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시설에서 힙한 문화단지 꽃피운 인천 ‘코스모40’[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3.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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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건물 재생해 만든 ‘코스모40’
장기적 관광객 유치 위한 콘텐츠는 부족

인천 서구 가좌동에 있었던 한 화학공장 건물이 복합문화시설로 변신했다. ‘코스모40’이란 곳이다. 코스모 화학의 40번째 공장 건물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게 재생 건물의 이름을 붙인 것은 코스모40이 처음은 아니다. ‘문화역 서울284’는 옛 서울역의 사적번호를 뜻하고, '부천아트벙커 B39’는 쓰레기 소각장의 재가 모이던 벙커의 깊이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런 네이밍 전략은 언뜻 힙(hip)한 이미지를 주면서 자연스레 이름의 유래를 궁금하게 해, 공간의 과거를 기억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코스모40이 있는 가좌동 일대는 ‘코스모 화학단지’라고 불렸던 대규모 공장지대다. 2016년 코스모 화학이 울산으로 이전하면서 텅 비어 버렸던 부지는 어느새 다른 공장들로 차곡차곡 채워졌다. 그런 와중에 가좌동에서 13대째 살고 있는 지역의 터줏대감과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브랜딩 전문가가 의지를 모아, 코스모 화학의 공장 한 동을 사들였다. 혐오스러운 산업시설이 지역 재생의 좋은 역사자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인천 가좌동 옛 코스모화학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한 복합문화시설 ‘코스모40’ ⓒ김지나
인천 가좌동 옛 코스모화학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한 복합문화시설 ‘코스모40’ ⓒ김지나

특색은 있지만 재방문은 글쎄

옛 공장의 일부라도 남겨 독특한 상업ㆍ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것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대단하다. 물론 지역 고유의 특징을 잘 포착해 경쟁력 있는 차별지점으로 발전시킨 젊은 두 사업가의 노력과 감각은 찬사 받을 만했다. 하지만 삭막한 공장지대에 문화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하기에는 아직 조금 일러보였다. 여전히 가좌동은 공장지대였다. 예전에는 코스모 화학이었던 곳이 다른 공장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런 인상은 부천아트벙커 B39를 방문했을 때도 느낀 한계점이다. 분명 두 장소 모두 특색 있는 스토리를 가진 매력적인 공간이지만,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주변의 다른 자원들이 부족했다. 여기를 또 방문하게 될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회의적인 답이 나오는 이유였다. 그렇다고 하나의 온전한 목적지가 되기에는 규모나 콘텐츠가 아쉬웠다.

옛 산업시설을 문화공간으로 재활용하는 사례는 이미 흔하다. 그것만으로 장기적인 유인을 기대하기에는 희소성도, 새로움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문화비축기지, 통영의 신아조선소 같은 곳들이 지역의 랜드마크로 부상할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은 거대한 면적 때문이기도 하다. 코스모 화학단지의 전체 면적은 7만 6천 제곱미터였다. 14만 제곱미터가 넘는 문화 비축기지나 신아조선소 부지와 비교해서는 작지만, 그래도 여전히 대단지를 자랑하는 규모다. 필지 쪼개기로 팔려 나가기 전에 전체를 활용하는 문화기획이 있었다면 좀 더 영향력 있는 거점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코스모 화학단지가 여전히 공업지역으로서 가치가 남아 있었다고 반증할 수도 있고, 문화시설로의 전환만이 이 지역에 맞는 솔루션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천서구는 ‘스마트 에코시티’를 목표로 하고 있다. 공장지대 한 가운데 시민들이 자연과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틈을 만들어 낸 코스모40 일대는 현재의 아쉬움을 극복하기 위한 공공의 적극적인 투자가 지금이라도 이뤄져야 할 당위성이 충분하다.

코스모40 인근에 조성된 ‘그래피티거리’. 주차된 차량들로 감상하기가 어렵다.ⓒ김지나
코스모40 인근에 조성된 ‘그래피티 거리’. 주차된 차량들로 감상하기가 어렵다.ⓒ김지나

공간 시너지 만들어 낼 공공의 역할 필요

‘스마트 에코시티’는 친환경을 비전으로 하는 인천 서구의 도시 관리 비전으로, 최근에 발표한 건축가이드라인에는 녹화, 도시재생, 파빌리온, 포켓정원, 커넥터 등의 키워드가 포함돼 있다. 자연친화적인 앵커들의 조성과 연결,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낙후된 지역들이 활력을 되찾도록 하겠다는 그림으로 읽혀진다.

앵커 간 연결의 기본은 보행 편의성이다. 걷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일은 민간이 할 수 없다. 한편 사람을 불러 모으는 앵커가 될 만한 공간들의 기획과 실행은 민간에 맡겼을 때 훨씬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코스모40을 만든 이들은 계속해서 주변의 다른 자원들을 개발하는 데에도 힘쓰는 중이다. 걸어서 3분 거리에는 공장단지와 주거단지를 분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완충녹지’도 있다. 앵커가 될 만한 자원들은 차고 넘치는 셈이다.

이제 이 공간들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이룰 수 있도록 정비하고 연결하는 것이 공공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인천 서구청은 코스모40를 기점으로 디자인 거리를 기획했지만, 일시적인 이벤트에 그친 모양이었다. ‘그래피티 거리’와 ‘가좌 문화 역사의 길’은 주차된 차량들로 감상조차 힘들었다.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고 공공미술품을 설치한다고 걷고 싶은 거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민간에서 쏘아올린 좋은 구슬들을 잘 꿰어 지역의 보배로 남기는 과감한 공공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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