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는 이번 총선에서도 들러리인가?
  • 세종취재본부 김상현 기자 (sisa411@sisajournal.com)
  • 승인 2020.03.2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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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융합 반대자와 연구자가 같은 당 비례후보?
2선 이상 과학자 출신 국회의원 찾기 어려워
과학기술 중요성을 이야기 하면서 과학계는 찬밥

지난 24일 진보진영 거대 비례정당 더불어시민당이 비례대표 후보 35명을 발표했다. 후보들의 면면만 보면 공공보건의료, 중소기업, 여성인권, 언론, 문화예술, 장애인, 청년 등 다양하게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비례후보 명단을 놓고 과학계가 술렁인다. 비례후보 9번인 양이원영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과 18번을 받은 이경수 박사(전 ITER 국제기구 부총장)가 함께 보이기 때문이다.

 

대표 반대자와 대표 연구자가 공존 가능한가?

양이원영 처장은 대표적인 반핵 운동가다. 문재인 정부의 기조가 탈핵이므로 양이 처장이 비례후보 당선권에 오른 것은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양이 처장이 핵분열을 이용한 원자력발전뿐만 아니라 핵융합에 대해서도 극렬하게 반대한다는 점이다. "핵융합은 태양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지구에서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며, 핵융합이 없어도 재생에너지와 수요관리 기술로 충분히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라는 것이 양 처장의 기본 논리다.

그는 지난 2018년 정부 예산안 평가·의견서에서 "핵융합은 태양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핵융합을 실현하는 것은 지구에 태양을 구현하겠다는 목표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라는 주장과 함께 정부의 핵융합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양이 처장의 핵융합 반대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지난 3월 12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는 "국민을 대신해서 행정부의 세금 낭비 단속을 해야 할 국회가 코로나19로 전 국민이 고통받고 나라가 혼란스러운 이때 핵융합연구원 설립 개정안을 통과시킨다니 우려스럽다"라고 했다. 핵융합에너지연구원으로 승격을 추진하고 있는 국가핵융합연구소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비판한 것이다.

더불어시민당 비례후보 9번을 받은 양이원연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대표적인 핵융합 반대자다. ⓒ연합뉴스
더불어시민당 비례후보 9번을 받은 양이원연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대표적인 핵융합 반대자다. ⓒ연합뉴스

그에 반해 비례후보 18번을 받은 이경수 박사는 한국, 일본,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EU가 함께 건설하고 있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의 사무차장 출신이다. ITER의 사무차장은 기술 부분 총괄로 ITER 2인자로 불리는 자리다.

이 박사는 30년 넘게 핵융합 연구에 몸담았고, 초전도핵융합 연구장치 KSTAR의 건설을 주도한 인물이다. KSTAR는 최근 1억도 상태의 플라스마를 8초간 유지해 세계 기록을 세웠다. 또 국가핵융합연구소장(2008~11), ITER 이사회 경영자문위원회 위원장(2010~11), ITER 이사회 부의장(2014~현재)직을 거친 핵융합 세계 최고 전문가다. 이번 정치 진출의 이유로 "입법과 시스템으로 과학발전의 틀을 만들겠다"라며 "기존 정치의 틀에 핵융합을 일으키겠다"고 밝혔다.

양이 처장과 이 박사의 핵융합에 대한 철학은 극명하다. 여권 후보와 야권 후보 간이라면 이해가 되지만 같은 당의 비례후보 사이치고는 줄다리기 줄이 너무 팽팽하다.

 

과학자는 정당에게 구색 맞추기 희생양인가?

이런 모양새를 보이자 과학계에서는 의문과 아쉬운 탄식이 함께 흘러나온다. 한쪽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영입 인사로 비례대표 8번을 받았던 이 박사가 더불어시민당으로 넘어오면서 18번으로 밀려버리자 '여당의 비례 후보 구색 맞추기를 위한 희생양'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이 박사는 한 인터뷰에서 "9급 공무원이 아니라 과학기술자를 꿈꾸는 나라를 만들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라고 출마 이유를 밝혔다. 과학기술계도 자신들을 대변해 줄 새로운 과학계 인사가 세계적 석학이라는 것에 환영에 뜻을 비쳤다. 과학자 출신의 국회 진출 사례가 많지 않고 오래 살아남아 뜻을 펼친 경우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왼쪽부터)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재영입행사에서 19번째 인재인 이경수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부총장과 20번째 인재인 최기상 전 서울북부지방법원 판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왼쪽부터)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재영입행사에서 19번째 인재인 이경수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부총장과 20번째 인재인 최기상 전 서울북부지방법원 판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8대 총선에는 세계여성물리대회 조직위원장을 지냈던 박영아 전 의원이 한나라당으로 서울시 송파갑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하지만 박 전 의원은 이후 19대 총선에서 공천에 탈락해 국회를 나왔다. 19대에는 박 전 의원 대신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위원 출신 민병주 전 의원이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민 전 의원은 원내부대표까지 지냈지만, 역시 다음 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 출신 신용원 전 의원(미래통합당)은 20대 국민의당 비례후보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21대 총선에서 지역구 도전을 위해 미래통합당으로 당적을 옮겼으나 '셀프 제명'이라는 악수로 공천 경선까지 가보지도 못했다. 남자 과학자도 마찬가지다. KAIST 총장을 지낸 故 홍창선 전 의원도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2004년 국회의사당 진입에 성공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더욱 아쉬운 것은 국회에 진입했던 과학자들 대부분이 국회 활동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는 점이다. 민병주 전 의원은 대한민국 창조경영대상 정치대상과 최우수법률상, 국회 종합헌정대상을 받았다. 신용현 전 의원 역시 헌정대상과 함께 입법 및 정책개발 우수국회의원, 대한민국모범국회의원대상을 수상했다. 그런데도 2선 이상 하기가 녹록지 않다. 과학기술계가 정치권에서 받는 대우를 반증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 초 "과학기술 강국, 인공지능(AI) 1등 국가가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고 혁신적 포용국가 실현을 앞당기는 두 기둥"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여당 영입인재 중 이경수 박사가 유일한 과학기술 인사다. 그나마 순위가 18번이라 국회 진출도 어려워 보인다. 정치권이 '구색 맞추기를 위한 과학자 이용'이라는 평가를 넘어서려면 어렵게 정계 진출을 결심한 과학자에게 좀 더 제대로된 대우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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