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다이내믹 코리아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24 09:00
  • 호수 1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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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감동은 개인적으로도 특별했다. 마지막 상을 남겨두고 긴장감이 최고조에 다다른 시상식의 무대 위에, 어린 시절 생애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의 여자 주인공이 나이 들어 곱게 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최초 영화 관람이라는 그 오래된 기억 속의 배우 제인 폰다가 전해 준 오스카 작품상 트로피가 봉준호 감독의 손에 쥐어졌을 때, 솟아오르던 감동은 마침내 함성이 되어 터져 나왔다. 그렇게 《기생충》은 지난해 5월 칸 황금종려상 이후 길게 이어진 수상 이력에 화려한 마침표를 찍었다.

영화 《기생충》이 불러온 감격의 열기가 시간이 지나도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카데미상 수상이 지니는 의미를 넘어 영화가 이룬 거대한 성취에 모두가 한마음으로 몰입된 느낌이다.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봉준호 감독과 영화에 대한 찬사는 물론, 촬영 당시 훈훈했던 현장의 분위기 등 여러 미담도 언론 보도와 SNS 등을 통해 끝없이 퍼져 나간다.

이처럼 뜨거운 환호와 갈채, 평론이 뒤엉켜 신드롬을 만들어가던 와중에 낯익은 또 한 명의 영화감독이 대중 앞에 소환됐다. 봉준호 감독과 더불어 한국영화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박찬욱 감독이 그다. 박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봉준호 같은 재능의 소유자와 동시대 동종 업계에 종사하고 친구로 지내는 일은 크나큰 축복이지만 사실 적잖이 귀찮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생충》이 공개된 후 내가 아는 외국 영화인들이 자꾸 전화해서 ‘한국영화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냐’ ‘한국 영화인들이 먹는 약 같은 게 있으면 같이 좀 먹자’ 등의 말을 건넸다. 그들에게 ‘너도 다이내믹 코리아에 살아봐라’고 대꾸했다”는 말을 전했다.

그 내용 중에서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말이 유독 크게 마음을 건드렸다. 기자 생활을 해 오면서 똑같이 가질 수밖에 없었던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박 감독이 말한 그 ‘다이내믹 코리아’ 또한 하루라도 조용히 지나가면 큰일 난다는 듯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우리 사회를 꼬집은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가 말한 한국의 역동성은 기자뿐만 아니라 예술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냥 지나쳐버릴 수 없는 대상이다. 언제든 영감의 원천이 되거나 작품의 소재로 유용하게 변주될 수 있다.

2월9일  LA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을 수상했다.
2월9일 LA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역동이 지나치면 사회에 일정 부분 독소를 남기는 것이 사실이다. 그 역동은 한국 사회 압축 성장의 그늘이기도 하다. 이를 외면한 채 역동의 방향을 잘못 잡거나 일방적으로 끌고 가면 볼썽사나운 ‘오버 액션’이 된다. ‘봉준호 열기’에 편승해 이득을 보려는 정치인들의 과한 행동이 딱 그런 모양새다. 봉 감독이 태어난 지역에 생가터를 복원하겠다느니, 영화박물관을 짓겠다느니 하며 경쟁하듯 내놓는 선거 공약은 너무나 기막힌 난센스다. ‘가난의 상품화’ 논란을 빚은 영화 속 장소의 관광 코스화도 마찬가지다. 뜬금이 없거니와 발상 또한 한없이 예스럽다. 

2020년을 사는 지금, 동상 건립에 생가터 복원(당사자마저 귀국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웃어넘기고 말았던)이라니. 그런 엉뚱한 생각을 내놓기 전에 지난 시절 봉 감독을 억눌렀던 블랙리스트를 반성하는 일이 먼저일 텐데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으면서 말이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소식과 함께 들려온 “한국은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정치만 빼고”라는 말이 자꾸 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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