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을, ‘중진양성론’ 대 ‘청와대 마케팅’
21대 총선은 사상 유례없는 선거로 기록될 듯하다. 그야말로 안갯속이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코로나19 사태라는 돌발 변수가 덮쳤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등 여야는 방역 대책으로 분주한 가운데서도 공천 결과를 속속 내놓고 있다. 그런데 이번 총선은 전에 없이 주요 인물들의 맞대결 양상이 속출하고 있다. ‘자객 공천’이란 말이 여기저기서 회자되는 이유다. 민주당 이낙연 공동선대위원장이 서울 종로 출마를 선언하자 통합당은 황교안 대표를 이 지역에 맞붙였다.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구로을에 자리 잡자 양천을 지역구에 있던 김용태 의원을 이쪽으로 옮겨 놓았다. 통합당 나경원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동작을과 광진을에는 민주당이 이수진 전 판사와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을 투입했다. 사활을 건 여야 정면대결 구도에 이를 지켜보는 유권자들의 관심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시사저널은 전국 주요 승부처 20곳의 현재 판세를 긴급 점검했다. 전국의 민심을 살펴보고자 각 지역의 이른바 ‘선거 1번지’로 불리는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했다. 또한 거물급 인사들의 맞대결 구도를 주목했다.
■ 전남│목포
20대 총선에서 ‘녹색 돌풍’을 일으켰던 국민의당은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호남 지지세를 완전히 상실했다. 현재 호남 전반의 민심은 의심의 여지 없이 민주당을 향해 있다. 민주당은 이번 21대 총선에서 설욕을 넘어 호남 전역 싹쓸이를 노리고 있다. 다만 일부 지역의 경우 지명도에서 앞선 현역 야당 의원과 민주당 후보 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혼전이 예상되고 있다. 대표적인 선거구가 전남 목포다. 현역 ‘터줏대감’ 박지원 민생당 의원과, 민주당의 높은 정당 지지율을 바탕으로 텃밭 탈환에 도전한 김원이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간 싸움이 제법 팽팽하다. 여기에 윤소하 정의당 의원까지 맞물려 3파전이 두드러진다.
이 지역에서만 내리 3선을 지낸 박 의원은 오랜 기간 지역 내 조직력을 단단히 쌓고 여러 지역사업을 이끌어냈다는 강점이 있다. 그 때문에 지역에선 그간 쌓은 개인 경쟁력만으로 박 의원이 무난하게 5선에 성공할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그러나 최근 여론조사에서 박 의원과 민주당 소속 김 전 부시장 간의 경쟁은 오차 범위 내에서 팽팽하기만 하다. 2월25일 진행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 전 부시장이 31.0%, 박 의원이 29.0%로 오히려 박 의원이 근소하게 열세를 보이기도 했다.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놓고 볼 때 박 의원의 아성이 예전 같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 의원의 경우 당 지지율 열세와 고령 프레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5선 가도의 열쇠로 꼽힌다. 손혜원 무소속 의원도 장외 변수로 꼽힌다. 손 의원은 목포 구도심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해 갈등을 빚은 박 의원의 총선 상대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김 전 부시장은 짧은 기간 얼마만큼 정책으로 어필하며 시민 속으로 파고드느냐가 관건으로 꼽힌다. 우기종 민주당 지역위원장과의 경선 과정에서 빚은 갈등 봉합도 과제다. 김 전 부시장은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역임한 탓에 ‘박원순의 남자’로 불렸고, 우 후보는 전남도 정무부지사를 지낸 만큼 ‘이낙연의 사람’으로 꼽혔다. 경선전이 차기 대선주자들의 대리전 성격을 띤 데다 두 후보가 막판까지 워낙 첨예한 신경전을 벌인 탓에 본선에서 이른바 ‘원팀’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진보진영에 확실한 고정표를 갖고 있는 윤소하 의원의 득표율 확장성 여부도 전체 선거 구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변수가 될 전망이다.
■ 광주│동구·남구을
민생당 바람, 어느 정도일까
선거에서 당락을 가르는 3요소로는 선거의 구도와 바람, 그리고 인물이 꼽힌다. 광주에서의 선거 구도와 바람은 이미 지난 ‘촛불 민심’으로 치러진 대선과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더불어민주당에 절대적으로 기울어졌다. 지역에선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여전히 70%를 웃도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덕에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4년 전 완패를 만회하는 덴 전혀 무리가 없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야당에서 그나마 써볼 수 있는 카드는 ‘인물’이다. 호남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박주선·천정배·김동철·장병완 의원 등의 이름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이 중 박주선 민생당 의원이 ‘절대 맹주’로 군림하고 있는 광주 동구·남구을은 호남의 정치 1번지로 꼽힌다. 4선의 박 의원은 이 지역에서만 내리 3선을 지낼 정도로 조직력과 인지도가 높다. 20대 국회 전반기 부의장을 지냈고, 바른미래당 공동대표와 민생당 창당을 위한 3당 통합추진위원장 등 중량감 있는 정치 행보로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보폭을 넓혀왔다. 정치 인생에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며 5선 도전에 나서고 있지만, 혁신과 변화를 요구하는 지역 민심을 어떻게 뛰어넘느냐는 주요한 과제다.
본선에 앞서 당내 후보 선정에서 먼저 ‘김성환’ 전 동구청장이라는 복병을 만나 다급한 상황이다. 본인이 주도한 야권 통합으로 인해 ‘굴러온 돌’이 5선 가도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지역 정가에서는 2018년 지방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후 꾸준히 총선을 대비해 온 김 전 청장이 최근 급상승세를 타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에 맞서 민주당의 이병훈 전 광주시 문화경제부시장이 설욕을 다짐하고 있다. 이 후보의 ‘금배지’ 도전은 이 지역에서만 3번째다. 이번엔 일찌감치 당 지역위원장을 맡으며 지지 기반을 쌓았으며, 전국 최초로 광주형 일자리를 성공시키는 등 전력을 보강했다. 다만 월등한 정당 선호도와 달리 후보 선호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와 함께 ‘당원 욕설’ 파문 등 내홍을 겪기도 했다.
■ 전북│익산을
‘중진양성론’ 대 ‘청와대 마케팅’
현재 전북 총선 민심은 더불어민주당으로 회귀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소속 정당 지지율과 무관하게 지역에서 경쟁력을 쌓아온 경륜 있는 ‘비(非)민주당’ 현역 의원들이 포진해 있는 까닭에, 섣불리 여당의 압승을 장담할 순 없다. 대표적인 이가 익산을 지역구 사수를 노리고 있는 조배숙 민생당 의원이다.
익산을은 전북에서 대표적으로 ‘당심’과 ‘인물’ 간 대결 구도가 형성돼 있다. 조 의원은 이곳에서 17, 18대 총선 승리를 거둔 후 19대에서 전정희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와 붙어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20대에 다시 국회에 입성해 호남 유일의 3선 여성 중진 의원 입지를 다졌다. 그가 21대 국회 입성에 성공할 시, 대한민국 최초 여성 국회부의장에 오를 가능성도 높게 점쳐진다. 때마침 지역에서도 ‘중진 의원을 양성해야 한다’는 여론이 적잖이 형성돼 있다. 20대 총선에서 세대교체론이 대세였다면, 21대에서는 중진 등판론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4선 의원에 대한 피로감, 소속 정당의 낮은 지역 지지율 등의 변수는 여전하다. 조 의원 대항마로는 청와대 정무수석 출신의 한병도 민주당 지역위원장이 경선을 뚫고 최종 낙점됐다. 그는 지난 총선에선 국민의당으로 출마한 조 의원에게 9.27%포인트 차이로 졌다. 4년 사이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이라는 화려한 이력을 추가해 지역으로 복귀한 그는 전과 다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한 위원장은 자연히 이른바 ‘문재인 마케팅’을 펼치며 민주당 지지층 결집에 나서고 있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호남에서만큼은 꾸준히 두텁게 유지되고 있는 만큼 ‘청와대 간판’의 효과가 클 것이라는 시각이 팽배하다. 다만 청와대 하명 수사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에 연계된 기소 문제는 여전히 그의 발목을 잡는 지점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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