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천지에도 시인은 살아있다 [최보기의 책보기]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thebex@hanmail.net)
  • 승인 2020.03.0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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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는 죽어서도 떼 지어 산다》ㅣ최성규 시집ㅣ시와에세이ㅣ120쪽ㅣ1만원

‘지구에 세계대전이 일어나 강대국들이 가진 만 개의 핵폭탄이 모두 터져도, 도서관 문만 열려있으면 인류는 멸망하지 않을 것’이란 문장 안의 ‘도서관’은 매우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어떤 어려움이나 위기가 닥쳐도 인류가 생존과 진보를 위한 이지적 노력을 멈추지 않는 한 우주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희망을 내포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기습적인 창궐로 그 도서관 문이 엄격하게 닫혀버렸다. 지금 인류 존망의 무서운 일이 터진 것이다. 세계는 닫힌 도서관의 문을 다시 열기 위해 바이러스와 사투를 치르는 중인데, 전선의 맨 앞에서 온 몸을 던져 싸우고 있는 나라가 코리아다. 다른 모든 나라들이 코리아의 승전보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인류의 명운이 동아시아의 작지만 강한 나라, 코리아에 달려있다.

도서관 안에는 인류가 유사이래 쌓아온 모든 지식과 정신이 축적돼있다. 인류 정신의 정수(精髓)는 문학, 문학의 정수는 시(詩)다. 예지의 시인들은 가스중독을 예보하는 탄광의 카나리아처럼 역사의 길목에 서서 인류의 희망을 노래하거나 인류의 위기를 경고했다. 그러므로 시인들이 노래를 멈추지 않는 한 도서관 문은 닫히지 않는다. 코로나19와 사투 중에도 시집(詩集)이 출판되는 나라에는 희망은 있다. 코리아는 이 와중에도 시집이 출판되고 있는 나라다.

‘멸치는 죽어서도 떼 지어 사는데/ 나의 언어들아!/ 뜨겁게 끓다가도 한순간 식어서 맛없는 세상이 될지라도/ 육수보다 진하고 깊은 국물이 되어보자/ 뚝배기처럼 뜨거운 한술 밥 누군가를 적셔주기 위하여/ 자글자글 지글지글 넘쳐보자’고 노래하는 최성규의 시집 《멸치는 죽어서도 떼 지어 산다》가 출판되는 나라다. 심지어 그는 이름이 벌써 유명한 시인마저 아니다. 다만, 그는 ‘아내마저도 쳐다봐주지 않는 시, 시인이 된다고 덤비는 것은 언제든지 굶어 죽어도 좋다고 선언하는 것, 죽어서도 시를 쓰겠다는 형벌까지 감당하는’ 카나리아가 되고자 늦깎이로 시를 붙잡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농밀하고 구수하다.

‘꽃을 따다 보면/ 벌들이 귓가에 날아와서 윙윙거려요/ 그러면 저는 곧 꽃 따는 일을 멈추는데요/ 제가 꽃을 따버렸기 때문에 벌들이 앉아야 할 곳이/ 없어져 버린 것이잖아요?/ 벌들 윙윙거리는 소리가/ 꽃을 그만 따라고 그러는 소리로 들려와서/ 이제 그만 따야겠구나/ 생각하고는 산을 내려’온다는 그의 시 <하산(下山)>에는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인 ‘배려’가 깃들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가장 필요한 무기가 바로 공동체를 향한 배려다. 벌을 배려하는 꽃 따는 청년처럼 우리 서로서로 배려한다면 코리아는 코로나를 이긴다. 코리아는 코로나에 지지 않는다. 코로나는 코리아를 이길 수 없다.

‘살아있다는 것은/ 칼날 위에서 춤추는 자유/ 시퍼렇게 울 줄 아는 것이 진짜 뿔이다/ 중심은 피를 토하고 쓰러질지라도/ 죽어가는 것들을 살려내는 것/ 한 줄의 문장과 직면하면 통곡하고 회개하는’ 진짜 삶을 살고 싶어 뿔처럼 뾰족해지려는 <연필>처럼 강한 의지만 있다면, 코리아는 코로나를 이긴다. 코리아는 코로나에 지지 않는다. 코로나는 코리아를 이길 수 없다. 코리아는 코로나에 결단코 지지 않으리!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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