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3.0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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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에서 의사로 돌아온 안철수

코로나 재난 상황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정치인은 단연 안철수이다. 역설적으로 그는 정치에 입문한지 거의 10년 만에 의사로 복귀해 10년 전 국민에게 받았던 폭넓은 지지와 열렬한 환호를 받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벤처기업가로 주목 받던 1990년대 후반부터 ‘소명의식’의 중요성을 대중에게 일깨우며 일약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했다. 기업가로서의 흔적 하나하나에서 그가 얼마나 진심을 다했는지 경험한 이가 한 둘이 아니다.

아쉽게도 그는 2012년 9월 정치인으로 정식 데뷔한 후 8년 간 국민에게 기대보다 더 많은 안타까움을 던져줬다. 당시 그에 대한 기대와 지지는 국내외 그 어떤 인물과도 비교되지 않았을 만큼 높았다. 그러나 냉엄한 정치의 한복판에서 탈당과 창당을 반복하며 시행착오를 거듭하자 그를 지지했던 환호는 비난으로 바뀌었고 인기 역시 폭락했다. 그가 국민에게 약속했던 언행 하나하나가 일관성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인 안철수는 그렇게 잊히는 듯 했다.

국민이 다시 그에게 찬사를 보낸 이유는 의사 가운을 입고 코로나 재난의 중심지인 대구에서 자원봉사자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의사에서 CEO, KAIST 교수, 정치인으로 변신을 거듭하다 다시 의사로 돌아와 본업에 충실한 그에게 국민의 지지가 쏟아졌다. 그의 2004년 저서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에는 ‘원칙은 손해를 감수하면서 지킬 때 의미가 있다’는 구절이 나온다.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원칙을 지키려는 그에게 대중이 환호하는 이유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1일 오후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관련 진료를 마친 뒤 비상대책본부 건물로 돌아가고 있다. ⓒ 연합뉴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1일 오후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관련 진료를 마친 뒤 비상대책본부 건물로 돌아가고 있다. ⓒ 연합뉴스

 

원칙은 손해를 감수하면서 지킬 때 의미가 있다

그가 KAIST 교수로 재직했을 때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어록 또는 격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참고로 그는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점을 ‘신뢰’로 꼽으며 신뢰만 형성돼도 리더십의 절반은 채워진다고 강조했다. 탁월한 비전, 전략적 의사결정도 중요하지만 리더는 신뢰를 쌓는 것이 더 중요하고, 가장 어려운 상황일 때 주저하지 않고 솔선수범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리더의 덕목과 역량은 안정기보다 위기에서 두드러지는 법이다.

코로나 사태에서 좌충우돌하는 리더가 있는가 하면 위기 상황임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리더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철수 대표가 의사라는 본업으로 돌아와서 대구에서 봉사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가 원하는 ‘신뢰를 지키려는 리더’의 모범적인 예다. 그는 과거 강연에서도 ‘신뢰를 주고받는 대인관계, 훌륭한 가치를 위해 헌신하는 것, 그리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해왔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리더의 기본자세임을 말해왔다.

일각에서는 안철수 대표가 의사 가운을 벗은 지 오래라는 점을 이유로 불법 의료, 이미지 정치라고 비난하고 있다. 정치인 안철수를 불신하는 이들은 그의 봉사 활동도 총선 이벤트, 지지율 연극이라며 깎아 내리기 바쁘다. 그러나 매일 입으로는 대구․경북에 대한 걱정과 근심을 얘기하지만 해당 지역에서 제대로 된 봉사 활동을 수행하는 정치인은 아직까지 단 한 명도 없다. 이를 감안하면 그의 이번 봉사를 섣불리 비난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안철수 대표는 벤처기업가 시절에도 다양한 비난과 의혹을 받아왔다. ‘수의사 출신인데 학력을 위조했다’, ‘국회의원 전국구 자리를 받는 대가로 활동하고 있다’, ‘간암에 걸려 오래 살지 못 한다’ 등의 지라시성 음모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시간은 원칙을 갖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가장 든든한 지원자이기에 단기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원칙을 지키면 소신 있게 살아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칙은 손해를 감수하면서 지킬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 리더에게 바라는 ‘소명의식’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는 단기적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원칙을 고수하는 이를 찾기 힘들다. 야당인 미래통합당은 제1당이 되기 위한 꼼수로 비합리적인 비례정당을 만들었고, 이를 강력히 비판해온 여당은 명분이야 만들면 그만이라며 진보진영 내 비례정당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독자 노선을 걷겠다고 선언한 안철수 대표를 지지했던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그를 버리고 통합당에 속속 합류했다.

정치에서는 조직이 지향해야 할 핵심가치가 아닌 묻지 마 이합집산이 선거 때마다 반복된다. 정치인 누구도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원칙을 지키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인 안철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총선에서 고통스럽더라도 독자 노선을 걷겠다던 그는 고립무원 상태에 빠지자 253개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않는다며 지역 선거구에서 야권 후보를 선택해 달라는 입장을 밝히며 한발 물러섰다. 이익을 위해 원칙이 하염없이 무너지는 세상이다.

정치인 안철수가 아닌 의사 안철수로 여의도가 아닌 대구에 나타났을 때 대다수 국민이 그를 지지한 건 오랜만에 우리 사회 리더에게 바라는 ‘소명의식’이 보였기 때문이다. 희생과 헌신을 각오하고 다수의 의료진이 대구를 내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은 감동을 받았고, 자발적으로 자신이 갖고 있던 마스크를 기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으로 무엇인지 스스로 자문하고 있다.

여유로운 상황일 때는 누구나 원칙을 이야기하고 이를 지킬 수 있다. 원칙을 원칙으로 만드는 힘은 눈앞의 손해를 감수하고 지켜낼 때 생긴다는 평범한 교훈을 우리는 의사 가운을 입은 안철수를 통해 다시 한 번 접하게 됐다. 의사 안철수의 원칙과 솔선수범은 정치인 안철수에게도 좋은 리더십 교재가 될 것이다. 스티븐 코비 박사의 조언처럼 원칙은 수시로 변경 가능한 지도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 항상 정북을 가리키는 나침반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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