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저지른 삼양식품 오너 일가 취업 제한 1호 될까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0.03.12 08:00
  • 호수 1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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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설 특정경제사범 관리위의 첫 해임 요구 사례 될 가능성

수십억원대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삼양식품 오너 일가에 대한 형이 확정되면서 이들이 계속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의 취업 제한 조항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사문화됐던 조항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법무부가 최근 거액의 횡령·배임을 저지른 오너 일가가 다시 피해 기업을 경영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기 위한 특정경제사범 관리위원회를 출범시켰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선 삼양식품 오너 일가가 위원회의 첫 해임 요구 사례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위치한 삼양식품 본사 ⓒ시사저널 포토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위치한 삼양식품 본사 ⓒ시사저널 포토

주주총회 무사히 넘겨도 ‘산 넘어 산’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과 김정수 삼양식품 사장 부부가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건 2018년 초다. 주력 계열사인 삼양식품이 계열사로부터 납품받은 포장재와 식재료 일부를 페이퍼컴퍼니로부터 납품받은 것처럼 조작해 49억원을 횡령한 혐의와 관련해서다. 전 회장 부부는 횡령한 자금을 자택 수리비나 차량 리스 비용 등 사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 일로 재판에 넘겨진 전 회장과 김 사장은 올해 1월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징역 3년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형이 확정되면서 세간의 시선은 이들 부부가 향후 삼양식품의 경영을 계속 맡을지 여부에 집중됐다. 그동안 각종 비리로 회사에 손실을 입힌 당사자가 계속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 회장은 검찰 수사 초기인 2018년 3월 임기 만료로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삼양식품의 대표이사직은 부인인 김 사장에게 넘어갔고, 전 회장은 삼양식품의 등기임원(회장)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런 논란은 당장 오는 3월30일로 예정된 정기주주총회에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특히 이날 주총에는 김 사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는 안건도 올라와 있다. 삼양식품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4.1%)은 지난해 투자 기업 경영진의 횡령에 대해 이사 해임 등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겠다는 가이드라인을 밝혔고, 지난해 2대 주주에 오른 미래에셋대우(17%) 역시 기업 가치 훼손을 짚고 넘어갈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러나 삼양식품에 대한 전 회장 부부의 지배력을 감안하면 경영권 방어가 유력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실제 지난해 정기주총에서 2대 주주(16.99%)이던 HDC현대산업개발은 ‘배임이나 횡령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이사를 결원으로 처리하자’는 내용의 정관 변경 안건을 주주제안으로 올린 바 있다. 여기에 당시 삼양식품 지분 5.27%를 보유하던 국민연금도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결국 안건은 부결됐다. 전 회장 부부와의 표 대결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전 회장과 김 사장은 삼양식품 최대주주(33.26%)인 삼양내츄럴스 지분을 각각 42.2%와 21.0%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이들 부부가 직접 보유한 지분에 특수관계자들의 지분까지 모두 더하면 삼양식품 우호 지분율은 46.56%에 달한다. 지난해 9월 HDC현대산업개발로부터 지분을 넘겨받은 미래에셋대우와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더라도 전 회장 부부와의 표 대결에서 승리를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주총을 무사히 넘기더라도 끝난 건 아니다. 특경법상 취업 제한 조항 때문이다. 특경법은 배임·횡령 등의 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가 ‘유죄판결된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에 형 집행 종료 후 5년간(집행유예 2년) 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개정 전 특경법 시행령은 법률상 ‘범죄행위 관련 기업’의 범위가 ‘유죄판결된 범죄행위로 재산상 이득을 취한 기업’으로 한정돼 있었다. 총수가 범죄를 저지를 경우 대부분 기업이 피해를 입기 때문에 이 취업 제한 조항을 적용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이를 두고 비판이 일자 법무부는 ‘재산상 손해를 입은 기업’까지 취업 제한 대상의 범위를 확대한다는 내용을 담은 특경법 일부 개정령안을 꺼내들었고, 지난해 11월부터 시행됐다. 개정된 시행령이 적용될 경우 전 회장 부부는 삼양식품 등 계열사에 대한 취업이 제한될 수 있다. 그러나 특경법 개정령안은 시행 후 경제범죄를 일으켜 형이 확정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개정된 법률 전의 사건에 대해선 소급적용하지 않는 것이 형법의 기본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 회장 부부의 경우는 여전히 취업을 제한당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다. 개정 전 시행령에도 5억원 이상의 횡령·배임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는 ‘공범’이 재직한 기업에 취업이 제한된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전 회장의 경우는 김 사장을 공범으로 볼 수 있다. 만일 이런 법 조항이 적용될 경우 전 회장은 김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삼양식품은 물론, 이사로 재직 중인 그룹 지주사 삼양내츄럴스가 취업 제한 기업이 된다. 반대로 김 사장도 전 회장의 공범으로 판단돼 삼양식품과 삼양내츄럴스에 대한 취업이 제한될 소지가 있다.

(왼쪽부터)전인장 삼양식품 회장, 김정수 삼양식품 사장 ⓒ연합뉴스·시사저널 포토
(왼쪽부터)전인장 삼양식품 회장, 김정수 삼양식품 사장 ⓒ연합뉴스·시사저널 포토

특경법 위반 ‘공범’ 재직 기업 취업 제한

특히 법무부 검찰국이 개정된 특경법이 시행된 지난해 11월에 맞춰 특정경제사범의 취업 제한 및 인허가 등을 관리하는 ‘특정경제사범 관리위원회’를 출범시킨 점은 전 회장 부부에게 부담이다. 특경법의 취업 제한 조항은 그동안 사문화돼 왔던 게 사실이다. 법무부가 법에 명시된 해임 요구 등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거액의 횡령·배임을 저지른 재벌 총수들이 취업 제한 대상이 됐음에도 예외 없이 자리를 지켜왔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아무리 재벌 총수 일가라도 취업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위원회 출범으로 특정경제사범의 취업 제한 등을 집행할 수 있는 체제가 구축됐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전 회장이 특정경제사범 관리위원회의 첫 타깃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삼양식품 관계자는 “전 회장과 김 사장이 향후 경영에 참여할지 여부는 오는 3월30일 주총에서 결정될 것”이라며 “특경법의 취업 제한 조항에 대해서는 달리 밝힐 입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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