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람보르기니가 업무용? 5억원 이상 ‘슈퍼카’ 절반이 회사차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3.12 10:00
  • 호수 1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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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자료 단독입수·분석 결과 …1억원 넘는 법인·사업자 소유 승용차 9만2919대

한 중견기업 오너는 차량 가격이 6억원대에 이르는 슈퍼카를 타고 다닌다. 아침에 자택 주차장에서부터 직접 슈퍼카를 몰고 회사로 향한다. 슈퍼카가 우렁찬 배기음을 뿜어내며 회사 앞에 다다르면 모든 직원이 오너의 출근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차는 오너 자신이 아닌 회사 소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차량 구입비, 보험료, 기름값 등을 회사가 충당하고 ‘회사차’로서 세금도 감면받는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국토교통부의 ‘취득가액 1억원 이상 수입 승용차 등록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국내 1억원 이상 수입 승용차는 17만9012대인데, 이 중 52%인 9만2919대가 법인 및 사업자 소유였다. 개인 소유는 그보다 적은 8만6093대다. 

한국에서 법인 대표나 개인사업자가 회사 명의의 고가 수입 승용차를 타는 것은 일반적이다. 세금을 줄이는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현행 법인세법과 소득세법상 업무용 차량 구입 시 구입비, 유지비 등을 비과세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다.

2019년 11월20일 람보르기니 주최 행사에 등장한 아벤타도르 SVJ 로드스터 ⓒ시사저널 최준필
2019년 11월20일 람보르기니 주최 행사에 등장한 아벤타도르 SVJ 로드스터 ⓒ시사저널 최준필

‘무늬만 회사차’ 논란 끊이지 않아 

이 때문에 법인 및 사업자 소유 차량 중 버스, 중장비 차량 등 명백한 업무용이 아닌 고가 승용차는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법인 대표·개인 사업자가 ‘체면’을 차린다며 회사 명의로 고가 수입차를 구매해 타고 다니는, 이른바 ‘무늬만 회사차’ 논란이다. 종종 이들의 가족이 사적으로 이용한 사례도 드러나 비난받기도 했다. 차량 가격이 높아질수록 취·등록세나 자동차세, 보험료, 유류비, 수리비 등 인정되는 비과세 비용도 늘어난다. 

더 큰 문제는 5억원 이상 수입 승용차다. 이런 ‘슈퍼카’는 구입비는 물론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도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만큼 세금 탈루액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2월 현재 국내 5억원 이상 수입 승용차 641대 중 338대(52%)가 법인 및 사업자 소유인 것으로 나타났다. 5억원 이상 10억원 미만 구간에서는 법인 및 사업자 소유 차량이 313대로 개인 소유 차량(222대)보다 훨씬 많았다. 10억원 넘는 수입 승용차는 국내에 총 106대 있었는데, 여기서도 법인·사업자가 소유한 경우가 25건에 이르렀다.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대표적인 슈퍼카로는 람보르기니, 페라리, 롤스로이스 등이 꼽힌다. 자동차 애호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타고 싶어 하는 명차 브랜드다. 법인 대표·개인 사업자 역시 ‘업무용 슈퍼카’로 이런 브랜드를 선호한다. 

김상훈 미래통합당 의원실에서 국토부를 통해 받은 ‘업무용 수입차 최고가 현황(2013~18년 7월 기준)’을 보면 최고가인 부가티 베이론은 최초 취득액이 25억9000만원에 달했다. 페라리의 라페라리 2대(17억원·16억4000만원), 벤츠 SLS AMG(12억원), 애스턴마틴의 뱅퀴시 자가토 볼란테(11억5000만원), 벤츠 C-Class(11억4000만원), 포르쉐 918스파이더(10억9000만원),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9억원), 롤스로이스 팬텀 EWB(8억7000만원), 재규어 XJ 3.0D(8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찻값 나눠 내는 ‘법인 리스’도 활발 

슈퍼카를 현금으로 한 번에 구입하는 법인 대표·개인사업자도 있으나, 상당수는 수입차 딜러사의 리스 제도를 이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리스를 하면 거액 없이 ‘로망’을 실현하면서 세금도 줄일 수 있다. 6억원대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의 일반적인 리스 계약을 들여다보면 선수금 1억원 정도를 내고 60개월간 매달 1000만원씩을 지불한다. 이 밖에 보험료, 유류비, 수리비 등을 따지면 한 달에 1200만~1300만원가량이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를 운전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 현금으로 슈퍼카를 구매할 돈이 있는데 리스를 택하는 법인 대표·개인사업자도 많다. 딜러사에서 무이자 혜택을 주는 경우다. 시장에서 법인·사업자의 고가 수입차 구매가 활성화돼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김상훈 의원은 “영업용 차량에 대한 세금 감면 혜택은 사실 영세 자영업자 등 실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업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고가 수입차, 특히 스포츠카나 슈퍼카를 영업용으로 등록하는 건 누가 봐도 의아하다”고 지적했다. 

각계의 비판이 쏟아지자 정부는 2015년 8월 법인세법과 소득세법을 개정해 법인 및 사업자 명의로 업무용 차를 구매할 경우 연간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는 구입비 상한선을 최대 800만원으로 제한했다. 구입비와 유지비를 합쳐 1000만원 이상을 비용으로 인정받고자 하면 운행일지를 작성해 업무 사용 비율을 입증토록 했다. 해당 내용을 포함한 세법 시행령 개정령안은 2016년 2월1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앞서 5년에 걸쳐 업무용 차 구입비 전액을 비용으로 인정받고 연간 유지비도 제한 없이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과세가 강화된 것이다. 

그러나 일부 조세 전문가는 정부 방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세법 개정을 통해 정부는 임직원 전용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업무용 승용차는 관련 비용의 50%까지 비용 처리를 허용하고, 운행일지를 통해 입증되는 만큼 사용 비율을 추가로 인정하기로 했다. 아울러 기업 로고 부착 차량은 운행일지 작성 여부와 관계없이 비용을 100%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관해 최정희 건양대 세무학과 교수와 전병욱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2015년 10월 논문에서 “회사 소유주 가족이 임직원으로 허위 등록할 경우 여전히 세금 탈루의 여지가 있다”며 “보험 가입 요건만 갖추면 손비 처리가 허용되기 때문에 사적 사용을 방지하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운행일지 작성을 놓고도 “정확한 일지 작성 여부를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어 허위 작성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탈부착식 로고는 손비 처리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도색 처리된 로고가 아니면 굳이 탈부착식 로고가 아니더라도 손쉽게 제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 대안의 실효성에 의문 

실제로 과세 강화 이후에도 법인 및 사업자의 고가 수입차 구매는 줄어들긴커녕 늘었다. 업무용 1억원 이상 수입차는 5년 전인 2015년 상반기 5만6000여 대 수준에서 현재 9만2919대로 60% 이상 급증했다. 세법 개정 효과를 추적한 전병욱 교수는 2018년 12월 ‘세무학연구’를 통해 발표한 논문에서 “2016년 시행된 업무용 승용차에 대한 세법상 규제가 절세 효과 감소로 인해 개인사업자의 차량 취득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별도로 확인할 수 없었다. 2016년 이후에도 전체적인 절세 효과가 충분히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일면 세금 부담이 증가했다 하더라도 개인사업자 입장에선 고가 승용차를 운행하는 게 사업상 과시 효과를 위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러한 비(非)조세적 유인이 세금 부담에 비해 훨씬 중요했을 가능성도 고려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상황 개선이 요원한 가운데 정부는 오히려 올해부터 규정을 완화했다. 업무용 승용차의 운행일지를 작성하지 않고 경비 처리할 수 있는 한도를 올해부터 기존 1000만원에서 1500만원으로 500만원 늘린 것이다. 대신 처분 손실·임차료의 손금 처리 한도는 연 800만원으로 제한했다. 기존에 처분 손실은 처분 후 10년 차에, 임차료는 임차 종료 후 10년 차에 잔여액 전부를 손금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10년 차 이후에도 임차료·처분 손실 모두 1년에 800만원까지만 손금 처리가 가능하다. 

 

“‘이게 말이 되나’ 싶은 사례 콕 집어 단속해야” 

전문가들은 허술한 과세 제도, 과시욕 등이 맞물려 과도한 ‘무늬만 회사차’ 논란과 세수 부족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타개할 방법은 역시 ‘영세 사업자 보호와 경제 활성화’라는 정책 취지에 들어맞는 제도 개선이다. 

전병욱 서울시립대 세무대학원 교수는 “계속 문제 제기가 이뤄지니 정부도 여러 번에 걸쳐 세법을 바꾸고 있는데 해결되지는 않고 있다. 현재까지 내놓은 대책으로 상황을 타개하기가 무리라면 금액 부분의 통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운행일지 작성 의무도 (최근 세법 개정처럼) 완화할 게 아니라 더 강화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업무용 승용차의 감가상각 및 리스 비용 한도를 3000만원으로 정하고 차량 유지·관리 비용 한도는 600만원으로 정하는 개선책을 제안한 바 있다. 이와 함께 법인이나 개인사업자가 작성하는 운행일지를 정부가 규격화한 뒤 과세관청이 효율적으로 조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슈퍼카가 석연찮게 업무용 차량으로 등록된 경우와 관련해 전 교수는 “취득가액이 얼마 이상이면 법인세법을 통해 세금 감면 혜택을 제한하는 방법도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훈 의원은 “회사 성격과 상관없는 슈퍼카 등 ‘이게 말이 되나’ 싶은 사례를 샘플로 정해 국세청에서 조사하는 등 실효성 있는 단속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해외 선진 사례도 검토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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