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비례용 위성정당, 또 다른 꼼수 이유 [배종찬의 민심풍향계]
  •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3.06 14:00
  • 호수 1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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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민주당’은 불가, 민주당이 비례용 범여권 위성정당으로 갈 수밖에 없는 3가지 이유

지난해 우리 정치권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 핵심은 국회의원의 ‘밥그릇’이었다. 국민들은 경기 둔화와 저성장의 덫에 갇혀 신음하고 있는데, 국회는 말 그대로 요지경이었다. 연초부터 선거법 개정을 들고나오더니 4월에는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육박전이 펼쳐졌다. 공짜로라도 보고 싶지 않은 영화를 본 것처럼 개운치 않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해를 넘기기 며칠 전에야 겨우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의 전신)을 제외한 여당과 일부 야당의 ‘4+1 협의체’가 간신히 법안을 통과시켰다.

선거법 개정은 애초에 주권자인 국민들의 선택 비중에 맞게끔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자는 취지였다. 국민들의 다양한 정책적 요구가 서로 다른 성격의 정당을 통해 더 많이 반영되기를 희망한 것이다. 그러나 그 전개 과정은 해괴망측했다. 처음에는 75석 규모의 비례대표 의석수를 논의하다 최종적으로 지난 20대 국회의 지역구 의원 수와 비례대표 의석수로 수렴되었다. 국민들 앞에서 ‘시간낭비’만 한 모양새다. 정치 개혁을 주도했던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국민들은 잘 몰라도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성난 국민들의 분노에 직면하기도 했다.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온 누더기 제도지만 그래도 국회를 통과했으니 존중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미래한국당이라는 위성정당의 출현과 함께 국회에 대한 신뢰는 또 한 번 바닥을 쳤다. 현실적으로 비례대표 정당 투표에서 위성정당은 상당한 파괴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2019년 7월15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회의실로 이해찬 대표를 예방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2019년 7월15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회의실로 이해찬 대표를 예방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정의당 눈치 볼 수밖에 없는 민주당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의 의뢰를 받아 지난 2월27~28일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이번 총선에 비례대표 정당 투표에서 어느 정당 또는 단체에 투표하겠는지’ 물어보았다. 더불어민주당이 35.3%로 가장 높았고, 그다음으로 미래통합당의 비례용 위성정당으로 알려진 미래한국당이 30%였다. 정의당 9.8%, 국민의당 4%, 민생당 3.9% 순으로 나타났다(그림①). 일반적으로 보던 정당 지지율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묻겠지만 이 조사는 비례대표 투표 정당을 물어본 것이다. 바뀐 선거법에 따르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된다. 즉 지역구에서 일정 수 이상 의석을 확보한다면 민주당은 비례대표 47석 중 30석을 우선적으로 군소정당에 배분하는 제도하에서 의석을 추가할 기회는 줄어든다. 반대로 미래한국당은 법적으로 통합당과 상관없는 정당이라 통합당이 지역구에서 몇 석을 얻든 상관없이 많은 숫자의 비례대표 의석수를 확보하게 된다. 한마디로 민주당과 정의당의 계획에는 없었던 일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비례용 위성정당 출현 불가피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명분이 약한지라 당 밖의 진보적인 시민단체와 친여 성향 정치 세력을 중심으로 비례정당을 만드는 작업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짐짓 뒤로 빠진 채. 또 다른 꼼수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까지 민주당이 통합당처럼 비례 위성정당인 ‘비례민주당’을 자체적으로 만들지 못하고 외곽 정당으로 선회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범진보진영의 또 다른 축인 정의당과의 관계가 남아 있고, 정치 개혁에 대한 중도층의 평가가 있기 때문이다. 자칫 이번 총선 이후에 통합당을 제외한 다른 야당들과 함께했던 검찰 개혁 법안, 특히 공수처 설치에 대한 협력이 뿌리째 흔들릴 수도 있다.

먼저 정의당과의 선거연대를 위해서라도 ‘비례민주당’을 노골적으로 공식화하는 일은 어렵다. 지난해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 법안의 국회 통과에 있어 일등공신은 정의당이나 다름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검찰 개혁을 위해 공수처 설치의 상징성과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민주당 내에서조차 반발 기류가 감지된 공수처 법안 통과에 정의당은 그 어떤 정당보다 여당에 힘을 모아 주었다. 조국 전 장관 논란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도 정의당은 세간의 비판을 일축하고 조 전 장관 임명에 민주당과 함께했다.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를 받아 지난 2월25~28일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어느 정당 또는 단체를 지지하거나 약간이라도 더 호감을 가지는지’를 물어보았다. 범진보진영인 민주당과 정의당 지지율을 합하면 45%로 나타났다. 수도권은 조금 더 높은 수치인 46.5%였다(그림②).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 민주당 지지율이 꽤 높은 편이지만 여대야소를 위해서는 정의당과의 공조가 절실하다. ‘비례민주당’ 효과보다 범진보진영의 붕괴로부터 오는 후폭풍이 더 커 보인다.

총선 이후 ‘검찰 개혁’ 공조도 무시 못 해

민주당이 ‘비례민주당’을 공식화하지 못하는 추가적인 2가지 이유가 더 있다. ‘지역구 선거 영향’과 ‘검찰 개혁 공조’다. 불과 수십 표 차이로 당락이 엇갈리는 경합 선거구에서 중도층 유권자들의 표심은 결정적이다. 상대적으로 부동층 성향이 강한 중도층에서 ‘언더독 현상’이 나타날 개연성이 높다. 민주당의 위성정당이 현실화되면 정의당은 주요 지역구에 후보를 낸다는 입장이다. 박빙이 예상되는 선거구에서 정의당 후보들이 선전한다면 상대적으로 민주당 후보들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민주당을 향해 소탐대실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비례민주당’을 드러내놓고 시도하지 못하는 세 번째 이유는 ‘검찰 개혁 공조’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우려다. 올해 하반기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본격 출범한다. 검찰 개혁의 본격적인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셈이다. 그런데 공수처가 순항할지 여부는 이번 총선 성적표에 달렸다. 민생당도 원칙적으로 ‘비례민주당’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공식화된다면 검찰 개혁 공조가 잘 진행될지 의문이다. 지난해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공수처 설치 찬반’을 물어본 결과 민주당은 거의 대부분인 96.1%가 찬성했다. 통합하기 이전의 자유한국당은 반대가 압도적으로 높았고, 바른미래당도 20%포인트 이상 반대가 더 많았다(그림③). 총선 이후 검찰 개혁 국면에서 정의당은 집권여당의 든든한 동반자 역할이 기대된다. 그러나 위성정당 문제로 민주당과 정의당의 ‘검찰 개혁 연대’가 무너진다면 순조로운 검찰 개혁의 동력이 만들어질지 불투명한 일이다. 결국 정의당 등 범진보진영의 참여를 전제로 한 외곽 비례정당 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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