시작되면 “원작만 못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차별화를 하지 않으면 드라마로서의 색다른 관전 포인트를 제시하지 못해 흥행에 성공하지 못할 수 있다.

놀랍게도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는 2회 만에 5.3%(닐슨 코리아)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덩달아 원작 웹툰 조회 수도 급증했다. 카카오페이지가 드라마 시작과 동시에 이벤트 등으로 적극 뛰어든 것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작품 자체가 드라마화에 최적화돼 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특이하게도 《이태원 클라쓰》의 드라마 대본은 원작자인 광진이 집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광진 스스로 말한 것처럼 《이태원 클라쓰》는 원작 웹툰과 싱크로율이 높다.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하거나 드라마에 맞게 재구성하기보다는 원작의 맛을 충실하게 살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주연을 맡은 박서준과 김다미는 웹툰 속 캐릭터인 박새로이와 조이서가 현실로 뛰쳐나온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스타일도 그렇고 캐릭터의 성격이나 말투까지 그렇다. 원작자가 드라마 작업을 함께 하고 있어 가능한 지점이다.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한 장면 ⓒJTBC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한 장면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인기 비결

원작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고 해도 드라마적 변용이 없는 건 아니다. 심도를 높이는 방식의 차이가 있다. 웹툰은 장르 특성상 화면 전환이 빠르고 스토리 진행 속도도 빠르다. 하지만 드라마는 시청자들이 충분히 감정을 얹을 수 있는 몰입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더 필요하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이태원 클라쓰》는 원작의 스토리를 그대로 가져오지만 그 스토리를 전하는 방식에서는 드라마적 문법들을 따르고 있다. 아마도 원작 웹툰을 본 독자라면 스크롤 한 번으로 넘어가버린 장면이 드라마에서는 꽤 시간을 들여 천천히 보여주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될 것이다.

원작을 거의 그대로 드라마화한 《이태원 클라쓰》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작품 자체가 ‘극화된’ 요소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어느 날 아버지가 일하는 회사 ‘장가’의 장대희(유재명) 회장 아들인 장근원(안보현)이 있는 학교로 박새로이(박서준)가 전학 가는 날에 벌어진 사건으로 시작한다. 회장 아들이라는 이유로 반 친구를 괴롭혀도 선생님조차 뭐라 하지 못하는 걸 본 박새로이는 결국 주먹을 날리고 그 사건으로 인해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무릎 꿇고 사과하면 봐주겠다는 장대희의 요구를 거부한 박새로이는 퇴학을 당하고 그의 아버지 또한 아들의 그런 당당함을 지지하며 퇴사한다. 장가와의 악연은 그 후로도 계속 이어진다. 뺑소니로 사망한 아버지의 범인이 장근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박새로이는 격분해 살인미수를 저질러 결국 감옥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복수를 꿈꾼다. 장대희가 맨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지금의 장가를 이뤄낸 것처럼 자신도 이태원에서 포차로 시작해 성공하겠다는 야심이다.

이처럼 《이태원 클라쓰》는 이야기 구조가 그대로 드라마화해도 별 무리가 없을 만큼 속도감 있고 극화되어 있다. 팽팽한 대결 구도와 갈등이 있다. 청춘의 패기와 열정이 권위적인 시대를 표징하는 장대희라는 기성세대와 한바탕 붙는 사회적 메시지까지 담아낸다. 이러니 색다른 드라마적 변용이 그리 필요한 작품이 아니다. 그 자체가 드라마틱한 웹툰이다.

이는 최근 몇 년 동안 웹툰의 영화와 드라마로의 리메이크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생겨난 경향이라고도 볼 수 있다. 즉 웹툰 또한 그저 웹툰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영역으로의 확장을 애초부터 꿈꾸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것이 작품의 경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다. 윤태호 작가가 그린 《미생》은 웹툰이 드라마나 영화 같은 현실 기반의 극화를 촉발하게 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최규석 원작 웹툰으로 드라마화된 《송곳》도 그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웹툰의 꾸준한 리메이크가 만들어낸 것들

무엇보다 웹툰이 별 무리 없이 드라마로 리메이크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드라마라는 장르 역시 웹툰을 수용하면서 그 외연이 확장된 것에서 기인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방영돼 호평을 받았던 OCN 《타인은 지옥이다》는 웹툰 특유의 만화적 상상력이 스릴러 드라마와 잘 어우러진 사례로 드라마 역시 이런 웹툰의 상상력을 충분히 수용하게 됐다는 걸 보여줬다. tvN 《쌉니다 천리마마트》도 코믹 웹툰이 가진 ‘병맛’ 또한 드라마로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웹툰 특유의 판타지적 요소들은 드라마에도 참신한 자극제가 되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제작된 천계영 작가의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은 좋아하는 사람이 10m 반경에 나타나면 울리게 되는 설정을 가져와 독특한 질감의 청춘 멜로를 그려냈다. 김은희 작가가 쓰고 김성훈 감독이 연출한 《킹덤》 역시 원작이 웹툰 《버닝 헬 신의 나라》라는 작품이다. 작년 MBC에서 방영됐던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어쩌다 발견한 7월》이라는 웹툰을 드라마화한 것이다. 만화 속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학원물로서 최고의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웹툰적인 상상력이 이제는 드라마화돼도 큰 이물감이 없는 시대에 들어섰다는 걸 말해 주는 작품들이다.

한때 원작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만화나 소설이 이제 디지털로 들어온 웹툰이나 웹소설로 바뀌고 있는 건 자연스러운 변화다. 오히려 주목되는 건 드라마라는 다소 전통적인 장르가 웹툰이나 웹소설을 만나면서 그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껏 다뤄지지 않았던 소재가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웹툰 역시 리얼리티라는 또 다른 영역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고 있다. 웹툰과 드라마의 지속적인 콜라보가 만들어내고 있는 콘텐츠의 시너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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