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코로나19와 사투 벌이는 이탈리아 의사 테자
  • 클레어함 유럽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3.31 08:00
  • 호수 1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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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반니 테자 박사의 진단 “실질적 결정권 지닌 국제 컨트롤타워 필요”

이탈리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코로나19 치명률(10.1%)로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다. 30분마다 1명꼴로 사망자가 매장되고 있다는 북부의 베르가모시에서는 지역신문의 하루 부고만 11페이지가 넘고 화장 시설에서도 대기해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연출되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위기 대책으로 전염의 73%가 발생한 북부 롬바르디아 지역에 파견할 ‘코로나바이러스 의료지원팀’을 공개적으로 모집했다.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는 3월21일 ‘코로나바이러스: 7220명이 지원한 사랑의 행위’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300명을 24시간 모집하는 광고에 무려 7220명이 지원했다고 보도했다.

이미 이탈리아 타 지역의 의료진도 북부에서 지원활동을 하고 있고, 다량의 의료장비도 북부 지역 병원들로 보내지고 있으나 여전히 역부족이다. 해외의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300명에 달하는 중국의 코로나 전문의도 의료물품과 함께 도착해 현장에서 지원하고 있다. 3월22일 쿠바의 의료진 52명도 도착했고, 독일도 300대의 산소호흡기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3월23일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산 라파엘 병원에 새로 마련된 중환자실에서 코로나19 환자가 의료진의 치료를 받고 있다. ⓒAP연합
3월23일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산 라파엘 병원에 새로 마련된 중환자실에서 코로나19 환자가 의료진의 치료를 받고 있다. ⓒAP연합

“이탈리아 의료환경, 독일·프랑스보다 열악”

하지만 이런 안팎의 노력에도 미래는 불투명하다. 3월8일 정부의 북부 봉쇄령이 발표되기도 전에 언론에 누출되면서 남부로 대거 이동한 수만 명의 인파가 미칠 파장이 미지수다. 3월18일 지방지 ‘시라큐스 뉴스’에 따르면 시칠리아주에만 3만5000명 이상이 남하했다. 비슷한 시기, 풀리아주로 1만6545명이 이동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정부가 독려한 온라인 자가 신고를 바탕으로 한 수치다. 3월20일 지방지 ‘Tutto Napoli’는 남하 인구의 15% 정도가 발열 증상이 있는 상태로 여행했다고 보도한 가운데, 최근 20대의 버스가 남하 인구를 가득 싣고 내려오다 검문에 걸리는 등 불법적 남하는 계속되고 있어 사태 수습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이탈리아가 이런 극단적 상황에 이른 원인에 관한 연구는 현재 진행 중이다. 그간 중앙정부 컨트롤타워 부재 및 국민에게 혼선을 야기한 불통, 정확한 역학조사 및 테스트 부족, 확진자의 고령 등을 지목하는 추론이 제기됐다. 공공의료 시스템 붕괴라는 지적도 많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의료계에 종사하는 의료진은 무엇이 원인이라고 진단할까. 북동부에 위치한 그라도(Grado)시에서 가정의로 일해 온 지오반니 테자(Giovanni Teza·64) 박사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바쁜데 시간 내줘 감사하다. 이탈리아의 치명률이 상당히 높은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는지.

“이 팬데믹이 완전히 끝난 후 최종 결과로 결론을 내려야 할 문제이고, 지금 진단을 하기엔 너무 시기상조다.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현 상황에서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지적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탈리아는 23만3222건 테스트를 했는데, 명확한 증상이 있거나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들과 가까이 접촉한 개인들만 테스트하고 있다. 아마도 미미한 증상을 보이는 이들까지 모두 테스트를 한다면 치명률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총체적인 공공의료 체계 붕괴가 높은 치명률의 주요 원인이라는 진단이 많다. 2008년 경제위기이후 공공의료 예산 축소로 병상 수 및 집중치료실(중환병실)이 줄었다고 들었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간 현저한 예산 축소가 있었고, 유럽연합 평균 10%에 비하면, 우리의 GDP 대비 의료 투자비율이 8~9%(공공의료 6.5%)로 낮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2016년 유럽연합 통계에 따르면 상위 순위는 프랑스 11.5%, 독일 11.1%, 스웨덴 11%). 병상 수 축소도 현저하다. 현재 이탈리아는 인구 1000명당 병상 수가 3.4개 수준이다(독일 8개, 프랑스 6개, 스페인 3개). 하지만 공공의료가 훌륭하다고 여겨지는 스위스나 핀란드도 각각 4개, 4.4개인 걸 보면 그다지 극단적인 상황도 아니고,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긴급 상황이 아닌 평소에는 현실적인 수요량을 초과하기 때문이다. 반면 집중치료시설(ICU)의 총수는 이번 코로나 사태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현 사태 이전에는 5500개, 현재는 7000개 정도로 알고 있다.” 

이탈리아 의사들의 수입이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현저히 낮아 다른 나라로의 의료인력 유출이 심화되고 있다고 들었다. 현재 자국 내 의사 및 의료진이 심각히 부족한 상황인가.

“현재는 심각히 부족하진 않으나 조만간 그럴 수 있다. 이탈리아 의사의 평균 연봉은 약 10만 유로인데, 이에 대해 43%의 세금을 내고 있다. 다른 유럽국에 비해 수입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맞지만, 현지 물가에 비하면 그리 나쁘진 않다. 물론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젊은 층 의료인들이 수입의 2~3배를 기대할 수 있는 경우, 국외로 진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미래의 의료인력 부족을 유발하는 최대 원인은 매년 의대 입학정원을 잘 조율하지 못한 데 있다. 6년간의 필수 과정을 마친 후 다시 4~5년간의 전문의 과정을 수료해야 병원 취업이 가능한데, 전문의 과정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이다.”

시사저널과 인터뷰한 의사 지오반니 테자 박사 ⓒ지오반니 테자
시사저널과 인터뷰한 의사 지오반니 테자 박사 ⓒ지오반니 테자

“가이드라인만 제시하는 WHO로는 한계”

이탈리아 정부가 향후 의료환경 최적화를 위해 해야 할 조치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물론 정부는 공공의료에 더 투자해야 한다. 의료환경 최적화를 위해 정부는 사기업·민간 부문이 아니라 공공의료 시스템에 기금을 우선 배정해야 한다.”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에 따르면 60세 이상 확진자 비율이 독일은 15%인 데 비해, 이탈리아는 무려 60%에 이른다. 70세 이상 확진자도 41%에 육박한다. 이탈리아가 유럽에서 고령화된 인구가 제일 많다고 들었다. 이것도 치명률에 직접적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지.

“맞는 지적이다. 고령자는 다른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환경문제를 주요 원인으로 분석하는 이도 있다. 예를 들어, 포 계곡(Po Valley) 등 이탈리아의 산업화된 북부가 유럽 내 대기오염 상황이 최악이었고, 수십 년간 지역주민들의 호흡기에 악영향을 미친 것도 치명률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대기오염이 심한 지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더 많다는 연구조사들은 있지만, 지금은 이 이론을 인정하기도 거부하기도 어려운 단계라고 본다.”

감염병 예방을 위해서는 효율적이고 조직적인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강조하는 연구도 있다.

“중요한 것은 국제적인 협력이다. 글로벌한 차원에서 질병에 대한 정보 및 전략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결정권을 지닌 전염병 통제조직이 필요하다. 효율성을 지닌 비정치적 기구가 있어야 한다. 현재 세계보건기구(WHO)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뿐, 개별 국가를 강제할 권한이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의료진 감염도 심각한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본인과 동료 의료진의 안전이 우려되진 않는지.

“그렇다. 국내 다수의 의료진도 코로나19 확진자로 밝혀지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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