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극복 위해 사투 벌이는 재계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3.23 16:00
  • 호수 1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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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하고 협력사 지원하는 등 가용수단 총동원 “모두 힘 모아야”

“지금은 메르스, 사스와는 비교가 안 되는 비상 경제시국이다.”(3월13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하다.”(3월17일) 

문재인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 타격을 두고 한 말이다. 보건·의료 현장 못지않게 경제 현장도 전쟁터다. 전염병이 몰고 온 사상 초유의 위기 앞에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도 휘청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직접 나서 경제 대책을 챙기는 한편 “정부 힘만으론 부족하다. 우리 경제의 핵심 주체들이 연대와 협력의 힘으로 위기 극복의 주역이 돼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일상적인 사회·소비 활동이 마비된 소비자, 패닉 상태인 중소기업·소상공인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결국 대기업들이 코앞의 경영위기 극복과 함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일에도 발벗고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기업들 입장에서도 물불 가릴 수 없게 됐다. 고객, 임직원, 협력사 등이 쓰러지면 대기업도 치명타를 입기 때문이다. 

ⓒ일러스트 김세중
ⓒ일러스트 김세중

삼성, 2조6000억원 긴급 수혈 

재계 1위 삼성전자는 3월18일 올해 정기 주주총회를 진행했다. 지난해 액면분할 이후 첫 주총에서 소액주주가 몰려 혼란을 빚은 것과 달리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참석 주주가 확 줄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사업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여전했다. 김기남 대표는 코로나19 확산 우려에 관해 “생산·판매 차질과 협력사 영향 등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가 최소화되도록 체계적이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동시에 임직원과 그 가족, 협력사와 지역사회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감염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은 국내 최대 기업답게 2조6000억원에 달하는 긴급 자금을 즉시 조달했다. 우선 협력사 운영자금 지원을 위해 1조원 규모 펀드를 조성했다. 협력사에 대한 물품 대금 1조6000억원도 조기에 지급해 숨통을 틔웠다. 자택에서 격리 중이거나 재택근무를 하는 계열사 및 협력사 임직원들에게는 격려 물품을 보냈다. 

아울러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삼성 주요 계열사들은 지난 2월26일 임시이사회 및 경영위원회를 열어 코로나19 관련 기부금 300억원 지급을 의결했다. 삼성은 회사 바깥으로도 같은 규모의 기부금을 전달했다. 내수 경기 진작 차원에서 300억원 규모 온누리상품권을 구입해 협력사에 지급했다. 졸업식, 입학식 등 각종 행사가 취소·연기되면서 타격을 입은 화훼농가를 위해 꽃 소비 늘리기에도 참여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임직원들에게 “국민 성원으로 성장한 삼성은 지금 같은 시기에 마땅히 우리 사회와 같이 나누고 함께해야 한다”면서 “이번 일로 고통받거나 위기 극복에 헌신하는 사람들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자”고 강조했다. 

기숙사·연수원을 치료센터로 제공한 LG 

LG는 3월4일 383실 규모 구미 LG디스플레이 기숙사와 167실 규모 울진 LG생활연수원을 코로나19 경증 환자 생활치료센터로 선뜻 내놔 화제를 모았다. 코로나19 사태 확산으로 대구·경북 지역 병상 부족 사태가 심각해진 상황에서 나온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SNS,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LG를 칭찬하는 게시글들이 줄을 이었다. 

구미 2공단에 위치한 LG디스플레이 기숙사는 연면적 2만5000㎡로 원룸 형태 267실, 아파트 형태 116실을 보유해 최대 499명을 수용할 수 있다. 울진의 임직원 휴양시설 LG생활연수원은 연면적 2만2000㎡에 독립 객실 167개를 갖췄다. LG 측은 “지역사회의 어려움을 나누기 위해 현장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치료시설을 지원한다”며 “대구·경북 병상 부족이 해결돼 확진자들이 신속하고 효율적인 진료를 받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LG는 코로나19 확산 방지 및 피해 지원을 위해 따로 50억원을 기부했다. 협력사와 소상공인 지원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LG전자는 협력사 대상 무이자 대출 규모를 기존 400억원에서 550억원으로 확대했다. LG유플러스도 850억원 규모 협력사 지원책을 마련했다. LG생활건강은 500여 개 가맹점의 월세 50%를 부담키로 결정했다. 

왼쪽부터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최태원 SK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 회장, 이재현 CJ 회장 등이 2월13일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왼쪽부터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최태원 SK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 회장, 이재현 CJ 회장 등이 2월13일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위기에 더해진 위기…“중대 국면” 

포스코도 LG와 같은 50억원을 코로나19 성금으로 기탁했다. 포스코 본사(포항)와 주요 사업장들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경북 지역에 있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코로나19 피해 복구 지원에 힘쓰고 있는 의료진과 위기 극복을 위해 애쓰고 있는 지역주민들에게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임직원들이 성금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또 포스코는 포항과 광양 지역의 복지·상업시설 내 임대매장 총 135곳에 대한 임대료를 인하하기로 했다. 

CJ가 주력으로 삼는 문화·유통산업은 코로나19 국면에서 특히 피해 체감도가 높다. 지난해 말부터 비상경영을 해 왔던 CJ는 최근 코로나19까지 맞아 더욱 고삐를 죄는 모습이다. CJ는 성금 10억원을 기부하고 계열사별 사회공헌도 속속 실행에 옮기고 있다. 

해외 실적 부진에 시달리던 화장품업계 1위 아모레퍼시픽에도 비상이 걸렸다. 아모레퍼시픽은 영업에 어려움을 겪는 가맹점 등 협력사에 80억원을 직접 지원하고, 2000억원 규모 결제 대금도 조기 지급하거나 선결제한다고 밝혔다. 5억원 상당의 현금과 현물도 기부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코로나19는 전 세계 모두가 힘을 모아 극복해야 하는 중대 국면을 맞았다”면서 “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그룹 구성원을 비롯해 여러 피해자와 가족,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의료진을 돕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사업 특성을 활용해 코로나19 지원에 나선 기업도 있다. 파리바게뜨·던킨도너츠 등 브랜드를 운영하는 SPC는 빵과 생수 60만 개를 기부한다고 2월27일 밝혔다. 이에 따라 SPC그룹 계열 브랜드 빵이 3월 한 달간 매일 1만 개씩 대구·경북 지역에 전해지게 됐다. SPC의 해외 파트너사인 미국 던킨 브랜즈도 생수 30만 개를 기탁했다. 특히 SPC는 자체 물류망을 통해 청도 대남병원,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 대구 감염병관리지원단, 보건소 등 지원이 필요한 곳에 구호물품을 직접 전달하고 있다. 

이 밖에 대한항공은 전 세계에서 가장 피해가 큰 중국 우한 지역에 마스크 4만 개를, 생활가전 제조업체인 아이리스코리아는 대구에 마스크 3만 개를 기부했다. 아이리스코리아 측은 “긴급 지원이 가능한 마스크 3만 개를 우선 전달하지만, 공장의 생산 상황을 봐가며 추가 기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재택근무 연장한 재계 “유일한 해결책은 ‘코로나 종식’”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언제까지 지속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경제계에서 힘을 보태고 있지만, 이런 움직임마저 바람 앞 촛불 신세다. 당장 기업들의 경영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다. 

기업들은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2월부터 일부 임직원의 자가격리, 공장·사업장 폐쇄 등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삼성의 경우 18개 계열사와 자회사 및 협력사 임직원 가운데 자가격리 중인 사람만 25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확산 우려가 잦아들기는커녕 더 커지면서 대기업 상당수는 재택근무 기간을 계속 연장하고 있다. SK는 그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와 지주사 ㈜SK가 이미 재택근무 기간을 3월말까지로 늘렸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 등 주요 계열사들도 각급 학교의 개학 연기에 맞춰 3월22일까지 재택근무를 연장했다. 

현대·기아차는 2월말 시작한 재택근무를 3월20일까지 재연장했다. 당초 2월26일부터 3월6일까지 본사와 남양연구소 등 서울·경기 지역 일부 근무자를 대상으로 업무 수행에 차질이 없는 범위에서 자율적 재택근무를 했다. 이를 1차례 연장한 데 이어 이번에 다시 1주일 늘렸다. 두산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확대한 유연근무제를 당분간 지속하기로 했다. 코오롱은 필수 근무자를 제외한 재택근무를 1주 더 연장해 3월22일까지 실시한다. 

급한 불부터 끄는 사이 대기업들의 시가총액은 순식간에 증발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3월18일 종가 기준으로 시가총액이 1조원 이상인 상장사는 139곳으로 지난해 말보다 50곳이 줄었다. 코로나19 충격 탓이다. 삼성전자 시총은 60조9000억원, SK하이닉스는 15조3000억원 감소했다. 현대차(10조400억원 감소), 기아차(7조7000억원 감소), 현대모비스(11조원 감소) 등의 시총도 일제히 깎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2조2000억원), 네이버(-6조8000억원), 셀트리온(-3조1000억원), LG화학(-2조6000억원), LG생활건강(-2조원), 삼성물산(-4조8000억원) 등 시총 상위 10위권 상장사 모두 시총 규모가 줄어들었다. 

이 같은 경영위기는 ‘원흉’인 코로나19 사태가 끝나야만 해결될 수 있을 전망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에서 (2008년) 금융위기 당시와 버금가는 각종 정책이 쏟아지는데도 현금화 수요만 강해지는 가장 큰 요인은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촉발될 경기침체의 폭을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선진국의 코로나19 확산 추세가 진정되지 않으면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심각한 경기침체, 심각한 디플레이션 리스크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낼 수 있는 금융시장 안정책과 경기 부양책이 실시되고 있고 추가로 더욱 강력한 정책이 나올 수 있다”면서 “이런 정책의 약효가 나타나려면 코로나19가 진정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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