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격전지] 순천·광양·곡성·구례갑 - 중앙정치가 건드린 ‘순천의 역린’
  • 호남취재본부 정성환·박칠석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0.03.2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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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치는 순천 선거판…소병철·노관규·김선동 3파전
전략공천 반발 노관규 탈당·무소속 출마…‘태풍의 눈’
따논 당상서 격전지 ‘부상’…‘민주 vs 반민주’ 대결구도

4·15 총선 전남 동부권의 최대 승부처인 순천시 선거판이 요동치고 있다. 중앙정치에 의한 선거구 변칙 쪼개기와 전략공천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지면서다. 최근 여야 3당의 순천 선거구 쪼개기에 이어 더불어민주당은 소병철 전 법무연수원장을 전략 공천했다. 이에 반발한 서갑원 전 의원은 18일 불출마 선언과 함께 순천을 떠났고, 노관규 예비후보는 다음날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에 당초 정치 지형상 민주당의 압도적 우위가 점쳐졌던 순천·광양·곡성·구례 갑(이하 순천갑) 선거 판세는 안갯속으로 빠져 들었다. 

 

‘전대미문(前代未聞)’ 선거구 변칙 쪼개기·전략공천…민주당 심판론 확산

순천이 전대미문의 선거구 변칙 쪼개기와 전략공천에 휘말리면서 민주당에 대한 지역 여론도 흔들리는 분위기다. 선거구 획정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지역 곳곳에 도배되다시피 하고 순천시청 앞에서는 연일 반대 기자회견이 열리는 등 시민들의 분노 게이지가 급상승하는 모양새다. 이처럼 반민주 정서가 점점 늘어나면서 선거 판세 또한 점차 민주 대 반(反)민주 대결 구도로 형성되고 있다. 순천시 인구 1/3가량을 차지하는 해룡면이 인근 광양·곡성·구례 선거구로 합쳐진데 따른 반발로 불붙은 지역민심이 민주당 심판으로까지 확산하는 양상을 띠면서다. 

순천 시내에 걸린 중앙정치권의 선거구 변칙 쪼개기와 전략공천을 비판하는 현수막 ⓒ시사저널 정성환
전남 순천시 공원 주변에 걸린 중앙정치권의 선거구 변칙 쪼개기와 전략공천을 비판하는 현수막 ⓒ시사저널 정성환

순천시는 2월 기준 인구가 28만1347명으로 선거구 상한선(27만명)을 넘겨 2개로 분구됐으나 여야 3당 원내대표가 선거구획정안 재의를 요구해 원점으로 돌아갔다. 개정된 선거구는 인구 5만5000명의 해룡면이 광양으로 통합돼 해룡면 유권자들은 순천이 아닌 광양·곡성·구례 선거구에 출마한 후보를 뽑게 됐다. 순천은 2016년 20대 총선에서 순천·곡성 선거구에서 곡성이 떨어져 나갔으나 이번처럼 특정지역만을 쪼개 다른 지역에 붙인 사례는 없었다. 선거구 분구가 물거품 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민주당이 소병철 전 법무연수원장의 전략공천 카드를 내밀자 지역 정치권은 다시 강하게 반발했다. 심지어 정치적 ‘맞수’로 이번 선거에도 예비후보로 맞붙은 노관규·서갑원 예비후보는 불출마와 출마 기자회견을 통해 한목소리로 “거대 기득권 세력 민주당 이해찬 무리와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순천은 2011년 4월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이후 10년간 민주당 후보를 배출하지 못한 곳이다. 이 같은 전후 사정으로 지역민심 저변에는 중앙정치의 일방적 독주를 거부하는 정서가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은 꼴인 민주당 전략공천이 얼마나 표심을 파고들지 의문이다. 전남에 전략공천은 김대중 전 총재 이후 단 한 번도 없었다. 일각에선 중앙당의 일방통행식 전략공천이 배신감과 허탈감을 키워 ‘순천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나아가 민주당은 노관규, 서갑원 측과 ‘원팀’이 좌절되면서 울타리를 뛰쳐나간 이들과도 크고 힘든 싸움을 벌여야 할 처지에 놓였다. 

사진 왼쪽부터 민주당 소병철, 민중당 김선동, 무소속 노관규 예비후보 (정당 다수 의석 순) ⓒ중앙선관위
사진 왼쪽부터 민주당 소병철, 민중당 김선동, 무소속 노관규 예비후보 (정당 다수 의석 순) ⓒ중앙선관위

민주 소병철, 떠난 서갑원·노관규와 힘든 싸움할 판
 
민주당 공천장을 받은 소병철(63) 예비후보는 순천갑지역위원회의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선거채비를 갖추고 있다. 일단 전략공천에 따른 후유증을 잠재우기 위해 애쓰는 모양새다. 그는 17일 출마기자회견에 시도의원들을 배석시키며 ‘원팀’을 강조했다. 동시에 국회선거구 획정과 지역활동 부재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당 안팎의 여론을 끌어안으려는 제스처로 해석된다. 소 후보측은 이번 선거전을 2011년 이후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 부재를 ‘잃어버린 19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노 후보의 무소속 출마 변수를 애써 축소하면서 민주당 대 배반자 심판으로 선거 프레임을 끌어간다는 전략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일부 원로그룹 등의 동요가 있더라도 대규모 동반 탈당 사태 등은 없을 것”이라며 “오히려 민주당을 탈당한 노 전 시장이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판세를 분석했다. 

이에 맞선 ‘검사 출신’ 노관규(59) 전 순천시장은 이 선거구에서 태풍의 눈이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민선 4·5기 시장을 지내며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유치에 성공한 주역이다. 노 예비후보는 이번 총선을 위해 민주당의 김영득, 서갑원, 장만채 예비후보와 당내 경선을 준비해왔으나 순천의 해룡면이 광양·구례·곡성으로 붙는 선거구 획정과 민주당의 전략공천 결정으로 경선 기회를 잃었다. 이에 반발해 19일 민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상당한 지지 세력을 확보한 그의 무소속 출마는 순천 총선판에 큰 변수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친정 민주당을 향해 싸움을 건 것에 대한 비판 여론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 총선이 중앙정치 진입에 마지막 기회로 보는 그로서는 승부를 걸어볼 수밖에 없다. 노 후보의 무소속 출마와 함께 그를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민주당 당원 역시 대거 탈당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무소속 출마 ‘승부수’ 던진 노관규…복잡 미묘해진 민주당

이에 따라 민주당 사정은 복잡 미묘해졌다. 민주당 내 서갑원 계보로 분류되는 시·도의원들은 물리적으로 소병철 캠프로 합류는 한듯하나 화합적·정서적 결합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들은 불과 10여일전만 해도 기형적인 선거구 쪼개기와 중앙당의 전략공천지 지정에 강하게 반발했다. 순천을 떠난 서갑원 전 의원이 겨눈 비수도 뼈아프다. 서 전 의원은 지난 18일 불출마 기자회견에서 “소병철 이정현 줄 대고 선거운동했다”“이해찬·민주당지도부 등 당내 패권세력 투쟁하겠다”고 날을 세웠다. 이날 서 전 의원이 밝힌 발언 수위로 볼 때 상당수 지지자가 반(反)소병철로 돌아섰다는 관측이 힘을 얻는다. 이 또한 노관규 측은 무소속 출마에 유리한 측면으로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소 후보의 광주제일고 동기인 장만채 예비후보 또한 아직 소 후보 지지 또는 다른 지역구 출마에 대한 뚜렷한 입장 발표가 없어 소 후보에게는 불리한 상황이다. 민주당 소 후보는 민중당, 민생당 후보와도 버거운 싸움을 해야 할 처지다. 

 

다크호스 민중당 김선동…어부지리 얻나 

반민주 정서가 점점 늘어나면서 3선에 도전하는 민중당 김선동(54) 예비후보의 주가가 오르고 있다. ‘국회 최루탄 투척’으로 인해 의원직을 상실했던 김 예비후보가 인지도면에서 다른 후보에 뒤지지 않는다. 김 후보는 2011년 4·27재보궐선거에서 야권연대 후보로 순천지역구에 출마해 호남최초 진보정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이어 19대 총선에서도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할 정도로 ‘선거 고수’란 점을 봐도 그렇다. 여기에 진보진영의 탄탄한 조직과 재순천 8만여 고흥 향우도 든든한 우군이다. 김 후보 측은 여당에 유리하지 않은 상황을 틈타 반격을 노리고 있다. 김 후보는 “민주당이 이번 선거구 획정과 후보공천 과정에서 순천시민들을 세 번이나 버렸다”며 “민주당은 더는 촛불 정부를,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임을 자임할 자격이 없다”고 민심을 자극하고 있다. 민주당 분열에 따른 어부지리(漁父之利)를 내심 기대하는 분위기도 역력하다. 

순천 총선은 원내정당 대부분이 예비후보를 등록해 경쟁도 치열하다. 미래통합당은 대구 출신 30대 천하람 변호사를 전략공천했고, 민생당은 기도서·장성배 후보가 당 공천권을 놓고 경쟁 중이다. 정의당은 환경운동가인 강병택 후보가 출마를 선언했다. 국가혁명배당금당은 정동호·이정봉 예비후보가 등록했다. 모든 당의 후보가 확정되면 경쟁률이 7대 1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전남에서 가장 치열한 선거구가 될 전망이다.

지역 정가에서는 소병철 후보가 분구 무산 책임론을 딛고 입성에 성공할지, 급속히 확산 중인 반민주당 정서를 노관규 후보가 얼마나 받아 안을지, 김선동 후보가 여권표 분열에 따른 어부지리를 얼마나 얻을지가 이번 순천 총선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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