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은 들려주지 않는 이야기 《사람사전》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3.08 11:00
  • 호수 1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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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카피라이터 정철 “사람이 희망, 그대 역시 누군가의 환한 희망”

“이기면 박수 받고 지면 위로 받는 것. 이렇게 정의하고 싶은데 아직은 그럴 수 없다. 이 표현이 자연스러워지는 날까지 그대와 내가 해야 할 일은 경쟁과 경쟁하는 것. 이기면 살고 지면 죽는다는 경쟁의 정의와 경쟁하는 것이다.”

유명 카피라이터 정철씨가 들려주는 ‘경쟁’에 대한 뜻풀이다. ‘경쟁’으로 남을 밟아야만 하는 치열한 경쟁사회를 비웃는 듯하다. 언제나 ‘사람’을 먼저 이야기해 온 정씨가 최근 《사람사전》을 펴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전이 있는데, 그 사전들이 주로 정답을 주기 위해 편찬된 사전이라면 《사람사전》에는 정답이 없다. 대신 읽는 이와 함께 고민하고 생각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세상 모든 사물과 현상은 사람의 선생님이다. 그들은 무심한 척 우리 곁에 살고 있지만 저마다 가르침 하나는 손에 꽉 쥐고 있다. 꽉 쥐고 있으니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열심히 들여다보면 그들 손에 쥔 가르침이 보인다. 그런데 어떤 시선으로 들여다보는가에 따라 관찰의 결과는 달라진다. 나는 사람이라는 시선으로 세상 단어들을 들여다보았고 단어 하나마다 우리 인생을 간섭하는 가르침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사전》 정철 지음│허밍버드 펴냄│368쪽│1만4800원 ⓒ허밍버드 출판사 제공
《사람사전》 정철 지음│허밍버드 펴냄│368쪽│1만4800원 ⓒ허밍버드 출판사 제공

“세상 모든 단어에는 사람이 산다”

정씨는 사람 사는 세상, 우리네 인생을 일상 단어 1234개에 비추어 읽고 또 썼다. 우리 주위를 맴도는 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를 ‘사람’이라는 잣대를 들고 치열하게 관찰하고, 곱씹었다. 그 결과, 단어 하나하나에 사랑, 희망, 위로, 믿음, 겸손, 배려 같은 사람의 성분이 녹아 있음을 확인했다.

“커피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고, 우유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텔레비전 속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고, 휴대폰 속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세상 모든 단어에는 사람이 산다’는 것을 책 한 권을 쓰며 확인한 것이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니 명함이, 벽시계가, 연필깎이가 보인다. 그들 속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사람에게 주는 크고 작은 가르침이 살고 있다.”

35년간 수천 개의 카피로 온 국민을 울리고 웃기며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정씨의 카피에 언제나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담겼던 이유를 알 수 있겠다. 그의 카피가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았던 이유가 이 책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사람을 이렇게 풀었다. ‘모든 생각의 주어. 모든 행동의 목적어. 모든 인생의 서술어.’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희로애락은 모두 사람과 엉켜 있고 얽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늘 사람 때문에 아파하고, 다시 사람 덕분에 그 아픔에서 벗어난다. 사람이 병이고 사람이 약이다. 우리 주위를 서성대는 명사, 동사, 형용사도 사람이라는 잣대를 들고 다시 들여다보면 그 속엔 무궁무진한 사람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이야기들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끄집어내 독자들에게 보여 드리며 같이 공감하고, 같이 아파하고, 같이 하하 웃고 싶었다.”

의미 없이 부유하던 단어들이 정씨의 따뜻한 시선과 만나면, 잊고 있던 일상의 소중한 순간과 표정을 복원하듯 살아 있는 단어로 다가온다. 나답게, 사람답게 사는 것이 우선이라고 믿는 그의 글을 통해 삶의 태도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정철의 억지스러운 글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책을 읽어 달라고 호소한다 해도 그들 귀엔 들리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런 혼잣말을 할 사람을 독자로 모시고 싶다. ‘아, 이걸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네’ ‘나도 이런 접근 한 번 해 봐야지’ 이런 혼잣말을 할 사람. 내 글쓰기를 구경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자신의 글쓰기를 위한 재료로 이 책을 씹어 먹을 사람. 이런 분들이 책을 읽어주셨으면 한다.”

 

“독자의 생각이 참여하는 독서가 됐으면 한다”

책 제목은 《사람사전》이지만 순전히 정씨의 생각을 ‘정철 식’으로 표현했으니 ‘정철사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정씨는 ‘정철사전’처럼 사전 앞에 누군가의 이름이 붙은 책들이 줄줄이사탕처럼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가 전하는 책 사용법도 같은 맥락이다.

“‘기역’에서 ‘히읗’까지 한 장 한 장 순서대로 읽어도 좋지만, 책 맨 뒤에 붙은 찾아보기를 이용하는 것도 흥미로운 독서법이 될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은 소설처럼 정주행할 필요가 없으니까. 예를 들면 매일 잠들기 직전 침대에 엎드려 단어 셋만 읽겠다, 이런 독서법도 괜찮을 듯하다. 오늘 하루 나를 힘들게 했던 단어나 내게 큰 기쁨을 준 단어 셋을 그날그날 골라 들여다보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이 세상 모든 단어를 다 수용할 수는 없었으니 기껏 고른 단어가 책에 없을지도 모른다. 좋은 찬스다. 그럴 땐 그대가 그 단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생각해 보는 거다. 작가의 생각을 받아먹는 독서가 아니라, 내 생각이 참여하는 독서가 될 테니 더욱 의미 있지 않을까.”

정씨는 자신의 오랜 직업인 카피라이터에 대해 ‘남의 얘기를 대신 해 주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라면 이야기도 대신 해 주고, 맥주 이야기도 대신 해 주는 사람이다. 남의 이야기 실컷 대신 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그래서 책이라는 걸 쓰기 시작했는데,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사람들은 한 카피라이터의 조금 다른 생각, 조금 다른 시선, 조금 다른 글을 수용해 줬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작가로도 불리며 살아온 10년을 총정리하는 책이 《사람사전》이란다.

“만약 이 책 제목이 《사람사전》이 아니었다면 어떤 제목이었을까. 아마 ‘희망사전’이었을 것이다. 그래, 희망과 사람은 같은 말이다. 언제든 서로 자리를 바꿔 앉아도 좋은 쌍둥이 같은 말이다. 내 호주머니 속에 희망이 없다면, 내가 앉은 자리에 희망이 없다면 주위를 쓱 한번 둘러보라. 희망이 환하게 웃고 있을 것이다. 사람이 희망이다. 그대 역시 누군가의 환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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