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지는 ‘분산’ 서비스는 ‘집중’ [김현수의 메트로폴리스 2030]
  • 김현수 단국대 교수(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3.11 16:00
  • 호수 1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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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혁신과 고속교통이 가져올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미래

서울 인구는 10년째 줄어들고 있다. 서울 인구가 5.7% 감소하는 사이 경기도 인구가 12.3% 증가했다. 서울에서 빠져나간 사람들은 경기도에 정착하면서 서울의 직장으로 통근하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대부분 비싼 집값 때문이다. 서울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경제활동의 규모와 강도가 증가하니 주택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인구는 감소하는데 일자리는 꾸준히 증가한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 주도하는 신성장산업 분야의 일자리는 서울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강남, 상암, 구로, 성수, 문정 지역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경기 도민의 서울 통근이 늘어나고 그 거리도 길어지고 있다.

4~5년 후면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가 개통된다고 한다. 경기도 동탄과 파주에서 서울 강남까지 30분 이내로 통근시간이 짧아진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이동 속도가 빨라지면 사람들은 저렴하고 쾌적한 주거를 찾아 외곽으로 움직인다. GTX 역세권 근처에 이들을 받아줄 대규모 주택단지를 건설하면 서울 시민의 주거난을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대신 고급 소비와 일자리는 서울로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뉴턴의 중력법칙(Gravity Model)에 따르면 서울과 신도시 간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서로 당기는 힘이 강하고, 양 지역의 인구 규모나 구매력이 클수록 더 강하게 서로를 당긴다. 주거는 분산되고 고급 서비스는 중심도시로 집중하는 것은 자연법칙에 가깝다. 도시는 좀 더 광역화되고 중심과 주변 지역 간의 관계는 더 긴밀해질 것이다. 이런 변화에 부응할 수 있는 광역도시계획이 필요하다.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수도권권광역급행철도 A노선 착공식에서 참석자들이 착공을 축하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수도권권광역급행철도 A노선 착공식에서 참석자들이 착공을 축하하고 있다. ⓒ연합뉴스

GTX 환승으로 ‘강남 중심성’ 커져

‘서울플랜 2030’에는 광화문·강남·여의도 3개의 도심이 있다. 지난 10년간 광화문 역사도심에서는 일자리가 줄고 강남 도심에서는 일자리가 늘었다. 버킹엄 궁전이 있는 영국의 시티오브런던(City of London),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 프랑스 파리의 도심, 황궁이 있는 일본 도쿄의 마루노우치 등은 각국의 역사도심이다. 이 지역에서는 두부 자르듯 규칙적인 높이 관리와 함께 정비사업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수도의 역사도심은 그 도시뿐 아니라 국가의 품격을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광화문 역사도심은 600년 왕도의 역사도심답게 관리돼야 할 것이다.

삼성역에는 향후 2개의 광역급행철도(GTX)와 고속철도(SRT), 3개의 도시철도와 버스환승시설 그리고 공항터미널이 들어선다고 한다. 5G통신으로 사물이 연결되는 초연결사회(hyper connected society)의 초연결공간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강남은 서울 25구 중 하나지만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이다. 강남의 배후지라 할 성남, 수원, 용인, 화성은 세계 최고의 IT클러스터로 성장 중이다. 이들을 연결하는 고속의 GTX가 강남에서 환승하게 되면 그 중심성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

고급 오피스와 주택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서울 주택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인데  준공한 지 15년 이상 된 아파트가 70%에 이른다. 20년 후에는 절반 이상이 30년 이상 된 노후주택이 될 전망이다. 정주 환경의 기본적 요구인 위생과 안전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될 것이다. 나이가 들면 여기저기 치료를 받으며 살아가듯이 낡은 집은 고쳐 쓰는 게 자연스럽다. 전국의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겼다지만 서울 시내 주택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뜨겁다. 이를 놔두고 주택시장의 안정을 기대할 수 있을까. 기반시설 여건, 공간 구조, 주변 토지 이용 등을 고려하고 적정 수준의 공공기여를 통해 주택정비사업을 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말처럼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동안 재건축사업은 고수익의 투자상품이라는 수익률 전망, 가급적 내 돈 들이지 않고 새집을 가질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강남 재건축 시장을 투기꾼들의 사악한 전장(battle field)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 문제의 해법을 찾기 어렵게 하는 배경이다.

재건축 아파트의 높이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흔히 미국 뉴욕의 맨해튼이나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샌즈를 거론하며 높이 규제를 없애라고 한다. 그런데 이 지역은 중심상업지역이며 건축물은 오피스나 주상복합건물이다. 우리처럼 아파트로 초고층 건축군을 형성하는 나라는 눈 씻고 봐도 찾기 어렵다. 해당 지역의 중심지 위계, 용도 지역, 건축물의 용도 등을 고려해 층고를 결정하는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이와 함께 높이 관리의 원칙을 좀 더 정교하게 다듬는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도 있다.

 

기술혁신, 서울의 광역화·고도화 가져와

서울 용산은 역사의 장소이자 미래의 플랫폼이다. 몽골의 침략, 일본군의 점령, 미군정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를 안고 있다. 용산역과 용산공원은 서울의 킹스크로스역이자 센트럴파크다. 천만 도시의 중앙공원이면서도 국제 업무 활동의 허브가 될 수 있는 플랫폼 공간으로 만들어 갔으면 한다. 역사도심을 보전하고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런던은 도크랜드, 파리는 라데팡스, 도쿄는 신주쿠를 건설했다. 용산역과 용산공원은 서울의 혁신 잠재력을 업그레이드해 줄 수 있는 플랫폼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부족한 주택은 주택정비사업과 역세권 청년주택 등의 정책을 통해 공급돼야 한다. 물론 이들 사업에서 공급될 수 있는 주택 규모와 환경 수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광역교통망 확대와 함께 3기 신도시 건설 등 도심 반경 30km 통근권 내에서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서울 25구는 가용지가 매우 제한적이어서 런던, 파리, 도쿄와 비교해도 밀도가 가장 높다.

서울 시내에는 63개 대학이 있다. 1개 도시에 소재하는 대학 숫자로 볼 때 단연 기네스북 등재감이다. 대학이 많으면 활력이 넘치고 혁신 잠재력이 높은 장점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들은 높은 담장(fence)을 가지고 있다. 도심 소재 대학들도 경계를 갖고 있어 정문 인근을 제외하고는 도시를 단절하는 요소를 지녔다. 학생들의 주거 여건은 더 문제다. 좁디좁은 대학촌에서 학생들이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적절한 방을 찾기도 어렵다. 대학이 기숙사를 지으려 해도 인근 원룸 사업자들이 반대한다. 대학 기능 중에서 도심에 꼭 있어야 하는 기능을 제외하고는 외곽으로 이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대학의 담장이 제거된다면 도로와 보행로가 확보되고 도시 발전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대학 기능의 일부가 외곽으로 이전된다면 청년 주거 문제도 덜어지지 않을까.

이제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를 넘어 세계와 경쟁하는 국제도시다. 혁신적인 기업들이 서울에 자리 잡고 고속·광역철도가 잘 연계되면 국제적 기업과 고급 주택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이다. 인구가 늘어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의 수도, 수도권의 중심도시가 고도화돼 가는 게 발전 아닐까.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혁신은 기술기업, 성장산업의 일자리를 대도시, 특히 서울로 집중케 한다. GTX 개통은 서울을 더 넓게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기술혁신과 고속교통의 변화는 서울의 광역화와 고도화를 가져올 것이다. 광역환승역에는 기술기업 유치, 창업지원 기능이 들어올 수 있도록 지원시설과 청년주택, 교류시설이 쾌적하고 저렴하게 공급되는 장소 플랫폼을 조성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기술혁신과 창업을 이끌어갈 유니콘 기업의 탄생과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장소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서울과 경기도를 넘나들며 생산하고 소비하고 거주하고 통근한다. 그런데 도시계획과 도시 관리는 행정구역 단위로 나뉘어 있다. 소득은 증가하는데 통근거리는 길어지고 환경처리 시설의 입지 문제로 인한 갈등도 이어진다. 이제 서울, 경기, 인천을 하나의 대도시권으로 보고 계획하고 관리하는 대도시권 정책이 필요한 시대다. ‘서울 메트로폴리스 2040’을 현실에서 그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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