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송강호 주연 《민족혁명가 김원봉》을 바란다 [최보기의 책보기]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thebex@hanmail.net)
  • 승인 2020.02.1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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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혁명가 김원봉》ㅣ이원규 지음ㅣ한길사 펴냄ㅣ688쪽ㅣ2만 2000원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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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과 대구를 잇는 교통요충지, 밀양. 험준한 산악지대와 곡창지대가 함께 있어 기질이 광범위하다. 대중들에게는 전통민요 ‘밀양 아리랑’으로 가장 친숙하다. 영화인들은 이창동 감독, 전도연, 송강호 주연 로멘스 영화 ‘밀양’(2007)을 떠올릴 것이다. 산악인들에게 밀양은 영남 알프스로 먼저 다가올 것이다. 환경보호가들에게 밀양은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이 먼저일 것이다.

역사가들에게 밀양은 어떤 도시일까? 단연코 ‘독립운동가이자 민족혁명가,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의 고향’이리라. 밀양은 광복을 위해 항일무력투쟁의 선봉에 섰던 의열단(義烈團)의 기축도시였다. 의열은 ‘사람됨의 도리(義)를 다하려고 생사를 돌보지 않는 행동을 취하여 결국은 아름답게 희생됨(烈)’이다. 이를 다룬 영화가 ‘암살’(최동훈 감독.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2015)이다. 전지현(안옥윤 역)의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대사가 울림이 컸던 영화다. 사실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 평전 《민족혁명가 김원봉》에 대한 평을 천(千) 자 칼럼으로 쓴다는 것은 도대체 약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의 출간소식을 전하지 않는 것은 더더욱 예의가 아니다.

1923년 1월 12일, 김상옥은 창신동 어머니에게 집에 숨겨둔 폭탄을 수유리(무내미) 외가로 가져오게 해 종로경찰서를 폭파했다. 뒤이어 사이토 총독 암살을 노리다 일제 경찰에 포위됐다. 1월 17일 새벽부터 1박 2일 천여 명의 경찰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며 격렬하게 싸우다 빗발같이 쏟아지는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김상옥은 불사신처럼 다시 일어나 총을 쏘면서 옆집으로 들어가 주인에게 말했다. “이불을 좀 주시오. 그걸 쓰고 탄환을 피하면서 몇 놈 더 쏴 죽이고 죽겠소.” 주인은 이불을 주지 않았다. 탄약이 떨어진 그는 “대한독립만세! 의열단 만세!”를 외치면 마지막 한 발로 목숨을 끊었다. 의열단원 김상옥을 서울로 보낸 사람은 김원봉 단장이었다.

1947년 3월 22일, 김원봉은 서울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경찰에 체포됐다. 그를 체포했던 경찰은 수도경찰정 노덕술 수사국장이었다. 노덕술은 독립운동가를 고문해 죽이기로 악명 높았던 일제 고등과 형사로서 의열단 데스노트에 기록됐던 자다. 하필 노덕술에게 김원봉의 체포를 지시했던 사람은 수도경찰국장 장택상이었다. 장택상의 아버지 장승원은 김원봉의 고모부 황상규가 소속된 대한광복회에 의해 친일부호로 처단 당했던 구원(舊怨)이 있었다. 이 일로 ‘3일을 통곡했다’는 약산 김원봉은 북으로 넘어갔다가 김일성에게 숙청됐고, 장택상과 노덕술 계열의 일제경찰들은 반민특위(반민족행위자 특별조사위원회)를 무장 습격해 와해시켰다.

《민족혁명가 김원봉》에 등장하는 신채호, 김구는 말할 것도 없고 황상규, 이종암, 윤세주, 박재혁, 최수봉, 김상옥, 김익상, 김지섭, 나석주, 오성륜, 장지락 등 의열단원 모두가 또 다른 평전의 주인공들이다. 장지락은 님웨일즈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공간의 아수라장 역사’ 탓에 의열단장 김원봉은 남과 북 어디에도 자리를 잡지 못해 여태 떠돌고 있다.

2020년 2월 10일, 영화 ‘밀양’의 주연 송강호가 또 주연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관왕을 휩쓸면서 세계 영화사를 다시 썼다는 미국 발 뉴스가 나라를 흔드는 중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봉준호와 BTS 보유국’이다. 약산 김원봉에 대해서도 공과를 따지면서 품을 여유가 충분히 있을 만하지 않은가!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가 손을 잡고 <민족혁명가 김원봉> 영화를 만든다면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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