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변화 따라 남녀 말투는 어떻게 달라질까 [로버트 파우저의 언어의 역사]
  •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외국어 전파담》 저자) (jongseop1@naver.com)
  • 승인 2020.03.31 16:00
  • 호수 1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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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 완화되며 남성뿐 아니라 여성도 직설적 말투 늘어

1980년대 미시간대학교에서 일본어를 전공했다. 나처럼 영어를 모어로 쓰는 사람에게 일본어는 배우기에 여러모로 어려운 언어다. 발음은 쉽지만 어순과 문법 체계가 영어와 다를 뿐만 아니라 영어에서 유래한 것 외에는 비슷한 단어가 거의 없다. 거기에다 일본어는 문법과 단어를 통해 존대를 표현하지만 영어는 전체적인 뉘앙스로 공손함을 드러낸다.

또 다른 차이도 있다. 초급에서 중급 단계로 올라가면 성별에 따라 다른 말을 만난다. 일인칭 대명사는 물론이고, 문장의 끝에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어미 역시 차이가 있다. 일본어에서의 성별 차이 연구는 사회언어학이 등장했던 1960년대 무렵 등장했다. 일본어 사회언어학에서 성별에 따른 언어 차이는 매우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다. 일본 사회언어학 연구의 선구자이자 도쿄대학교 교수였던 시바타 다케시(柴田武·1918~2007)는 1950~60년대 일본 방언 지도를 만들기 위해 전국적인 인터뷰 조사를 실시했다. 흥미로운 결과가 많이 나왔다. 그중 하나가 도쿄 중산층에서 점점 뚜렷해지는 남녀 언어 차이였다. 그 이전에도 남녀의 차이는 있었지만 과학적 연구를 통해 증명한 일이 없어 이 조사는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도쿄 중산층에서 사용하는 말이 일본어의 공통어, 한국식으로 말하면 표준어의 기준이 돼 1950년대 NHK를 비롯한 매스컴을 지배하면서 자연스럽게 남녀 차이도 ‘표준화’됐다.

ⓒ일러스트 김세중
ⓒ일러스트 김세중

여성이 사소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는 이유

그러나 시바타 교수가 연구했던 때와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도쿄 외에 다른 방언에서는 여전히 대명사에서의 남녀 차이가 뚜렷하지만, 어미의 차이는 비교적 흐릿해지고 있다. 젊은 세대들의 경우에도 대명사 차이는 여전하지만 어미 차이는 약해지고 있다. 일본어에서의 남녀 차이에 지리적·시대적 특성이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1950년대부터 일본은 점차 회복하기 시작했다. 중산층이 사회적 주류로 등장했다. 중산층은 어느 정도 안정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서로 엇비슷하게 살아가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공동체 의식이 강한 일본에서는 이런 점이 특히 두드러졌다. 다른 사람과 비슷하게 살기 위해서는 우선 쓰는 말이 비슷해야 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빠른 속도로 사투리를 버리고 대신 사회적 주류의 언어를 쓰기 위해 노력했다.

영어에서도 남녀 차이는 있다. 다만 일본어처럼 대명사와 어미의 차이라기보다 전체적인 대화 스타일에서 드러난다. 조지타운대학교 교수 데보라 태넌(Deborah Tannen·1945~)은 ‘대화 스타일’이라는 개념을 남녀 차이와 관련지어 연구한 이 분야 선구자다. 그는 ‘대화 분석(conversational analysis)’이라는 사회언어학 하부 분야에서 이론적 토대를 빌려 남녀 대화 스타일에서 흥미로운 차이를 밝혀냈다. 대화 스타일이란 말하자면 ‘말 속에 의미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단어 선택은 물론 목소리 톤, 말의 속도, 말 끊기, 화제 전환 등 대화와 관계 있는 모든 요소를 분석했다.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그가 펴낸 《You Just Don’t Understand: Women and Men in Conversation》(1990)은 미국 영어에서의 남녀 차이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다룬 중요한 저서로, 출간 후 약 4년 동안 언어학 저서로는 매우 드물게 베스트셀러가 됐고 30개국 언어로 번역됐다.

태넌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남녀 차이 중 하나는 ‘답답한 이야기’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 사소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여자가 이런 말을 자주 하는 건 어떤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뜻이 아니라 애정을 표시하는 방식이다. 반면에 여자의 이야기를 듣는 남자는 내용에 대해 판단하려 들고, 자꾸만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기 일쑤다. 그런 남자의 반응을 여자는 매우 답답하게 여긴다. 이런 대화 유형은 남녀의 대화에서 남자가 자주 화제를 바꾸고, 대화의 흐름에서 주도권을 잡으려고 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여자는 남자보다 간접적으로 말하는 반면, 남자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이런 남자의 이야기 방식으로 여자들이 상처를 입는 경우도 많다. 그는 또한 남녀의 대화와 달리 여자끼리의 대화에서는 개인의 사생활을 화제로 자주 올림으로써 서로 친해지고 연대감을 강하게 느낀다는 점도 연구를 통해 밝혔다.

태넌 교수의 연구 대상은 주로 미국의 중산층, 그중에서도 백인 가족 위주였다. 대화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대상이 되는 대화의 양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지인들의 도움을 받았다. 비록 일본의 시바타 교수와는 다른 분야, 다른 시대의 학자지만 태넌 교수의 연구 역시 미국 백인 사회의 ‘표준화된 중산층의 말’에 대한 연구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미국 중산층의 말 역시 일본과 비슷하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확산됐다. 자연스럽게 각자의 사투리를 버리면서 형성된 표준화된 말이 매스컴을 지배하면서 뉴욕에서조차 그 전에 자주 들을 수 있었던 뉴욕 사투리가 점점 드물어졌다.

 

한국, 남녀 말투 차이 점차 완화되기 시작

《비버는 해결사(Leave It to Beaver)》 또는 《더 브레이디 번치(The Brady Bunch)》 같은 당시 유명 TV 프로는 표준화된 중산층 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 프로에서는 태넌 교수가 밝힌 바와 같이 남자는 더 직설적으로 대화를 주도하려고 하고, 상대적으로 여성은 간접적으로 상대방의 반응을 보면서 더 깊은 소통을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역시 일본처럼 뚜렷했던 남녀 차이는 점점 변화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늘어나고 있고, 물론 아직 충분하지는 않지만 예전에 비해 조금은 평등한 관계가 만들어지면서 여자들의 말투는 이전에 비해 직설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공업화와 도시화 시기는 늦었지만, 속도로만 보면 엄청나다. 도시에 중산층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80년대부터지만 1990년대에 이미 주류가 됐다. 따라서 한국의 젊은 세대는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윗세대에 비해 남녀의 차이가 뚜렷하다. 한국에서 여성들은 더 간접적으로, 더 귀엽게 말하는 반면에 ‘아줌마’라는 캐릭터로 대표되는 윗세대는 오히려 그 반대다. 지리적으로는 어떨까. 젊은 세대들끼리 지역 사투리를 쓰는 경향이 훨씬 약화됐다. 미국과 일본의 언어에서 남녀 차이가 완화하기 시작한 것은 사회적 다양성을 젊은 세대로부터 인정받은 1980년대부터였다. 그렇게 보자면 한국은 2020년경부터 점차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어에서의 남녀 차이가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하는 것은 흥미로운 사회적 현상이면서 동시에 탁월한 연구 과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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