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계단·냄새·고기 모두가 ‘봉테일’의 메타포였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7 10:00
  • 호수 1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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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과 전작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봉준호 월드’의 은유들

치밀한 시나리오와 디테일한 설정은 그를 ‘봉테일’로 만들었다. 봉준호 감독은 이 디테일을 이용해 기득권과 사회를 꼬집는 영화를 장르 불문하고 여럿 그려냈다. 처음부터 그랬다. 봉 감독의 초기 단편영화이자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 《지리멸렬》(1994)은 성인 잡지를 즐겨 보는 교수와 남의 집 우유를 훔쳐 먹는 신문사 논설위원, 만취해 노상방뇨를 하려다 걸린 엘리트 검사를 통해 ‘무너진 윤리’를 보여줬다. 《플란다스의 개》(2000)는 뇌물을 바쳐야 교수 임용을 받을 수 있는 현실에서, 추천에서 떨어진 시간강사 윤주가 개를 지하실에 감금하고 옥상에서 떨어뜨리는 장면을 통해 지식인의 왜곡된 자의식을 비판했다.

ⓒ연합뉴스

초기 작품들부터 시작된 비판의 메시지는 이후 작품들에서 더 강렬해졌다. 《괴물》(2006)에서는 시민을 지켜야 할 국가가 제 기능을 못 하는 것에 대한 비판 의식이 드러났다. 《설국열차》(2013)는 술과 마약을 즐기는 호화로운 앞쪽 칸과 빈민굴 같은 꼬리 칸의 열차를 그려내 ‘마지막 세상’으로 치환되는 열차 속에서마저 계급이 나뉘는 사회구조를 비판했다. 그리고 《기생충》(2019)이다. 반지하에 사는 가난한 가족과 저택에 사는 부잣집 가족의 모습에서, 보편적 문제인 빈부격차와 계급 갈등을 복잡다단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이렇게 비판적 메시지를 던지는 데 활용된 봉 감독만의 메타포들이 있다. 그는 《기생충》에서 메타포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영화를 본 뒤 집으로 돌아가면 켜지는 센서 전등 하나도 다시 돌아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봉 감독의 영화에는 그렇게 항상 그가 말하고자 하는 작품의 의미가 메타포를 통해 등장한다. 그렇다면 《기생충》에 등장하고, 전작들에도 등장한 공통된 메타포는 무엇일까. 그가 영화 곳곳을 통해 보여주는 이 메타포들은 봉준호라는 영화감독이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과 그의 작품 세계에 조금 더 깊게 접근할 수 있는 치트키이기도 하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서 ‘지하는 다양하고 기이한 형태로 변주된다. 《기생충》에서는 기택의 반지하 집, 근세의 지하 침실이 배경이 된다. ⓒCJ엔터테인먼트·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서 ‘지하는 다양하고 기이한 형태로 변주된다. 《기생충》에서는 기택의 반지하 집, 근세의 지하 침실이 배경이 된다. ⓒCJ엔터테인먼트

지하

《기생충》은 ‘공간’에 주목한다. 계층의 사다리를 상징하는 계단을 가난한 가족들은 거짓을 말하며 오른다. 반지하 집과 지하실, 그리고 지상까지 대비되는 공간은 수평과 수직이라는 좌표로 계급의 격차를 그대로 드러내는 장치다. 봉 감독의 영화에서 ‘공간’은 단순한 무대에 그치지 않는다. 《플란다스의 개》의 배경인 아파트부터 그랬다. IMF 이후 불안을 느끼는 현대인들의 심경을 그려내기 위해 아파트를 비리와 부조리 만연의 축소판으로 상정했다. 아파트라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삶을 살아 나가는 경비원, 중산층, 젊은이라는 다양한 캐릭터를 함축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다. 공간은 《괴물》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대한민국 경제 성장, 근대의 상징으로 느껴지는 한강을 영화의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눈부신 성장을 했다는 국가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설국열차》에서의 공간 설정은 더 노골적이다. 빈부격차에 따른 계급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한정된 공간, 빛도 들지 않는 곳에서 삼시 세끼 바퀴벌레를 재료 삼아 만든 단백질 바를 먹어야 하는 꼬리칸, 그리고 그와 대비해 모든 것이 얼어버린 와중에도 풍부한 먹거리와 술이 존재하는 앞칸을 보여준다. 《마더》(2009)는 난개발되고 있는 소도시를 배경으로 해 모성이라는 전통이 깨지는 과정을 그린다. 결국 그의 영화에서 공간은 영화가 펼쳐지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주제 의식을 견고하게 하는 장치가 된다.

특히 ‘지하’라는 공간은 가장 의미심장하다. 《플란다스의 개》의 변경비로 열연한 배우 변희봉이 보신탕을 끓여 먹는 지하 창고, 《살인의 추억》(2003)의 취조실이 지하였고, 《옥자》(2017)에서는 지하에 실험실과 도축실이 있었다. 그리고 진화한 ‘지하’는 기택의 반지하 집과 《기생충》의 지하 침실로 등장한다. 봉 감독은 고립되고 폐쇄적인 지하라는 공간을 여러 가지 형태의 기이한 공간으로 해석해 낸다.

계단은 계층의 높낮이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지하로, 지상으로 가는 수단이기도 하다.
계단은 계층의 높낮이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지하로, 지상으로 가는 수단이기도 하다. ⓒCJ엔터테인먼트

계단

봉준호 감독은 칸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기생충》을 압축적으로 비유해 달라는 질문에 "계단 시네마"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기생충》을 통해 ‘계단 시네마’는 정점을 찍었다. 그동안 계단은 ‘봉준호 월드’의 중요한 오브제가 돼 왔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통로이자, 반대로 지하로 향하는 길이 되기도 한다. 기우와 기정이 과외 교사로 환영을 받으면서 오르는 것도 계단이고, 가정부 문광이 근세가 머무는 공간으로 굴러 떨어지는 곳도 계단이었다.

전작에서도 계단은 종종 등장한다. 《설국열차》는 머리칸과 꼬리칸을 가로 구조로 그려냈지만, 결국 권력의 상징인 ‘엔진’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계단이 필요하다. 《플란다스의 개》는 아파트를 배경으로 하면서 계단을 통한 수직적인 이미지를 활용한다. 《살인의 추억》에는 경찰서 지하 취조실로 내려가는 계단이 등장한다. 이 계단은 《마더》의 골목길과 함께, 봉 감독이 대표적으로 활용한 ‘어두운 공간’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반지하 냄새’는 가난을 보여주는 장치로 쓰인다.
‘반지하 냄새’는 가난을 보여주는 장치로 쓰인다. ⓒCJ엔터테인먼트

냄새

이 부분은 봉 감독의 말을 빌려 보자. 우리 사회에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움직이는 동선은 많이 겹치지 않는다. 방문하는 식당도 다르고, 비행기에서 이용하는 좌석도 다르다. 《기생충》에서는 기우와 기정이 신분을 속이고 부잣집에 들어가게 되면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한 공간,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들어오게 된다. 봉 감독은 냄새가 사람의 당시 상황이나 형편, 처지를 드러나는 것이라 말한다.

《기생충》에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서로 냄새를 맡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침범한다. 박 사장의 아들 다송이 기택과 충숙, 기정의 냄새가 같다고 얘기하자, 기택의 가족들은 “서로 다른 세탁비누로 빨래를 해야 하느냐”는 대사를 뱉는다. 그때 기정은 “지워질 냄새가 아니다”고 말한다. 반지하에서 살아서 나는 냄새라고,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그 냄새가 날 수밖에 없다고. 젠틀한 박 사장은 기택의 문제가 ‘냄새’라고 말하고, 이후 기택은 결국 이 부분에서 폭발한다.

냄새는 봉 감독의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살인의 추억》에서 박두만 형사는 부패한 피해자의 시신을 보고 얼굴을 찌푸린다. 사회적 약자인 피해자는 형사가 피해야 하는 냄새로 인식된다. 《설국열차》에서는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이 저항군 커티스 일행을 보면서 코를 막는다. 냄새를 서로 맡을 수 있는 거리에서, 그들은 하층 계급과의 접촉을 피하려는 몸짓을 보인다. 그것이 냄새를 거부하는 행위다. 냄새가 감성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괴물》에서 많은 관객들의 눈물을 자극한 동작대교 사투 신. 손녀딸을 찾는 한 가족의 리더가 카리스마를 보이는 그 장면보다 더 관객들의 마음에 박힌 것은 “늬들 그 냄새 맡아본 적 있어? 새끼 잃은 부모 속 냄새. 부모 속이 한번 문드러지면 그 냄새가 십리 밖까지 진동하는 거여”라는, 희봉의 대사였다.

욕망을 드러내는 순간 기택의 가족들은 둘러앉아 고기를 먹는다. ⓒCJ엔터테인먼트
욕망을 드러내는 순간 기택의 가족들은 둘러앉아 고기를 먹는다. ⓒCJ엔터테인먼트

고기

봉 감독의 영화에는, 고기를 먹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기생충》에서 기택의 가족들은 취업을 축하하며 욕망을 드러내는 순간에 함께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먹는다. 고기는 부유층의 당연한 상징이 되기도 한다. 냉장고에 있는 한우 채끝살을 ‘짜파구리’에 넣어 달라는 연교의 대사가 그렇다. 이렇게 봉 감독의 작품에서 고기가 등장하는 장면은 욕망, 위선, 악덕을 그려낸 경우가 많았다. 《플란다스의 개》에서는 경비원이 개를 잡아 요리해 먹는 장면을 통해 비리와 부조리함을 보여줬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형사들이 부검실에서 시체를 살펴보는 장면 바로 뒤, 고기를 불판에 올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사건에 무신경한 형사들은 범죄 용의자로 몰았던 사람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고깃집에서 시뻘건 고기를 굽는다.

《괴물》에서 강압적인 수술을 당한 강두가 수술실을 탈출했을 때, 미국 의료진들은 넓은 벌판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처음부터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그들이 즐길 수 있었던 만찬이었던 셈이다. 《설국열차》에 등장하는 ‘스테이크’는 단적으로 계층의 차이를 보여줬다. 꼬리칸의 사람들이 바퀴벌레 단백질 블록을 먹는 동안, 머리칸의 사람들은 스테이크에 와인을 즐겼다. 열차의 절대 권력자 윌포드가 꼬리칸에서 엔진칸까지 온 커티스에게 스테이크를 대접하는 장면에서는, 일정 주기마다 꼬리칸의 사람들을 학살한다는 충격적인 진실까지 등장한다. 봉 감독의 영화에서 고기를 먹는 행위는, 결코 아름답게 해석되지 않았다. 이는 《옥자》를 통해 증폭된다. 영화 《옥자》는 공장의 가혹한 환경에서 동물을 대량생산하는 시스템을 그리고, 이 시스템을 통한 육식과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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