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새로운 고유 문자 스타들 [로버트 파우저의 언어의 역사]
  • 로버트 파우저 독립학자(《외국어 전파담》 저자) (jongseop1@naver.com)
  • 승인 2020.03.15 12:00
  • 호수 1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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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언어의 막강한 힘에도 살아남은 라이베리아의 바이·응코 문자

먼저 세계 문자 지도를 머리에 떠올려보자. 가장 널리 보급된 문자는 라틴어의 로마자다. 로마자의 뒤를 잇는 건 아랍어 문자다. 러시아의 키릴 문자는 동유럽을 비롯해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몽골 등 넓은 분포를 보이고 있다. 중국어권과 일본에서 많이 쓰고 있는 한자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역시 한자 문화권에 포함된다. 인도 아대륙 문자는 사용자도 많고, 역사성이 깊은 문자도 많지만 분포는 다소 한정적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라틴어다. 15세기 말부터 유럽에서는 제국주의가 널리 퍼졌는데 라틴어 사용 지역을 보면 제국주의 범위를 유추할 수 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신들이 주로 쓰는 라틴어를 피지배국에서의 통치 언어로 사용했고, 이로 인해 라틴어는 점차 주류 언어로 대접받게 됐다.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거의 모든 나라의 공용어는 영어, 프랑스어, 또는 포르투갈어다. 

하지만 문자 지도에는 우리가 자주 들어본 문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자세히 살피다 보면 여기저기 마치 고립된 섬처럼 독특한 문자를 사용하는 언어들이 눈에 띈다. 서아프리카 국가 중 하나인 라이베리아에서 쓰고 있는 바이(Vai)와 응코(N’Ko) 문자 역시 매우 흥미롭다. 문자가 없는 토착어를 위해 개발된 문자인데, 유럽 언어의 막강한 힘에도 잘 살아남아 쓰이고 있다.

19세기 바이 문자 ⓒ대명도서관 제공
19세기 바이 문자 ⓒ대명도서관 제공

서아프리카 언어 문자 중 가장 오래된 바이어

19세기 이후 제국주의가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면서 독립을 쟁취하려는 피지배국들의 저항운동이 본격화됐다. 그 운동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 바로 문자였다. 언어의 독립 없이 민족의 독립이 있을 수 없고, 자신들의 언어를 위한 문자가 존재한다면 언어의 독립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문자 중에는 로마자를 활용한 사례가 많았다. 유럽 언어의 문자를 사용하는 것에 반감을 갖고 자체적인 문자를 개발한 곳도 꽤 나왔지만 쓰는 사람이 많지 않아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상황을 놓고 볼 때 바이 문자는 눈여겨볼 만하다. 1830년대에 만들어져 서아프리카 언어 문자 중 가장 오래된 바이어는 오늘날까지도 라이베리아의 국민 약 10만 명이 사용하고 있다. 이 문자의 개발 당시 라이베리아 연안 지역에는 미국과 카리브 제도에서 해방된 노예들이 주로 이주해 살고 있었고, 내륙 지역에는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여러 민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개발의 역사를 둘러싸고는 약간의 논란이 있다. 1849년 독일 선교사이자 아프리카 언어학자이기도 한 시기스문트 코엘레(Sigismund Koelle·1820~1902)는 바이어를 쓰는 지역에 머무르면서 자연스럽게 바이어 문자를 접하게 되었다. ‘꿈속에서 문자를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모몰루 부켈레(Momolu Bukele·18세기 말~19세기 중반)와의 만남을 통해서였다. 이 지역에서는 이미 부켈레의 노력으로 학교에서 바이어 문자를 가르치고 있었고, 문서가 작성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꿈속에서 문자를 개발했다는 부켈레의 주장 외에 바이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관한 기록은 거의 찾을 수 없다. 다만 라이베리아로 이주해 온 미국의 체로키족을 통해 체로키어 문자를 알게 된 부켈레가 바이어에 적합한 문자를 만들 자신감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덧붙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바이 문자(왼쪽), 파우저 교수가 응코 문자로 한국에 관해 쓴 글 ⓒ위키백과
바이 문자(왼쪽), 응코 문자로 쓴 한국에 관한 글 ⓒ위키백과

성격이 비슷한 어파의 여러 언어를 위한 응코어

바이어 문자는 일본어의 가나 또는 체로키어 문자처럼 각 음절을 문자 하나로 표시하는 ‘음절 문자’다. 소리가 많아 207음절을 표시하는 글자가 있는데, 그 가운데 자음으로 시작하는 음절이 많아 특히 일본어의 가나와 비슷하다. 글자의 모양은 매우 독특한데 다른 언어의 문자에서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원래 이 지역에서 사용한 여러 문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여전히 잘 쓰이고 있는 바이어 문자는 1962년 라이베리아대학교에서 표준화를 거쳤을 뿐만 아니라 2008년에는 유니코드에 포함시켜 전산 처리까지 매우 편리해졌다.

또 하나는 응코 문자다. 라이베리아의 이웃에 위치한 기니의 교육자 솔로마나 칸테(Solomana Kant·1922~1987)가 1949년에 개발해 발표했다. 아프리카 언어에 ‘고유 문자가 없기 때문에 문명 수준이 낮다’는 편견을 극복하고 싶었던 칸테는 주로 기니와 말리, 코트디부아르 등에서 쓰는 만딩어파에 속하는 여러 언어의 문자를 개발하려 했다. 그가 개발한 문자가 개별 언어를 위한 문자가 아닌, 성격이 비슷한 어파의 여러 언어를 위한 새로운 문자라는 점은 매우 독특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문자의 명칭 ‘응코’는 여러 언어로 “내가 말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신이 개발한 응코어가 만딩어에 속하는 모든 언어에 통용되는 문자가 되기를 바라는 기대를 담은 명칭이었다. 그는 이 문자를 보급하기 위해 여러 지역 사람들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표준 문어를 개발했고, 응코 문자로 몇 권의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그의 이런 노력에 힘입어 오늘날 만딩어파 전역에 응코 문자가 보급되고 있으며 상용하는 이들 역시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응코 문자는 한글과 로마자처럼 각 소리(음소)를 반영하고 있다. 이 언어권이 이슬람교 신자가 많은 지역이므로, 아랍어권과 관계가 깊은데 이러한 특징을 반영한 탓인지 응코 문자 역시 아랍어의 영향을 받은 측면이 눈에 띈다. 우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방향이 그러하고, 글자가 밑에서 연결된다는 점도 그렇다. 문자를 개발할 당시 칸테는 일반인과 수많은 인터뷰를 거쳤는데 그 가운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사람이 많았다. 모든 모음을 표시할 수 있고, 성조 역시 표시돼 있는 등 아랍어와 다른 점도 물론 있다. 27개 글자가 있는데 바이 문자와 달리 성조를 7개의 발음 구별 기호로 표시하는 점도 독특하다. 1990년대부터 전산화가 시작됐고 2006년부터 유니코드에 포함시켰다는 점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문자를 통해 이룬 문화적 독립

자국어에 맞는 고유 문자를 개발하고 싶었던 부켈레와 칸테는 넓게 보자면 세종대왕의 후배 격이다. 한글 창제 전까지만 해도 한국어에는 문자가 없었다. 한자를 통해 한국어를 쓰려고 노력하긴 했으나 한문의 막강한 영향력으로 말과 글은 하나가 될 수 없어 여러모로 불편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것도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이로써 한국의 문자는 중국으로부터 문화적 독립을 이뤘다. 바이 문자와 응코 문자 역시 그런 의미를 부여받을 만하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삼았던 국가의 언어 사용자가 자신들만의 문자를 만들어냄으로써 문화적 독립을 시도했으니 말이다. 여러 의미로 상징하는 바가 큰 문자를 통해 이룬 문화적 독립은 매우 유의미하다. 나아가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언어 사용자들에게 사랑받는 문자의 존재는 그 자체로 문화적 자부심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한국인에게 한글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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