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구호만 요란했던 “청년 정치”…2030 후보, 4% 그쳐
  • 박성의·구민주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3.20 12:00
  • 호수 1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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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 예비후보자 전수조사…‘586세대’ 대거 포진, 비례대표에서도 '청년 실종'

1954년 경남 거제. 제3대 민의원(국회의원) 선거가 끝나자 정가에 큰 소란이 일었다. 만 26세의 젊은 청년이 금배지를 달았기 때문이다. 새파란 나이에 바닷가 시골 마을에서 정치를 시작한 청년은, 훗날 대한민국 정치계의 최고 정점에 오른다. 14대 대통령에 취임했던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이야기다. YS가 세운 최연소 정치 데뷔 기록은 20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4·15 총선으로 탄생할 제21대 국회 역시 ‘제2의 YS’ 탄생은 요원해 보인다. 총선 출마를 선언한 기성 정치인들 틈바구니에서, 2030세대 청년 후보의 수가 턱없이 적어서다.

시사저널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을 활용해 제21대 총선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2469명(3월19일 기준)을 전수조사했다. 조사 결과 전체 예비후보자 중 20~30대 청년층 비율은 4%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청년 정치’와 ‘정치권 물갈이’를 외쳤던 여야 구호가 공염불에 그친 셈이다. 시사저널과 만난 한 청년당원은 “정치판에서 청년은 ‘얼굴마담’이나 험지로 보낼 미끼에 불과하다”며 “정작 선거가 시작되면 현역 의원들과 외부 영입 인재만 내세우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일러스트 정찬동
ⓒ일러스트 정찬동

4050 후보 틈바구니 속 ‘1%’도 안 되는 20대

‘청년’은 총선을 앞둔 정당이 외치는 단골 구호다. 몇천 표 차로 당락이 갈리는 격전지에서는 젊은 유권자의 표심이 당락을 가르는 변수가 될 수 있어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12월29일 영입 인재 기자회견에서 “저도 정치를 30대에 시작했는데, 해 보니 일찍 시작해 경험을 쌓아가면서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청년 후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 역시 지난해 11월19일 ‘청년 정책 비전 발표회’를 열고 “청년의 취향과 트렌드를 적극 반영하는 정책을 펼치겠다”고 선언했다.

여야 대표가 말한 청년 정치는 과연 21대 국회에서 실현될 수 있을까. 시사저널 취재 결과 현실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전 지역구에 걸쳐 ‘586(50대 나이,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 예비후보자가 대거 포진한 가운데, 후보자 중 2030 비율은 극히 미미한 수준으로 조사됐다. 3월12일 기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전체 예비후보자는 2469명이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20대 22명(0.9%) △30세 이상~40세 미만 92명(3.7%) △40세 이상~50세 미만 325명(13.2%) △50세 이상~60세 미만 1050명(42.6%) △60세 이상 980명(39.7%)이다. 2030 청년 후보자보다 60세 이상 고령 후보자가 10배 가까이 많은 셈이다.

정당별로 살펴보면 민주당의 2030 예비후보자는 총 13명으로, 전체 민주당 예비후보자 중 2.9%에 그쳤다. 20대의 민주당 예비후보자는 전무했다. 통합당은 민주당보다 많은 30명의 2030 예비후보자가 출사표를 던졌다. 다만 전체 통합당 예비후보자 중 2030 후보자의 비율 역시 4.7%에 그쳤다. 지역별로는 △서울(38명) △경기(32명) △경북(10명) △부산(7명) △강원(6명) △경남·대전(각 5명) △인천·대구·울산(각 2명) △광주·세종·충남·충북(각 1명) 순으로 청년 후보자가 나왔다. 제주와 전북, 전남 지역은 2030 예비후보자가 없었다.

‘새내기’를 받지 못한 탓일까. 국회는 점차 나이 들어가고 있다. 20대 국회는 초대 국회 때 47.1세를 기록한 이래 가장 평균연령이 높은 국회였다. 평균 나이 55.5세로 19대 총선(53.9세)보다 1.6세 많았다. 19대에서 9명이었던 30대 이하 당선인은 20대 들어 3명에 그치는 등 40대 이하 당선인이 89명에서 53명으로 급감했다. 반면 60대 이상은 69명에서 86명으로 늘어났다. 21대 총선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후보자들의 평균연령을 감안하면 20대 국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기는 게 우선” 국회도 신입보단 경력직 선호

국회에 젊은 피가 수혈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대 시절부터 10년 넘게 보수 정당에 몸담아온 통합당의 한 중진 의원실 관계자는 총선을 구직 시장에 빗대 설명했다. 그는 “채용 권한을 갖고 있는 건 정당이 아닌 국민이다. 정당은 헤드헌터로 국민의 요구에 맞는 인물을 찾는 역할을 한다”며 “그런데 국민은 보통 더 많은 스토리와 경력, 인지도를 쌓은 인물에 표심이 기운다. 정당 입장에서는 신입(청년)보다는 경력직(전·현직 의원)이나 전문직(전문가 경력의 영입 인재)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젊은 인재가 정치판에 필요하다는 것에는 공감한다. 다만 정치를 하고자 하는 청년의 풀(pool)이 생각보다 협소한 것도 고려해야 한다”며 “(정치를) 하려는 청년이 일단 많아야 그 안에서 경쟁도 하고 선발도 할 수 있는데, 현 상황에서 주전은커녕 벤치에 앉힐 수 있는 젊은 후보선수들 찾기도 어렵다”고 전했다.

쉽게 말해 수요도 적고 공급도 적은 게 ‘청년 정치 시장’이라는 게 기성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그러나 예비 청년 정치인들의 입장은 다르다. 지금의 선거 시스템은 면접은커녕 ‘서류 지원’부터 쉽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유는 막대한 선거비용 탓이다. 취재 중 만난 청년 후보자들은 기성세대가 ‘정치하라’고만 외칠 뿐, 정치를 하기 위한 ‘지원’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바른미래당 소속 예비후보로 나섰던 조홍식씨(35)는 “물질적 배경이 취약한 청년 후보들에게는 금전적인 문제가 큰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다”며 “출마를 위해 결혼까지 미뤄가며 자금을 모았지만 선거비용에 대한 부담은 감당키 어려운 짐과 같았다”고 전했다. 조씨는 당시 비용을 아끼기 위해 수레를 유세차로 등록하고, 선거운동원들과 함께 동네의 쓰레기를 주워가며 선거운동을 했다. 그래도 돈이 모자라 결국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는 등 빚을 지고 나서야 선거를 완주할 수 있었다. 조씨가 당에서 지원받은 돈은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하는 등록비의 일부인 100만원이 전부였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19년 11월19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청년 정책 비전 발표회’에 참석해 청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19년 11월19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청년 정책 비전 발표회’에 참석해 청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진짜’ 청년 정치 실현 10년은 걸릴 것”

이번 총선에서 한 군소 정당 예비후보로 나선 한 20대 출마자 역시 “가장 큰 문제는 돈”이라고 짚었다. 그는 “총선 후보는 후원금 모집이 가능해 기댈 곳이 있다지만, 실제 20대 출마자들의 지인들 또한 대부분이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한 청년들이라 (후원금을) 부탁하기가 쉽지 않다”며 “결국 학자금 대출에 이어 ‘정치자금 대출’까지 받아서 출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수저’가 아닌 이상 선거판에 계속 도전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청년들의 한탄이 계속되자 정치권도 답을 내놨다. 여당인 민주당은 3월8일 4·15 총선 청년 부문 공약을 발표하고 청년 후보의 국회의원 선거비용 보전 기준을 낮추자고 제안했다. 현행법상 후보자가 당선되거나 유효 투표수의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비용 제한액의 범위 내에서 쓴 선거비용을 전액 돌려받을 수 있고, 10% 이상 15% 미만일 땐 절반만 돌려받는다. 그러나 청년이 유효 득표를 얻기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청년에게는 전액 보전 기준을 8% 이상으로 낮추고, 반액 보전 기준도 5~8%로 낮추자는 게 민주당이 내놓은 대안이다.

전문가들은 물질적인 지원책을 강화하는 것에 더해 정당 내 ‘청년 정치인 육성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진단한다. 총선을 앞두고 ‘벼락치기’로 청년 후보를 영입하는 상황을 근절하려면, 청년들을 예비 정치인으로 육성하고 배양할 수 있는 정당의 ‘유스(youth) 시스템’부터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알앤써치 소장은 “외국의 청년 정치인들은 어릴 때부터 당이 육성해, 오랜 기간에 걸쳐 사회문제를 다뤄본 ‘액션가’들로 성장한다. 그런데 우리는 인지도가 있거나 특이한 이력만 있으면 바로 영입해 그들의 이미지를 (정당이) 소비해 버린다”며 “우리가 ‘진짜’ 청년 정치인들을 제대로 키우고 뽑으려면 한 10년 정도의 시간은 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표성을 갖고 청년 활동을 진득하게 한 청년을 발굴해야 한다”며 “청년을 중앙정치로 곧장 올라오게 하지 말고 지역에서 구의원·시의원을 밟으며 경력을 충분히 쌓게 한 뒤 총선에 내보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비례대표에서도 실종된 청년들

한편, 민주당과 통합당의 비례용 위성정당들도 최근 들어 총선 비례대표 명단과 순번을 속속 내놓고 있다. 비례용 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나 미래한국당 모두 공천 논란을 겪고 있어 3월20일 현재까지도 아직 확정됐다고 보긴 어렵지만, 민주당과 미래한국당이 현재까지 발표한 비례대표 명단에서도 당선 안정권에 포함된 순번 중 2030 청년 후보는 찾아보기 힘들다. 당선 안정권은 대략 민주당 7번, 미래한국당 20번 내일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시민당의 후순위로 옮겨가게 될 민주당의 비례대표 후보들 가운데 2030 후보는 7명(남성 2, 여성 5)이었지만, 그나마 당선 안정권에 든 인물은 비례대표 6번 전용기 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장(28) 단 한 명이었다. 민주당은 청년들을 많이 뽑겠다며 총선기획단 4분의 1을 청년으로 채우기도 했지만 사실상 아무 효과도 없었다. 미래한국당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후보 순번으로 한 차례 갈등을 겪은 후 당선 안정권인 비례대표 20번까지 2030은 5번 김정현 변호사(31), 11번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39)씨 등 2명만 남았다. 비례대표 후보들의 평균연령은 민주당 45.7세, 한국당 51.1세였다.

양당에 앞서 3월8일 비례대표 29명의 명단을 공개한 정의당은 2030 후보인 류호정 정의당 IT산업노동특별위원장(27)과 장혜영 영화감독(32)을 사실상 당선이 확실한 비례대표 1번과 2번에 깜짝 배치했다. 그러나 이들을 제외하면 당선 안정권으로 분류되는 10번까지는 다시 4050 이상 세대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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