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기의 책보기] 인생은 운삼복칠, 아픔 없이 열리는 열매는 없다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thebex@hanmail.net)
  • 승인 2020.03.1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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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은 내맘대로》ㅣ김선아 지음ㅣ모아북스ㅣ160쪽ㅣ1만3000원

필자가 사회 초년병이었을 때 다녔던 직장에서 회식 때면 ‘인생론’에 대한 담화가 종종 술안주가 되곤 했다. 말인즉슨 ‘성공은 기칠운삼(技七運三)이냐, 기삼운칠(技三運七)이냐’ 하는 것이었다. ‘기칠운삼’이란 성공을 좌우하는 요소는 개인의 자질과 노력이 70%, 운이 30%라는 뜻이다. 갑론을박의 결론은 언제나 운칠복삼(運七福三)로 종결됐다. 이후 30년을 더 살면서 깨달은 것은 우리들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인생은 대부분 ‘운삼복칠(運三福七)’에 달렸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특히 서민경제가 직격탄을 맞아 골목상권의 식당, 주점, 헬스클럽, 학원, 비정규직(알바), 수당제 대인 서비스 기사, 강사 등 자영업과 프리랜서들이 극심한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다. 오프라인 소비가 극도로 위축되는 반면 온라인 거래와 이를 뒷받침하는 택배 물량은 대폭 늘고, 마스크와 소독제, 방호복 등 바이러스 방역상품은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운삼복칠의 예로 적합하지는 않지만 바이러스가 누군가에게는 예기치 못했던 기회가 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궁금한 것은 오프라인 소비 둔화, 잠시 멈춤, 사회적 거리 두기, 자가격리 등으로 생활패턴이 급변하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 모처럼 밀렸던 책 읽기에 딱 좋은 환경인데 출판계 매출은 좀 늘어나는가 모르겠다. 들리는 업계 소문에 따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하긴 코로나 이전에도 시간이 모자라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특별한 기대는 접는 편이 건강에 이로울 것이다. 그 와중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운도 복도 없는 책이 눈에 밟힌다.

김선아 작가가 그렇다. 문예창작을 전공했으나 아이 둘 키우는 엄마로 살았던 그녀는 ‘이제부터 내 인생을 살겠다’는 생각으로 5년 전 자기 세대 엄마들의 고충을 날 것 그대로 토로하는 《돌직구 아줌마의 공감수다-따져봅시다》를 펴냈다. 그리고 최근 ‘수다’를 더욱 발전시켜 쓴 연극대본을 에세이 형식으로 출판한 책이 《한번쯤은 내맘대로》다. 소녀부터 할머니까지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야 하기에 겪어야 하는 모진 운명의 주인공 5명이 한 병실에서 만나 서로의 아픈 상처를 털어놓고, 싸우고, 들어주는 과정을 통해 치유에 이르는 해피엔딩이다.

아마도 출판사와 작가는 2월 중순 대학로에서 개막될 예정이었던 동명의 연극과 시너지를 냄으로써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올리겠다는 희망찬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출판을 서둘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즈음 대학로 연극마당은 이미 코로나19로 인해 폐쇄시점에 진입해 있었다. 대한민국을 사는 여자라면 누구나 가슴 한 켠에 담고 있을 아픔들, 대한민국 남자라면 같이 사는 여자들이 무엇으로 아파하는지 공감하고 이해하기 좋은 《한번쯤은 내맘대로》는 이렇게, 현재까지는 운도 복도 없는 책으로 서점가를 배회 중이다.

이병헌이 주연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지난달 초 개봉됐을 때도 영화가 흥행하면 같이 뜰 것으로 기대됐던 김충식 작가의 원서 《남산의 부장들》과 국가정보기관의 유사한 비사를 다룬 김당의 《공작》 《시크릿파일 국정원》《시크릿파일 반역의 국정원》 같은 책들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영화가 조기종영 되면서 출판사와 저자들의 실망이 매우 컸을 책으로 추측된다. 《한번쯤은 내맘대로》를 비롯해 이 책들에게 언젠가 운삼복칠이 함께 하길 바란다.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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