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회 내 끝나지 않는 ‘혐오주의자’와의 싸움
  • 이수민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3.10 16:00
  • 호수 1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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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세력 문제 적나라하게 드러낸 두 차례 총격 사건

2월19일 밤 10시, 독일 프랑크푸르트 동쪽 20km에 위치한 하나우(Hanau)에서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나우 시내의 시샤바(중동식 물담배를 피울 수 있는 바) ‘미드나잇’에서 시작된 살인은 이후 장소를 옮겨 시내로부터 2.5km 떨어진 또 다른 시샤바 ‘아레나바&카페’에서 이어졌다. 총 9명이 사망했으며 경찰이 용의자의 차량을 추적하자 용의자와 용의자의 모친 역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피해자들은 21세에서 44세 사이였으며 모두 이민자 출신이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독일 여론과 SNS에서는 용의자에 대한 사상검증에 들어갔다. 그 결과 용의자 토비아스 R은 평소 인종차별주의적인, 소위 ‘극우적’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는 재빠르게 독일 전체로 퍼졌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토비아스 R은 사건 이전부터 웹사이트를 만들어 인종차별적인 내용을 담은 24페이지짜리 팸플릿을 비롯한 여러 비디오 영상을 올렸다. 현재 이 사이트는 폐쇄되었으며 팸플릿 역시 읽을 수 없도록 조치되었다. 다만 부분적으로 공개된 구절들에 따르면 독일에 특정 인종들이 들어와 살고 있어 독일이 점점 파괴되고 있다며 이 인종들을 몰살시켜야 한다고 나와 있다.

이는 자연히 지난해 10월9일에 벌어진 할레(Halle) 유대교회당 총기 난사 사건을 연상시킨다. 당시 슈테판 B는 유대교의 욤키푸르(속죄일)에 유대교회당에 모인 사람들을 죽일 목적으로 사건 장소로 향했다. 결과적으로는 유대교와 무관한 행인 2명이 사망하고 여러 부상자가 나왔으며, 이 모든 것은 생중계 스트리밍되기까지 했다. 이 사건이 하나우와 동일한 점이 있다면, 바로 가해자가 사건 이전에 인터넷을 통해 인종차별주의적인 선언문을 공개했다는 점이다. 독일 사회가 슈테판 B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을 때 그는 만 27세인 ‘인셀’로 소개되었다. 인셀은 여성과 관계를 맺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독신을 뜻하는 단어로, 극단주의 성향 사이트에서 주로 사용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도시 하나우에서 2월19일(현지시간)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후 출동한 경찰이 현장 주변을 지키고 있다. ⓒAP연합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도시 하나우에서 2월19일(현지시간)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후 출동한 경찰이 현장 주변을 지키고 있다. ⓒAP연합

같은 듯 다른 두 총격 사건의 용의자

그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화학을 전공했지만, 이내 학업을 중단하고 이후 어머니 집에 살며 외부와의 교류를 단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대다수가 테러범에 대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이미지에 부합한다. 그러나 토비아스 R은 만 43세이며 고등학교 졸업 후 경제 부문에서 직업활동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부터 사격단체에서 활동했고, 평소 인종차별주의적인 언행을 전혀 볼 수 없었다고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이러한 사건을 벌였으며 ‘극우파’로 분류된 것일까.

인종차별주의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그런 것처럼 독일에서도 극우 세력으로 분류된다. 정치적으로는 독일대안당으로 대변되는 이러한 사회적 목소리가 특히 2015년부터 독일에 난민들이 대거 수용되기 시작하면서 점점 퍼져 나갔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접근성이 용이한 인터넷 매체를 통해 극우 세력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게 입장을 피력하고 서로의 의견을 교류한다.

이러한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의 혐오는 외국인을 향한 단순 감정을 뛰어넘는 것으로 분석된다. 단순히 그들의 피부색이나 억양, 문화나 종교에 대한 편견에 기반해 그들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튜브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극우파들은 직접 제작한 영상을 통해 외국인, 특히 난민들에 의한 범죄율 증가, 사회적 비용 증가와 같은 논거를 들며 “독일 내 외국인들은 설 자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실질적으로 독일 언론에서는 난민 출신들에 의해 행해지는 범죄를 자주 볼 수 있다. 주로 성폭력 사건이 많은데, 극우파 입장에선 여성 억압적인 이슬람교 특성과 연관 지어 무슬림 전체를 싸잡아 비판하기 좋은 주제다.

그러나 경찰청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난민 때문에 독일 내 성폭력 범죄가 증가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는 독일인이 가해자인 범죄가 훨씬 많으며, 오히려 해마다 난민 출신 성폭력 범죄는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극우파가 지적하는 또 다른 문제는 난민들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다. 인터넷에선 난민들이 독일에 자리 잡기 위해 소요되는 세금이 “1년에 5500만 유로다” “10억 유로다” 등 다양한 주장들이 난무한다. 문제는 난민 정착금이 얼마인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금액은 주마다 다르게 책정되며 실질적으로 난민들 수중에 들어가는 돈은 공개되지 않는다. 따라서 각자 나름의 계산법에 따라 금액을 추정하고 있으며, 그 많은 액수가 ‘독일인’이 정부에 내는 세금으로 충당된다는 점에서 극우 세력들은 자신들의 분노를 정당화하려고 한다. 인터넷을 통한 극우파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사실은 이번 하나우 총격 사건으로 인해 극명해졌다.

 

용의자가 정치 희생양이란 주장 퍼지기도

사건이 극우적 사상에 의한 것이라는 공식 발표가 나자마자 극우 세력의 여러 채널에서는 반대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많이 퍼진 주장은 용의자 토비아스 R이 범죄를 저지를 이유가 전혀 없었으며, 오히려 정치공작의 희생양일 거라는 주장이다. 음모론에 가까운 이 가설에 따르면 하나우 내 조직폭력단들 간 싸움의 희생자가 발생했을 뿐인데 독일 정부가 이 사건을 이용해 기존의 극우 세력들을 제거하려고 토비아스 R이라는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켰다는 얘기다. 이러한 음모론은 할레 사건 때도 제기되었지만 결국 그 안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회자됐을 뿐,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하나우 사건에서 이러한 가설들은 페이스북과 기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심상치 않게 퍼지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 팩트체크를 하며 이들의 음모론을 하나하나 반박하는 단체까지 생기기에 이르렀다.

극우파들의 주장을 듣다 보면 나름대로 논리정연하고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느끼는 이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들은 숫자와 여러 ‘공식 발표’들을 분석하고, 사실과 사실을 엮으며 내러티브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 타래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샌가 그들의 분노에 일부 동의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이들이 대부분 잘못된 정보를 유포한 것임이 밝혀지고야 만다. 하지만 그로 인해 타인에 대한 혐오감을 삽시간에 퍼뜨리고 사람들을 사망에까지 이르게 한다는 점에서 독일 사회는 끝없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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