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라임·DLF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던 금감원 감시 시스템
  • 유지만·김종일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8 10:00
  • 호수 158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감원, 2013년 감시망 만들고도 활용 못 해… ‘감독 책임’ 커질 듯

라임자산운용의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모양새다. 이미 검찰 수사가 시작됐지만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지 여부도 불투명해지면서 혼란이 커지고 있다. 라임 측은 현재 투자자들에게 돈을 돌려줄 여력이 없다고 두 손을 들다시피 하고 있다. 손실 예상금액은 조 단위를 넘어섰다.

금융권에서는 라임 사태가 ‘역대급’ 금융 사건에 포함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08년 키코(KIKO) 사태, 2011년 저축은행 사태, 2013년 동양증권 사태에 이어 대규모 피해자를 양산한 금융 사건이 될 전망이다. 자산운용사뿐만 아니라 은행권도 개입돼 있어 책임 범위도 상당히 넓다. 자칫하면 금융산업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DLF(파생결합펀드)피해자대책위원회, 금융정의연대 등의 회원들이 2019년 12월9일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열린 ‘DLF 사태 관련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 재개최 요구 청와대 진정서 전달 기자회견’에서 전액 배상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DLF(파생결합펀드)피해자대책위원회, 금융정의연대 등의 회원들이 2019년 12월9일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열린 ‘DLF 사태 관련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 재개최 요구 청와대 진정서 전달 기자회견’에서 전액 배상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은행에서 판매한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DLS) 사태의 여파도 여전하다. 수천 명의 피해자와 수천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기록한 이 사건은 현재 금융 당국의 제재 절차가 진행 중에 있다.

이런 가운데 관리·감독해야 할 금융 당국의 책임론도 나오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금융감독원은 동양증권 사태 직후인 2013년 말 금융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상시 감시 시스템을 구축해 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 사고로 인한 피해자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만든 시스템이었지만 라임 사태를 두고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감원은 최근 금융상품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나섰지만, 이미 구축돼 있던 시스템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실제로 금감원은 2013년 12월 ‘불건전 영업행위 상시 감시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발표했다. 그해 3월 취임한 최수현 금감원장이 금융감독 시스템 혁신방안의 하나로 이 시스템 구축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당시 “새로운 유형의 금융거래와 금융상품의 빈번한 출현,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인한 금융시장의 변동성 증대에 대응하기 위해 위험요인을 조기 인식하고 사후 대처가 아닌 사전 예방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함”이라고 시스템의 구축 배경을 설명했다.

동양그룹 계열사의 기업어음 및 회사채 개인투자자들이 2013년 10월9일 여의도 금감원 앞에서 ‘동양 사태 피해자 대집회’를 갖고 진상규명과 근본적 해결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동양그룹 계열사의 기업어음 및 회사채 개인투자자들이 2013년 10월9일 여의도 금감원 앞에서 ‘동양 사태 피해자 대집회’를 갖고 진상규명과 근본적 해결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2013년 동양 사태 직후 ‘상시 감시 시스템’ 구축

금융감독원은 금융상품 판매 시 나타날 수 있는 불완전판매와 위법·부당한 영업행위를 감시하기 위한 지표를 개발했다. 이를 위해 감독 사각지대에 있는 9개 영업행위 테마를 지정했다. 해당 분야는 △방카슈랑스 △펀드 △파생결합증권 △변액보험 △퇴직연금 △대출모집 △약정금리 적용 △금융상품 구속행위(꺾기) △계열사 간 거래 등이다. 금감원은 당시 “해당 영업행위와 관련해 일반적인 업계 평균 수준의 범위를 과도하게 벗어난 정도 등으로 불건전 영업행위 위험 수준을 판별할 수 있는 지수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9개 분야에서 총 53개 지표를 개발했으며 이를 통해 금융 사고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금감원은 이 시스템으로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상품 판매사들로부터 분기별로 보고를 받았다. 취재 결과 9개 테마에 들어가는 금융상품의 판매실적 및 연령·투자성향·위험등급 등 복합적인 통계자료를 보고받아 왔다. 이런 통계들을 분석한 뒤 이상 징후가 발생할 경우 해당 금융회사에 대한 조사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 당국 관계자는 “고위험군 금융상품이 특정 기간에 많이 팔리는 경우, 투자성향이 ‘안정형’인 투자자나 고연령층에게 많이 팔린 경우 등을 다각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또한 감시지표를 분석한 결과 불건전 영업행위 위험수준이 높은 경우 해당 회사에 소명을 요구하고, 소명이 부족할 경우 개선계획을 요구하거나 현장검사까지 실시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했다.

금감원은 당시 감시지표를 적용해 소명 및 개선협의가 진행 중인 금융사 통계도 공개했다. 방카슈랑스 13개사, 펀드 14개사, 파생결합증권 1개사 등 총 73개사에 소명 및 개선협의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당시 몇몇 은행 및 증권사 등에서 이상 판매 징후가 나와 보고 후 예방 조치를 취했었다”고 밝혔다.

금감원이 상시 감시 시스템을 구축한 배경에는 2013년에 터진 ‘동양 사태’의 영향이 컸다. 동양그룹이 2013년 2~9월 상환능력이 없는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판매해 4만여 명의 투자자가 약 1조7000억원대의 피해를 입었다. 이 사건으로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이 2015년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동양 사태 당시 금융 당국의 감시 시스템이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높아졌다. 2014년 7월 감사원은 금융 당국이 동양증권의 불완전판매를 사실상 방치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시민단체의 공익감사 청구에 대한 결과 발표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감원, 동양 계열사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등이 방만한 관리·감독과 부당한 자금지원으로 일반 투자자들의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금융위원회는 2013년 11월 ‘동양 사태 재발 방지 방안’을 발표하며 동양 사태 발생 원인 중 하나로 “견제·차단해야 할 제도, 감독, 그리고 시장규율 등 견제장치가 미비했다”고 인정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응방안으로 ‘유사사례 재발방지를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중 하나로 “위험한 금융투자 상품의 경우 위험성향 진단을 통해 ‘짜맞추기식 위험성향 진단’이 이루어지던 문제 재발을 방지하겠다”고 밝혔다. 최수현 당시 금감원장은 이러한 기조에 발맞춰 2013년 하반기부터 사전 감시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상시 감시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동양 사태 후 6년여가 지난 뒤 벌어진 DLF·DLS 사태와 라임자산운용 사태 등에서는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금감원은 시스템 개발 후 시스템 관리를 각 분야별 검사국으로 분할했다. 각 검사국에서 금융사로부터 관련 데이터를 받아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위험에 대해 감시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컨트롤타워의 부재다. 금감원의 각 검사국이 해당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이를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부서는 없는 상황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펀드 상품을 은행에서 판매하는 경우 등 과거와 다른 판매 양상이 있을 경우 감시망에 확실히 잡히지 않는 애로사항이 있다”고 말했다.

시스템 개발 이후 사실상 이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중은행의 경우 금감원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꾸준히 보고해 왔다는 입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확히 어떤 테마에 대해 몇 건을 보고했는지 확실치 않지만, 금감원에서 요구하는 데이터는 그동안 꾸준히 보고해 왔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렇게 쌓인 데이터를 금감원이 제대로 분석했냐는 점이다. 하지만 수많은 데이터를 일일이 교차 분석하기에는 인력과 시간의 한계가 뚜렷해 보였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시중 금융사에서 받은 데이터는 양이 굉장히 많다. 한마디로 ‘투머치(Too much) 데이터’다. 이를 다시 분석하려면 하나하나 분석해야 하는 애로사항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감시 시스템의 실효성이 낮다는 의미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감시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지만 이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금감원 입장에서는 뼈아픈 대목”이라고 말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1월23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금융소비자 보호와 혁신금융 지원 기능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1월23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금융소비자 보호와 혁신금융 지원 기능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금감원 측 “지표 개선·감시 부서 신설하겠다”

금감원은 해당 시스템이 부족한 부분은 있지만, 제도 개선 및 감시 강화 방안을 꾸준히 마련해 왔다고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상시 감시 시스템의 경우 구축 이후 지표 개선에 대한 고민을 내부적으로 해 왔다. 금융사들이 데이터를 입력할 때 정확하지 않게 입력하는 경우도 있어 개선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며 “최근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방안을 마련했고, 지표 개선 등을 통해 감시기능을 강화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1월23일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금융소비자보호처를 확대하는 방안을 담은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금소처장(부원장) 산하 금융소비자보호 부문이 소비자 피해 예방(사전적) 및 권익보호(사후적) 부문의 양대 축으로 확대·개편됐다. 피해 예방을 강화하기 위해 소비자 피해 예방 부문에 금융소비자보호감독국, 금융상품판매감독국, 금융상품심사국, 금융상품분석실, 연금감독실, 금융교육국, 포용금융실 등 7개 부서, 19개 팀을 배치했다.

또 금융상품 설계, 모집, 판매 등 단계별 모니터링 및 민원DB 등을 활용한 상시 감독 기능을 강화하고 미스터리 쇼핑 업무를 이관시켰다. 소비자 피해 발생 우려가 높은 금융상품에 대해서는 소비자 경보를 활성화하고 향후 금소법 시행 시 신규 발생 업무수요에 적시 대응키로 했다. 연금감독 및 포용금융 지원 기능도 금소처로 이관해 소비자의 경제적 자생력 강화를 지원할 계획이다. 윤 원장은 “조직 개편의 목적은 크게 금융소비자보호처의 기능 및 역할 강화와 금융감독의 디지털 전환 및 혁신금융 지원 기능 강화라는 두 가지 측면에 맞춰져 있다”고 밝혔다.

금융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금감원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 잃고 외양간’을 과연 고칠 수 있겠냐는 의구심이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현재 금감원의 금융시장 전반에 대한 감시·감독 기능이 부실해진 핵심 이유는 윤 원장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면서 “지금처럼 자신의 관심사인 키코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면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한들 비슷한 사고가 계속 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