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예술적 상상력을 키워라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6 11:00
  • 호수 158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힘 설파하는 오종우 교수   

“예술은 가을비 내리는 거리를 내려다보는 통창의 카페 안에 있지 않다. 예술은 겨울 바다와 멀찍이 떨어져 그저 감상에 젖는 안락한 실내에 있지 않다. 세상에서 도피해 현실을 비현실적으로 외면하는 곳에 예술은 있지 않다. 예술은 거리 청소부가 빗자루를 든 그 길에 있다. 예술은 차가운 바다 위 고깃배에 어부와 함께 있다. 그곳에서 예술은 현실을 진정으로 만난다. 그럴 때 꿈은 현실감을 띠고 세상을 조금씩 바꿀 수 있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이념으로 얼룩진 구호를 외치는 것은 예술이 하는 일이 아니다.”

예술을 통해 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법과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는 법을 강의한 ‘예술의 말과 생각’으로 최고의 강좌에 수여하는 성균관대학교 티칭어워드(SKKU Teaching-Award)를 수상한 오종우 교수가 《예술적 상상력》을 펴냈다. 《예술 수업》 이후 5년 만에 새롭게 독자들을 만나는 이번 책은 급변하는 시대의 요구와 더불어 더욱 깊어진 사유로 예술의 진짜 쓸모를 전하고 있다.

“단순히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 예술을 학습하지 않는다.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리면서 우리는 개성을 찾는다. 개성을 지닌 사람은 타인을 시기하지 않는다. 욕심이 아니라 관심을 따른다. 여러 개성들이 만나 세상을 이룬다. 그럴 때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도 건강해진다. 삶은 어떻게 살라고 정해져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해야 하는 숙제다.”

《예술적 상상력》 오종우 지음|어크로스 펴냄|296쪽|1만7000원 ⓒ인디고서원 제공
《예술적 상상력》 오종우 지음|어크로스 펴냄|296쪽|1만7000원 ⓒ인디고서원 제공

한계 넘어서는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AI가 만든 작품도 예술이 될까. 히틀러가 탐내고 피카소와 프루스트에게 영감을 준 작품에 무엇이 그려져 있을까. 몬드리안은 왜 사선을 긋지 않았을까. 음악이 다른 예술보다 더 직관적으로 감각을 열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 교수는 그림, 소설, 희곡, 음악, 테크놀로지까지 우리 문명에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낸 담대한 생각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전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예술적 상상력을 일깨운다. 인간의 일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우리 시대에 새로운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라면서.

“제멋대로 펼치는 자의적인 공상을 상상력으로 혼동하기도 한다. 창조로 이어지는 진짜 상상력은 인류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사라지지 않은 예술에서 나왔다. 예술의 근간은 상상력이고 그 상상력은 창조를 이뤘다. 예술적 상상력은 창조의 토대였다. (중략) 때로 우리는 현실의 본모습을 제대로 보기 힘들어한다. 예술적 상상력은 보이는 것을 꿰뚫어 그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나게 하는 힘이며 삶을 고양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예술작품을 만나 현실을 더 잘 보고 더 잘 듣고 더 잘 느낄 수 있다. 축구에서 골이 나올 때는 공격수가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순간이다.”

이세돌 9단은 지난 2019년 11월 바둑계에서 은퇴하며 “저는 바둑을 예술로 배웠다. 둘이서 만들어가는 하나의 작품. 지금 과연 그런 것이 남아 있는지…”라며 AI를 이유로 들었다. 그의 이 말은 의미심장하다. 인간과 인공지능은 무엇이 다른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인간의 근본을 묻고 있다. 이에 오 교수는 기술의 뿌리를 예술에서 찾고 예술에서 기술의 씨앗을 발견하며, 예술과 과학의 교차점에 대해 면밀히 탐구한 결과를 들려준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무엇이 인간인가 하는 질문을 제기하는 시대에 사람답다는 것은 과연 무슨 뜻일까. 예술이 인간만의 행위이기에 우리는 그 대답을 예술에서 들을 수 있다. 또한 예술작품을 통해서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들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예술은 항상 인간답다는 것을 말하고 있고, 또 인간다운 것들과 끊임없이 상호 작용한다.”

 

급변하는 흐름에 휩쓸리지 않는 힘은 ‘예술’

인공지능을 비롯한 오늘날 기술 발전을 흔히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오 교수는 이 개념마저 낡은 것이라 말한다. “지금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옛 단어가 있다면 혁명뿐”이라는 설명이다. 급변하는 시대의 불확실성 속에서 확실한 것이 있다면,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원동력이 자본에서 상상력과 창의성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술은 과학을 열고 기술은 예술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왔다며, 지금이 그 새로운 국면임을 밝힌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만나면 기존에 알던 것들을 엮어 설명한다. 이때도 비유가 필요하다. 비유는 언어의 시작이다. 그림을 그리듯이 이미지를 묘사하면서 새 언어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메타포는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연다. 우리는 알고 있는 것들을 전혀 다른 차원에서 결합해 세상을 재구성한다. 익숙하지 않은 연결 때문에 순간, 공간이 발생하고 바로 여기서 사유가 생성된다. 창의성은 이질적인 것들이 만나 만든 틈에서 발현된다.”

책의 마지막을 장식한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그림 《구원자》가 15세기부터 지금까지 ‘슬픔을 머금은 온화한 눈으로 여전히 앞을 바라보고’ 있듯, 오 교수는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고단한 현실을 치장하지 않고 제대로 만나게 해 준다. 더불어 우리가 품은 불안이 ‘희망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도 넌지시 일러준다.

“가을의 어느 날, 거리를 걷다 밤처럼 생긴 열매를 까먹고 쓰다며 뱉는 아이들을 봤다. 열매는 꼭 밤같이 보였지만 가로수 마로니에의 것이었다.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어지러운 시대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니 진짜가 바보스럽게 보이는 시절이다. (중략) 지금 우리는 급변하는 시기를 살고 있다.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해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상상력이 꼭 필요한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의 온갖 편견, 가짜와도 맞서야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