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는 산업폐기물로 홍역 앓는 공업도시 울산
  • 부산경남취재본부 박치현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0.02.23 13:00
  • 호수 1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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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행정에 속 타는 기업들…급행료에 불법 매립까지 ‘폭풍 전야’

우리나라 최대의 공업도시 울산이 산업폐기물 처리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울산국가공단에는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비철금속 등 수백 개의 다양한 기업체들이 밀집해 있다. 단위 면적당 공장 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다 보니 대기오염물질 배출량도 전국 최고여서 한동안 공해도시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그런데 이번에는 산업폐기물 대란이란 복병을 만났다.

기업체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나면 반드시 부산물이 나온다. 일명 산업폐기물이다. 이 폐기물은 산업폐기물 처리업체를 통해 땅에 묻거나 태워야 한다. 울산은 공장이 많은 만큼 산업폐기물 발생량도 엄청나다. 울산공단에서 발생하는 산업폐기물은 하루 6000여 톤. 10년 사이 11.4%가 증가했다. 독성이 강한 지정폐기물은 65.7%나 늘었다.

그런데 이 폐기물들의 처리가 마땅치 않다. 매립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폐기물 처리비용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치솟고 있다. 그나마 비싼 값에 폐기물을 처리하려 해도 받아주는 매립장을 찾기가 쉽지 않다. 매립장 운영업체들이 부피는 작으면서 처리단가가 비싼 폐기물만 선별해 받고 있기 때문이다. 돈 되는 폐기물만 받다 보니 부르는 게 값이다. 2016년 톤당 8만~10만원 하던 처리비용이 최근 25만~30만원으로 4년 사이 3배 이상 올랐다.

울산국가공업단지ⓒ 울산시
울산국가공업단지ⓒ 울산시
A업체 소유 산업폐기물 매립장ⓒ울산환경보전협의회 제공
A업체 소유 산업폐기물 매립장ⓒ울산환경보전협의회 제공

울산 기업들, 산업폐기물과 끝없는 전쟁 중

요즘 울산 지역 기업들은 산업폐기물과 힘겨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온산공단의 한 대기업 공장장은 “돈을 줘도 울산에서는 폐기물을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싼 처리비용에다 운송료까지 들여 다른 지역 처리업체를 찾아다닌다”고 말했다.

울산공단의 한 석유화학업체 환경팀장은 “산업도시 울산에서 ‘산업폐기물 대란’이 시작되고 있다”며 “웃돈을 얹어주고 폐기물을 처리해야 하는 서글픈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울산 지역 공장장협의회 관계자는 “폐기물 대란은 울산시의 무능하고 소극적인 행정이 빚어낸 당연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현재 울산에서 가동 중인 산업폐기물 매립시설은 (주)이에스티와 (주)유니큰, (주)코엔텍 등 3곳뿐이다. 그나마 3곳 중 2곳은 매립용량이 포화상태다. 남아 있는 매립 가능 용량이 67만 톤 정도에 불과해 3년 안에 매립장은 모두 수명을 다한다. 기업들엔 비상이 걸렸지만 울산시는 언제나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울산국가공단 6개 공장장협의회는 2018년 기자회견을 갖고 “지역 내 산업폐기물 처리업체의 매립용량과 잔여기간이 한계점에 달해 폐기물 대란이 우려되는 만큼 울산시가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당시 송철호 울산시장은 “기존 폐기물 매립시설의 용량을 증설하고 신규 매립장 확보를 위해 민간기업과의 컨소시엄 구성이나 공영개발 방식으로 신규 매립장 확보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

폐기물관리법에는 기업체에서 나오는 지정폐기물은 종류에 따라 45~60일 이상 보관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폐기물을 제때 처리하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공장 가동을 멈춰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기업들은 속이 타지만 울산시는 느긋한 입장이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울산 지역 산업폐기물 해결 방안의 용역을 맡아 연구해 온 울산발전연구원이 1625만㎥ 규모의 대형 매립장 건설이 시급하다는 결과보고서를 지난해 12월 울산시에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폐기물 매립장을 조성하려면 환경영향평가와 도시계획시설 변경, 주민 여론 수렴 등 허가부터 시설공사까지 2~5년이 걸린다. 그나마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매립장을 지을 수 없다.

A업체는 지난해 3월 온산공단 부근에 매립용량 10만㎥ 규모의 매립시설 허가를 신청해 적합 판정을 받았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고 있다.

현재 울산에서는 5~6개 업체가 폐기물 매립장 건설을 추진하다가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사업을 포기하거나 연기하고 있다. 소극적인 환경행정이 폐기물 대란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울산시는 특혜 시비와 도시미관 저해 등을 이유로 매립장 증·신설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B업체는 2018년 2월 울산미포국가공단에 매립장 건설을 신청했지만 울산시가 반려했다. 허가가 날 수 있는 곳이지만 울산시는 녹지 훼손에 따른 환경오염이 우려되고 특혜 시비가 예상된다며 불가 통보를 했다. 해당 기업은 즉각 반발했고 현재 법적 소송이 진행 중이다.

매립장이 없으면 산업폐기물은 갈 곳이 없다. 하지만 울산시는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광중 부산대 환경공학부 교수는 “울산 지역 산업계의 시급한 현안인 매립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산업계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 매립 후보지를 물색해 타당성 조사를 실시하고 최종 후보지를 하루빨리 선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울산발전연구원의 김희종 박사는 2030년까지 10년 동안 안정적인 폐기물 처리를 위해서는 630만㎥ 규모의 매립장을 확보해야 하고 단기적으로는 기존 매립시설의 증설, 중장기적으로는 공공개발이나 민관 공동개발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환경 전문가인 이병호 박사는 “도쿄도가 운영하고 있는 일본 도쿄 앞바다 폐기물 매립장을 벤치마킹해 울산 실정에 맞는 매립시설 확보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지금의 악순환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도쿄도 폐기물 매립장은 도쿄환경공사(공익재단법인)가 직접 운영하는 공공 매립장이다. 바다를 간척해 건설한 중앙방파제 매립지로 바닥은 콘크리트로 만들었고 지상 30m까지 매립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

 

일본 폐기물 매립장은 자치단체가 직접 운영

특히 매립지에서 배출되는 침출수가 바다를 오염시키지 않도록 이중강관 널말뚝식 호안을 설치했다. 도쿄에서 발생하는 생활쓰레기와 산업폐기물은 모두 이곳에 매립되는데 향후 50년까지 사용 가능하다고 한다.

이 매립장은 모든 폐기물을 그대로 묻지 않는다. 태울 수 있는 폐기물은 소각 처리하고 남은 재는 시멘트 원료로 재활용한다. 또 타지 않는 폐기물은 선별장으로 보내 철과 알루미늄 등 재활용이 가능한 고철을 회수한다.

소각과 재활용을 분리·선별하는 ‘폐기물 감량화 리사이클링 시스템’을 도입해 매립물량을 최소화시키면서 매립장 사용연한을 최대한 연장하고 있다.

일본 우카시마 매립장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도쿄도 매립장과 마찬가지로 연안을 간척해 조성됐고 우카시마시가 직접 운영한다. 매립용량이 무려 267만3500㎥에 달하는 대규모 매립지로 향후 30년 동안 사용 가능한 공공 매립시설이다.

일본의 폐기물 매립장은 공통점이 있다. 민원이 없는 연안지역을 선택했고 자치단체가 직접 운영하는 공공 매립장으로 30~50년간 쓸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일본 폐기물 매립장은 단순히 폐기물만 묻는 매립장이 아니다. 매립장마다 자원 재활용 순환 시스템을 갖춰 폐기물 매립량을 최소화하고 매립이 끝나면 부지 위에 태양광발전소를 지어 전기를 생산한다.

일본 기업들은 폐기물 처리 걱정을 하지 않는다. 정부나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대규모 공공 매립장에서 기업체 폐기물을 싼값에 안정적으로 받아주기 때문이다.

다시 울산으로 돌아와 보자. 공단에서 나오는 산업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곳은 민간 매립장 3곳밖에 없다. 기업체들은 민간 매립업체들이 배짱 영업을 한다고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폭주하는 산업폐기물을 제때 처리하려면 매립비용을 올려줘야 하는데 급행료인 셈이라고 말한다.

산업폐기물은 두 달 이상 공장 안에 쌓아 두면 처벌을 받는다. 온산공단의 한 대기업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자체 매립장을 추진하고 있다. 막대한 예산이 들지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울산시는 특혜 시비 소지가 있다며 부정적이다. 너도나도 허가 신청을 하면 매립장이 난립해 환경오염을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대체 어쩌라는 거냐며 울산시에 공동 대응하기로 결의했다.

폐기물 대란이 불법 매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울산항에 본사를 둔 한 물류업체는 자신의 땅에 누군가 폐기물 수백 톤을 불법 매립한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를 의뢰했다.

산업폐기물 매립장이 없는 공단은 화장실 없는 건물에 비유된다. 울산공단에는 산업폐기물을 제때 처리하지 못해 공장 안에 쌓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산업폐기물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울산 지역 기업들은 장기불황에 폐기물 처리비용마저 치솟아 IMF 때보다 더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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