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과 뇌가 연결돼 있다는 증거들 [강재헌의 생생건강]
  •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3.11 11:00
  • 호수 1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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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불안·슬픔 등이 소화기계 증상 유발

2017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헬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순환기계, 신경계, 호흡기계 약물 소비량은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적었다. 그러나 유독 소화기계 약물은 다른 OECD 국가의 2배 가까이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 가장 소비량이 많은 약물은 순환기계 약물이었으나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소화기계 약물이 소비량 1위를 차지했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유독 소화기계 질환이 많은 것일까? 아마도 예의와 격식을 중시하고 복종과 인내를 미덕으로 여기는 우리의 문화와 현대사회의 과도한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원인일 수 있다.

한국인의 독특한 질환인 ‘화병’을 예로 들어보자. 분노나 스트레스를 표출하지 않고 마음 깊은 곳에서 삭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가 원인이 돼 분노, 짜증, 우울감 등 신경증적 증상이 생긴다. 가슴이 꽉 막힌 것 같고 답답한 증상과 함께 속쓰림, 소화불량 같은 소화기계 증상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화병 유병률은 5%나 되고 여성에게 흔하다.

소화불량, 속쓰림, 복통 등 소화기계 증상으로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 중에는 소화기궤양이나 위염 등 기질적 질환은 없는데 스트레스, 우울감 등 심리적 원인이 동반된 경우가 흔하다. 이런 환자는 심리상담과 약물치료로 스트레스와 우울감이 좋아지면 소화기계 증상도 같이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이종현

감정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위장관

이처럼 소화기계 증상이 심리적 증상과 연결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화가 나거나 긴장할 때 소화가 안 되거나 메슥거리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위장관은 감정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분노, 불안, 슬픔 등 감정이 소화기계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뇌는 위와 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식탁에 앉아 식사해야지 하는 생각만 해도 위에서는 위산과 소화액을 분비해 곧 들어올 음식을 소화시킬 준비를 한다. 반대로 위나 장에 이상이 생기면 불안감이나 우울감이 생길 수도 있다. 뇌와 위장관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다.

소화기계 증상으로 병원을 방문한 환자 중 상당수는 기능성 위장장애와 과민성 장증후군 진단을 받는다. 검사상 소화성 궤양이나 암 등 병변 없이 3개월 이상 위장관 증상이 만성 혹은 재발성으로 나타나는 것을 기능성 위장장애라고 한다. 과민성 장증후군은 위나 장에 특별한 질환이 없는데도 만성적으로 복통, 복부 불편감, 설사, 변비 등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이 두 질환은 모두 스트레스나 우울, 불안감이 원인인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이들 질환은 ‘꾀병’은 절대 아니고 심리적인 면만 있는 것도 아니다. 스트레스나 불안 등 심리적 요인은 위장의 운동 리듬이나 위산 분비 등에 이상을 유발해 실제로 위장관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위장관 증상을 심리적인 요인에 의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진찰과 검사를 통해 위염, 소화성 궤양, 암 등 기질적 질환이 없는 것을 확인했는데도 위장관 증상이 지속되고 삶의 질이 낮아질 경우 증상에 맞는 약물치료를 받으면서 심리상담과 스트레스 관리를 받는 것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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