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600억 달러 통화스와프 체결…세계금융위기 이후 2번째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0.03.2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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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외환시장 안정 기여”…20일 오전 원-달러 환율 급락

한국이 미국과 6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했다. 외환시장에서 달러 유동성 부족 현상이 빚어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자 한·미 양국 간 협상이 급물살을 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외환시장의 원-달러 환율 급등세를 꺾고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가운데, 20일 오전 원-달러 환율은 급락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19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6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기간은 최소 6개월로 오는 9월19일까지다.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하면, 양국은 필요할 때 자국 통화를 상대방 중앙은행에 맡기고 그에 상응하는 외화를 빌려올 수 있다. 달러 확보가 수월해진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불확실성으로 달러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시장 심리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한·미 간 통화스와프 계약은 2008년 10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체결됐던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에 이어 두 번째다.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 유동성 위기 우려가 고조된 상황에서 전격 체결됐다. 당시 한·미 간 통화 스와프 계약으로 달러 유동성에 대한 불안심리가 완화되고, 급등세를 보였던 원-달러 환율도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원-달러 환율은 2008년 8월 말 1089원에서 계약 체결 당시 1468원까지 상승했는데 계약 종료 시점에는 1170원까지 하락했다.

한국은 4000억 달러가 넘는 외환을 보유하고 있지만 최근 원화 약세가 두드러지면서 미국과 통화스와프 체결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국제금융시장에 한국이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사태 악화에 대비한 비상 계획으로 통화스와프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왔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월17일 국회에서 “한·미 통화스와프는 든든한 안전망이 될 것”이라며 “정부가 내막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3월1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40.0원 오른 1285.7원에 마감했. 20일 오전 코스피는 상승세로 출발했고, 원-달러 환율은 급락하고 있다. ⓒ연합뉴스
3월1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40.0원 오른 1285.7원에 마감했. 20일 오전 코스피는 상승세로 출발했고, 원-달러 환율은 급락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준, 한국 등 9개 국에 대한 통화스와프 체결

한은은 체결 기간은 최소 6개월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금융시장 상황에 따라 연장될 가능성도 있다. 2008년 통화스와프도 당초 2009년 4월30일까지 6개월간 한시적으로 적용될 예정이었지만 2009년 2월4일 6개월 연장한 데 이어 6월26일에는 3개월 더 연장하면서 2010년 2월1일 종료됐다.

연준은 한국 외에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호주, 뉴질랜드, 브라질, 멕시코 중앙은행 및 싱가포르 통화청과도 동시에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AP 통신에 따르면, 연준은 이날 한국 등 9개 국에 대한 통화 스와프 신규 체결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달러 조달 시장에서 (달러 확보 어려움 같은) 압박을 완화해주기 위한 것이 목표”라며 “이를 통해 각국이 가계와 기업에 국내와 국외 양쪽에서 달러 조달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각국에서 ‘글로벌 현금 확보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연준이 전격적으로 통화 스와프 체결 확대에 나섰다"고 전했다.

한은은 통화스와프로 조달한 미 달러화를 곧바로 공급할 계획이다. 한은은 통화스와프가 원-달러 환율 급등세를 가라앉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9일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소식이 전해진 직후인 오후 10시40분, 미국 뉴욕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257원으로 이날 한국 외환시장 종가 1285.7원보다 28.7원 하락했다. 한은은 “통화스와프를 통해 조달한 미 달러화를 곧바로 공급할 계획이며 이는 최근 달러화 수급 불균형으로 환율 급상승을 보이고 있는 국내 외환시장 안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주요국 중앙은행들과의 공조를 통해 금융시장 안정화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계적 강(强) 달러 흐름은 이어져

통화스와프의 배경이 된 것 중 하나는 ‘달러 사재기’다. 불안 심리가 커지면서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금과 국채까지 팔아치우며 달러 확보에 나섰다. 최근 들어 위험자산인 주식이나 원유뿐만 아니라,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미 국채나 금(金) 시장까지 매도세가 번진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됐다. 3월 초부터 국내 주식을 순매도한 외국인 투자자들은 원화를 달러로 바꾸려고 외환시장에 몰려들었다. 국내 은행 등 기업도 달러를 구하기 위해 몰려들면서 3월19일 원-달러 환율은 치솟았다. 개장과 함께 급등하면서 장중 1291원선을 넘기기도 했다.

통화스와프를 한국 등 9개국 중앙은행으로 전격 확대했지만, 달러화 가치는 오름세다. 세계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2.7로 1.7% 올랐다. 지난 8거래일 동안은 8%가 넘게 치솟았다. 유로 대비 2.2%, 엔 대비 2.4% 상승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달러화는 1992년 이후 거의 30년 만에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CNBC는 “전 세계가 달러에 달려들어 달러 강세가 극심해지고 있다”며 “공포 심리에 화장지를 사재기 하듯이, 일부 기관은 지금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달러를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원-달러 환율 폭등세 진정되는 모양새

통화 스와프 체결에 원-달러 환율 폭등세는 진정되는 모양새다. 20일 오전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고 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오전 9시23분 기준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22.6원 급락한 달러당 1263.1원을 기록했다. 환율은 32원 내린 1253.7원에서 출발해 20원대의 하락 폭을 유지하고 있다.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로 글로벌 금융·외환시장의 불안 심리가 일부 안정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전날 미국 뉴욕증시에서 주요 지수는 미 연준의 한국 등 9개국과 통화스와프 체결 합의, 중앙은행의 부양책에 대한 기대 등에 그간의 폭락세를 멈추고 일제히 반등했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통화스와프 체결로 최근 환율 급등세를 반납할 것"이라며 "다만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강달러 흐름이 이어지는 데다 시장 불안이 남아있는 점은 환율에 하방 경직성을 제공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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