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혁명] ‘BTS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보이밴드’, 과장 아니다
  •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jongseop1@naver.com)
  • 승인 2020.02.24 13:00
  • 호수 1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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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노래에 깔려 있는 도덕적·사회적 가치를 발견해 진정성을 부여

K팝에 약점이 있다면 ‘아이돌’이라는 고정관념이 빚어내는 부정적 인상, 즉 그건 춤이지 음악이 아니라는 인식이다. 얼마 전만 해도 해외에선 K팝에 대해 공장에서 찍어낸 천편일률적 상품 같다는 비판적 시각이 강했다. 하지만 2017년부터 두드러진 방탄소년단(BTS)의 글로벌 센세이션은 놀라운 댄스 퍼포먼스와 더불어 신선한 음악임을 이제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BTS의 음악성과 세계적 인기 광풍을 정작 우리가 가장 모른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막연하게 BTS를 댄스그룹으로 간주하지만 실제 출발은 힙합그룹이다. 멤버 가운데 리더인 RM과 슈가, 제이홉은 힙합을 하려고 들어왔다. 마니아 성향의 미국 음악비평 사이트 ‘피치포크’는 이들 3인에 대해 “계속되는 스타일 변화에도 방탄소년단의 일관된 심미성을 유지하게 할 뿐 아니라 음악의 전체적 흐름을 결정하는 등 그룹의 중심을 잘 잡고 있다”고 호평했다.

이 세 래퍼는 자신들의 개성과 예술가의 욕망을 드러내는 실험적 성격의 ‘믹스테이프’를 발표해 빌보드 차트에 오르기도 했다. 그들 덕에 BTS의 랩은 아름답고 강렬하다. 탄탄한 랩을 짧고 부드러운 멜로디의 보컬이 둘러 감싸는 게 이들 음악의 형식이며 여기서 다른 아이돌과의 차별화가 이뤄진다.

글로벌 잡지 《TIME》은 BTS를 2차례 표지 모델로 다뤘다. ⓒTIME for KIDS·TIME
글로벌 잡지 《TIME》은 BTS를 2차례 표지 모델로 다뤘다. ⓒTIME for KIDS·TIME

빌보드, “사회의식을 표현하는 그룹”

비록 기획사의 테두리 안에 위치하고 있지만 멤버 모두가 작사, 작곡, 프로듀싱에 참여하며 스스로 음악을 만들어낸다. 이 자작, 자발, 자생은 매우 중요하다. 남이 음악을 만들어주고 거기에 맞춰 기교에 충실한 춤만 추는 다른 아이돌그룹과는 전혀 다르다. 그간 BTS가 발표한 곡들 《불타오르네》 《피 땀 눈물》 《봄날》 《디엔에이(DNA)》 《작은 것들을 위한 시》는 누가 들어도 수작이다. BTS는 명백한 ‘음악의 승리’다.

이제는 유명해진 팬덤 ‘아미’가 방탄 오빠들에게 빠지는 것에는 음악과 그 음악이 주는 위로와 힐링의 역할이 크다. 가사에 나타난 이 시대 청춘의 정서 일반이라고 할 기성세대에 대한 아쉬움, 현실의 벽, 삶의 통증과 좌절, 건강한 자족 등의 메시지가 그들을 사로잡았다. 팬들은 현실에 가로막혀 쓰러져 가면서도 그 속에서 피어나는 용기에 공감의 눈물을 흘린다.

많은 음악팬을 방탄소년단으로 옮기게 해 준 곡으로 평가되는 멤버 슈가의 믹스테이프 《마지막》에는 지금의 젊음이 겪는 우울, 불안, 고통의 정서가 적나라하게 배열된다. ‘잘나가는 아이돌 래퍼 그 이면에/ 나약한 자신이 서 있어 조금 위험해/ 우울증 강박 때때로 다시금 도져/ hell no 어쩌면 그게 내 본모습일지도 몰라…’.

빌보드는 2017년 ‘팝이 글로벌로 향한 해’라는 연말 특집기사를 쓰면서 BTS를 사회의식을 표현하는(socially conscious) 그룹으로 정의했다. ‘난 육포가 좋으니까 6포 세대/ 언론과 어른들은 의지가 없다며 우릴 싹 주식처럼 매도해…’라는 가사의 2015년 곡 《쩔어》만 봐도 알 수 있고 2017년 노래 《고민보다 고(Go)》는 ‘열일 해서 번 나의 페이/ 전부 다 내 배에/ 티끌 모아 티끌 탕진잼 다 지불해/ 내버려둬 과소비 해버려도…’의 가사는 미래 불안에 시달리는 청춘의 자기만족을 담고 있다.

기쁨보다는 슬픔에 감정을 소비하고, 패배가 일상화되어 심지어 열정마저 조롱하는 근래의 젊은이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다. BTS는 환상 아닌 현실을 노래한다.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 부지런히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 팬들도 가사 해석이 어렵지만 BTS의 노랫말이 현실 비판적임을 인지하고 있다고 한다. BTS의 북미 프로모션을 맡았던 에시 개지트는 이렇게 말했다. “재능은 언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댄스 퍼포먼스를 빼놓을 수는 없다. BTS도 기획사 방시혁 대표가 얘기하듯 K팝의 스타일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K팝 고유의 가치는 비주얼적으로 아름답고, 음악이 총체적 패키지로 기능하고, 무대에서 퍼포먼스가 멋있는 음악이라는 데 있다. 여기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녹여 진정성을 지키려는 방탄소년단만의 가치를 더했다.” 말은 그렇지만 춤만으로도 BTS는 확연히 딴판이다. 공연을 직접 관람한 사람들은 “여러 아이돌그룹의 댄스를 보다가 BTS의 퍼포먼스를 보면 분명히 차이가 난다. 바윗돌이 떠다니는 듯 힘차면서도 한편으로 아이처럼 귀엽고 아름답다”며 ‘경이’라는 소감을 밝힌다. 빌보드 뮤직어워즈에서 최고 여가수 켈리 클락슨이 한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보이밴드’라는 찬사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언론을 통해 BTS를 대중음악의 레전드 비틀스(Beatles)와 비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코웃음을 친다. ‘세계인이 전주만 들어도 바로 아는 곡이 없는 BTS를 어찌 감히 빌보드 1위곡만 20곡인 비틀스와 견준단 말인가’ 하고. 그러나 지난해 4월 빌보드는 BTS의 앨범 3장이 11개월간 앨범 차트 1위를 연속 점령해 1995년 들어서야 3장의 앨범이 정상에 오른 비틀스보다 더 빠르게 위업을 달성했다는 기사를 썼다.

전성기 때도 아닌 1990년대 실적을 가져와 비교하는 것이 조금은 궁색하기도 하지만 보도의 핵심은 ‘현재 BTS의 선풍은 비틀스 못지않다!!’는 사실에 있다. 물론 음원 혹은 음반 측면에서 BTS는 비틀스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중심은 음원이 아니라 공연에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의 홈구장인 시티필드 공연장을 꽉꽉 메우고 영국의 웸블리 구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드는 BTS는 공연과 관련해 현재 가장 뜨거운 티켓(hottest ticket)이다. 과거 비틀스가 부럽지 않다.

BTS를 커버스토리로 다룬 외국 잡지들 ⓒEntertainment Weekly·PAPER
BTS를 커버스토리로 다룬 외국 잡지들 ⓒEntertainment Weekly·PAPER

K팝의 운명, BTS에 달려 있다

그들의 공연은 또한 한두 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를 망라한다. 이슬람 율법이 엄격한 사우디아라비아 관객들마저 흔들고 춤추게 했다. 곳곳마다 관객들이 눈물 흘리고 기절하는 것은 기본이다. BTS 현상이 ‘세계적 팝 히스테리 현상’이라는 것을 인정하기에 비틀스와 비교가 가능해진다. 미국 TV 스티븐 콜베어 쇼에서 BTS는 비틀스와 같은 슈트를 입었으며 단 한 명의 가수도 초청하지 않았던 영국 리버풀 소재의 비틀스박물관으로부터 꼭 방문해 달라는 공식 초청을 받기도 했다.

미국과 영국의 언론들은 또 BTS 멤버들이 흙수저 출신이며 열정으로 불리를 극복했다는 점도 비틀스의 성공 과정과 흡사하다고 본다. 자본주의의 승리를 낳은 미덕이라고 할, 비틀스가 보여준 각고의 노력(work hard)이 BTS에도 고스란히 배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춤과 노래만이 아니라 그것에 깔려 있는 도덕적·사회적 가치를 발견해 진정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K팝은 BTS가 이렇게 파죽지세를 과시할 때 상승곡선을 타는 게 절실하다. 비틀스는 이후 수많은 가수들이 쏟아져 나와 미국을 정복한 이른바 ‘브리티시 인베이전(침공)’으로 연결됐지만 BTS의 ‘코리안 인베이전’은 이제 시작점을 마련한 정도다. K팝의 운명이 BTS에 달려 있는 형편이다. 지난해 여름 미국에서 만난 한 문화계 유력 인사가 목소리를 높이며 지른 말이 귓가를 맴돈다. “K팝 아니 한국이 방탄소년단 때문에 먹고사는 건지 알기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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