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가 사라졌다
  • 노경은 시사저널e. 기자 (rke@sisajournal-e.com)
  • 승인 2020.04.02 10:00
  • 호수 1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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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규제가 만든 또 다른 ‘풍선 효과’…전세 줄고 반전세 증가

서울에서 전세 매물이 자취를 감췄다. 특히 강남4구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강남구에 위치한 입주 2년 차 래미안 블레스티지 아파트의 경우 전체 가구 수가 2000세대에 달하는데,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매물정보에는 전세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인근 단지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전세 대신 준전세나 월세 매물만 세입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임대차 시장의 주된 계약 형태인 전세 비율이 낮아지고 반전세나 월세 거래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대출 규제·저금리·보유세 폭탄 후유증

전셋집 구하기가 어쩌다 하늘의 별 따기가 된 것일까.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계약일 기준) 총 1만2492건 가운데 반전세(1506건)는 12%로 나타났다. 반전세는 보증금이 월세의 240개월어치를 초과하는 경우를 말한다. 특히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에서는 반전세 비율이 총 임대차거래 3747건의 19%(703건)까지 확대돼 있었다. 전월세 거래 건수는 세입자의 전입신고 등 전월세 확정일자를 기준으로 집계한다. 지난달 계약을 체결하고 아직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계약 건이 등록되면 비중이 더 커질 여지가 있다.

강남구 대치동 등 학군 우수 지역에서는 지난해 12월부터 전세 매물 자체가 귀해지면서 전세가격이 불과 3~4개월 사이 2억원 안팎으로 올랐다. 여기에 전세대출마저 까다로워지자 반전세를 택하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 대치동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세계약 불발의 시발점은 정부가 내놓은 12·16 대책 당시 발표된 전세대출 규제였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시가 9억원 이상의 주택을 갖고 있는 1주택자가 교육, 발령, 병가 등의 이유로 전세를 놓을 경우에도 대출 보증을 제한했다. 사실상 대출이 막혀 전세 보증금을 전부 자력으로 충당해야 하는 것이다. 교육 목적으로 강남에 오려는 이들의 상당수는 이에 부담을 느꼈고, 결국 전세계약 거래 건수 감소를 초래했다. 반대급부로 반전세 계약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재계약으로 계약을 이어가려는 전세 세입자도 전세 보증금 상승분만큼을 월세로 충당하려는 경우가 많아졌다. 전세가 상승분을 자력으로 마련해야 하는데 최근의 집값 및 전세가격 상승을 반영하면 차액만큼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 월세로 보태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전세대출 활용 불가의 이유로 임차인이 반전세를 선호하는 경우도 있지만 집주인인 임대인 역시 전세보다는 반전세를 선호하는 것이 현장의 분위기다. 낮은 은행 이자율 때문에 집주인 입장에서는 전세금을 받아 은행에 넣어 이자를 받는 것보다 세입자에게 월세를 받는 게 경제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예를 들어 전세 보증금 5억원을 3억원으로 줄이고 반전세로 전환할 경우, 집주인은 매달 월세 80만원을 받을 수 있다. 2억원을 은행에 예금했을 때 받는 이자 30만원보다 수익이 2배 이상 더 발생하는 것이다. 이달 중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첫 0%대인 0.75%까지 인하한 점도 전세의 씨를 말리고 반전세나 월세 매물 증가를 부추기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오는 4월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확정되면 세금 부담을 의식한 집주인들의 월세나 반전세 선호 현상은 더 확산할 수 있다. 국토부는 공시가격안 확정을 앞두고 3월 중순 아파트와 연립, 다세대 등 전국의 공동주택 1383만 호에 대해 공시가격 예정안을 발표했는데, 서울의 상승률이 14.75%로 13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서울 안에서는 강남구가 25.5%로 가장 많이 올랐고, 서초구 22.5%, 송파구 18.4%, 양천구 18.3% 순으로 뒤를 이었다. 공시가격은 고가 주택일수록 상승폭이 더 컸다. 공시가 12억원 이상 15억원 이하는 17.2% 올랐고, 9억원에서 12억원 이하는 15.2% 상승했다. 비싼 집을 보유한 소유자일수록 부담이 커진 셈이다. 공시가격은 세금 부과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오를수록 소유주에게는 부담이 된다.

국토부가 소유주의 단지별 보유세(재산세+종부세)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국내 처음으로 3.3㎡당 1억원을 찍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 소유주의 보유세는 지난해 1123만원에서 올해 1652만원으로 50% 가까이 늘어나게 된다. 2주택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들의 세금 부담은 더욱 커졌다.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이하 래대팰) 전용 84㎡와 인근 은마아파트 동일 평형을 보유한 2주택자의 보유세는 지난해 3047만원에서 올해 6144만원으로 2배 이상 급증하게 된다. 래대팰과 은마 전용 84㎡, 개포주공1단지 전용 50㎡까지 보유한 3주택자는 지난해 보유세로 5278만원을 냈지만 올해는 9747만원을 내야 한다. 3주택자의 경우 세금만 1억원에 육박하는 것이다. 국세청이 발표한 국세통계가 내놓은 2018년 기준 근로자 평균 연봉이 3647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두 채 이상 주택을 보유한 다주택자의 보유세는 근로자 평균 연봉의 최소 1.5배에서 3배에 육박하는 것이다.

 

반전세 선호 확산에 주거 안정성도 ‘휘청’

전문가들은 주택시장을 둘러싼 제반 환경인 전세대출 규제, 금리 인하, 보유세 증가 등의 영향으로 당분간 전세 거래는 대폭 감소하고 반전세나 월세 거래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 경우 보유세 부담 증가가 세입자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세입자는 소득의 대부분을 임대료로 지출하며 자칫 주거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다. ‘집값 잡으려고 내놓은 대책이 세입자를 잡게 생겼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보유세 인상, 대출 규제 등과 이사철이 맞물리면서 반전세 거래가 늘어난 분위기”라며 “학군 선호 지역 등의 전세 매물이 부족하면 실수요자는 비싼 반전세로 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전세 매물이 워낙 적은 상황에서 전세대출 규제가 강화되면 반전세라도 입주하려는 세입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전세에 익숙한 세입자 입장에서 월세나 반전세는 주거비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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