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악랄해진 성착취 음란물 제작·유통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3.30 08:00
  • 호수 158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피해자 협박해 제작하고 회원 등급 관리로 막대한 수익 챙겨

텔레그램 ‘n번방’ 사태는 이미 예견돼 있었다. 그동안 성착취 음란물은 꾸준히 온라인에서 유통돼 왔다.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다가 텔레그램에서 터진 것뿐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관음증적 형태가 바뀌지 않는 한 또 다른 ‘n번방’ 출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게 마련이다. 여기에 ‘돈’이 결부되면서 성착취 음란물은 음성적인 유통채널을 찾아 둥지를 틀게 돼 있다. 그동안 수차례 대대적인 단속이 있었지만 그때가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고개를 든 데서도 알 수 있다.

인터넷 등 온라인 플랫폼이 활성화되기 이전까지 ‘음란물 유통 1번지’는 서울 종로 ‘세운상가’였다. 종합 가전제품 상가이자 전자·컴퓨터 산업의 메카였지만 그 이면에는 ‘성소(性所)’로 불린 어두운 과거가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각종 도색잡지는 물론 출처 불명의 ‘포르노 비디오테이프’가 활발하게 유통됐다. 휴가 나온 군인이나 지방에서 상경한 남성들은 한 번쯤 가봐야 하는 장소로 일컬어질 정도였다.

세운상가에서 유통되던 음란물 대부분은 해외에서 들여온 상업용 포르노였다. 포르노 배우들이 돈을 받고 출연해 촬영한 것들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온라인이 활성화되면서 세운상가에서 음란물을 판매하던 ‘아저씨’들도 한순간에 사라졌다.

1990년대 말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일명 ‘O양 비디오 사건’이 터진다. 당시 한창 잘나가던 인기 배우가 신인 시절에 촬영한 성관계 장면이 비디오테이프에 여과 없이 담겨 유통됐다.

언론 보도를 통해 사건이 알려지면서 해당 비디오테이프를 찾는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집요한 관심으로 인해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싸게 거래됐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제2의 O양 비디오 사건’이 터졌고, 연예인의 사생활이 다시 한번 화두에 올랐다.

개인의 사생활이 여과 없이 사회에 노출됐을 때 개인이 볼 수 있는 피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우리 사회의 ‘훔쳐보기’ ‘왜곡된 성문화’ ‘여성에 대한 이중 잣대’ ‘언론의 과잉보도’라는 문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이때부터 ‘인터넷 음란물과 표현의 자유’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미성년자 포함 최소 74명의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3월25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이송되고 있다. ⓒ시사저널 고성준
미성년자 포함 최소 74명의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3월25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이송되고 있다. ⓒ시사저널 고성준

직업적인 헤비업로더들 등장

문제는 ‘돈’이었다. 음란물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자 비디오테이프로 유통되던 것들이 디지털 영상파일로 변환됐다. 불법 음란물 업자들은 ‘웹하드’와 ‘파일공유사이트’(P2P)를 근거지로 삼고 기업형 거래에 나섰다.

웹하드는 공유 사이트의 서버에 한 개의 파일을 올려놓으면 여러 사람이 동시에 다운로드할 수 있었고, P2P는 인터넷에서 개인과 개인이 직접 연결돼 파일을 공유하는 방식이었다. 모두 회원제로 운영됐다.

운영자는 업로더들이 올린 파일을 상대방이 다운로드할 때 필요한 사이버머니를 제공하고 이윤을 얻었다. 업로더들은 자신이 올린 파일의 다운로드 횟수가 많을수록 많은 돈을 챙기는 구조였다. 그렇다 보니 ‘김본좌’ 같은 직업적인 헤비업로더들이 탄생했다. 헤비업로더들은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를 도용해 사용했다. 한 달에 1만 기가바이트 정도의 파일을 올렸고, 여기에는 컴퓨터 3~4대가 동원됐다.

일부는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해 대학생들을 아르바이트로 활용했다. 이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야간 시간대에 음란물을 올리고, 주간에는 내리는 게릴라식으로 활동했다.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사용하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이런 방식으로 VIP 헤비업로더는 한 달에 수천만원을 벌어들였다. 헤비업로더들의 경쟁도 가속화됐다. 이들의 성패는 ‘희귀 음란물’을 얼마나 빨리 그리고 많이 게시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 유통되던 음란물은 미국, 러시아, 일본, 동남아시아 등에서 몰래 들여온 해외 포르노가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헤비업로더들은 경쟁적으로 더 자극적인 것을 찾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제작된 음란물을 구입하거나, 돈을 주고 ‘음란물 셀카 촬영’을 의뢰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국내에서 제작되거나 촬영된 것, 특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음란물이 급증했다.

문제는 영상에 등장하는 청소년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지 않거나 음성을 변조하지 않아 제2, 제3의 피해가 불가피했다는 점이다. 촬영 장소 주변에 있는 교복과 이름표, 또 전화번호 등을 통해서도 신상이 노출됐다. 실제 국내에서 제작된 것 10개 중 4개는 청소년의 얼굴이 그대로 노출됐다.

유포자가 청소년의 신상을 공개하는 경우도 있었다. 웹하드나 P2P사이트에서는 ‘○○중학교 ○학년 ○○○’이라는 식으로 동영상 속 주인공의 개인 신상을 자세하게 명시하기도 했다.

아동 음란물 피해자 중에는 가출 청소년이 적지 않았다. 경제적 자립이 어려운 가출 청소년들은 범죄의 표적이 되거나 여러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들은 본능적으로 일행을 찾아 남녀가 팸(Family)을 구성하는데 이때 돈벌이 수단으로 ‘음란 동영상’을 촬영하기도 한다. 성인 남성들이 쳐놓은 ‘덫’에 걸려 동영상 촬영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인터넷에 의류 피팅 모델을 구한다는 광고를 내고 이를 보고 찾아온 가출 청소년들에게 음란물 촬영을 강요한 일당이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이들은 가출 청소년 4명에게 속옷 광고를 촬영하는 것처럼 하면서 이와 무관한 성행위를 하도록 하고 이를 영상물로 제작했다. 그러고는 일부를 인터넷에 유포했다.

2016년 4월7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 최재호 경감이 ‘소라넷’의 핵심 해외 서버를 국제 공조수사를 통해 폐쇄했다며 그 과정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6년 4월7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 최재호 경감이 ‘소라넷’의 핵심 해외 서버를 국제 공조수사를 통해 폐쇄했다며 그 과정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음란 사이트에서 메신저 오픈채팅방으로 이동

청소년들이 자체 제작하거나 제3자가 촬영한 음란물은 학교 안팎에서 유포되며 헤비업로더 등의 손에 들어간다. 이때 거래되는 금액은 수만원에서 수십만원 사이다. 매겨지는 금액은 동영상의 내용과 화질에 따라 달랐다.

경찰에 적발된 헤비업로더 중에는 70대 노인부터 대학 교수, 직능단체 임원 출신 등도 끼어 있었다. 한 국가고시 준비생은 취업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헤비업로더가 되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헤비업로더 중에 청소년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내 음란 사이트의 대명사인 ‘소라넷’은 1999년 9월부터 2016년 3월 폐쇄 전까지 17년간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됐다. 이곳에서는 몰래카메라(몰카)와 리벤지 포르노(연인 간 성관계 영상이나 사진을 당사자 동의 없이 유통) 등 불법 음란물이 넘쳐났다. 이를 보기 위해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수사기관이 확인한 것만 이곳에서 8만 건이 넘는 음란물이 유통됐다.

소라넷이 폐쇄되면서 제2, 제3의 소라넷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2017년 1월에 적발된 음란 사이트 ‘꿀밤’의 경우 가입 회원은 42만 명, 하루 방문자가 50만 명이 넘었다. 운영자는 현직 법무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방문자 수를 늘리기 위해 지인에게 매달 300만원을 주고 성관계 사진을 촬영해 올리도록 요구했다. 이들은 음란물 사이트에 올릴 영상을 확보하려고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여성에게 돈을 주고 촬영하거나 상대 여성을 몰래 촬영한 뒤 업로드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더 자극적인 영상을 올리도록 매월 콘테스트 형식의 이벤트를 열고 상금까지 내걸었다.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올린 성관계 영상 가운데 가장 많은 추천을 받으면 최대 500만원의 상금까지 지급했다.

음란 사진이나 동영상을 많이 올리면 회원 등급을 높여 더 많은 음란물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회원들은 상금을 노리거나 등급을 올리기 위해 불법 음란물을 경쟁적으로 올렸다. 이를 위해 자신의 여자친구, 심지어 자신의 아내와의 성관계 영상까지 몰래 찍어 게시했다.

2013부터 2017년까지 운영한 ‘AV스누프’에는 리벤지 포르노가 우후죽순 유포됐다. 운영자는 회원등급을 올린다며 불법 영상을 경쟁적으로 올리도록 유도했다. 이곳에 게시된 아동·청소년물 등 음란물은 46만 건, 회원 수는 121만 명이었다.

P2P나 음란 사이트가 활개를 칠 때는 “어디서 본 적 있다”는 말이 유행어가 된 적도 있다. 음란 동영상에 등장하는 여성이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누나’ ‘누구의 여자친구’였다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한 번이라도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했던 여성들은 언제 어디서 자신의 영상이 등장할지 몰라 가슴을 졸여야 했다.

웹하드와 P2P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고, 음란 사이트가 연이어 철퇴를 맞자 헤비업로더들은 채팅 애플리케이션(앱)과 메신저 프로그램에 새 둥지를 틀었다. 채팅 앱에서는 ‘○○○방’ 등 대화방을 개설하고 아동 음란물 등을 유통했다. 앱에서 제공되는 비밀 댓글을 통해 ‘영상 10분 5000원’ ‘사진 40장 5000원’이라는 모임방을 열기도 했다.

 

악랄하고 잔혹한 텔레그램 채팅방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인 ‘빨간방’은 익명으로 채팅방을 개설한 뒤 음란 영상을 유포했다. 비공개로 운영하며 일정한 인증 절차를 밟아야 입장이 가능하다. 이곳에서는 하루에 200개가 넘는 불법 음란물이 게시되고, 심지어 물뽕을 이용해 여성을 성폭행하는 영상까지 있었다. 지난해 초 가수 정준영의 몰카 동영상 사건을 계기로 단속이 심해지자 보안이 철저한 텔레그램으로 대거 이동했다.

2019년 2월 ‘갓갓’이 ‘n번방’을 만들어 성착취 동영상을 유포하기 시작했고, 같은 해 8월 ‘갓갓’이 자취를 감추자 ‘고담방’ ‘제2 n번방’ ‘박사방’ 등이 개설돼 활동했다. 이들의 운영방식은 집요하고 악랄했으며 잔혹했다. 불법 촬영물 유통에 그치지 않고 생산에도 직접 관여했다. 온라인에서 청소년에게 접근해 개인정보를 빼낸 후 이를 빌미로 협박해 영상과 사진을 보내게 했다.

피해자에게 자학, 고문, 성매매까지 강요했고 ‘시키는 대로 다 한다’고 피해자를 ‘노예’라고 불렀다. ‘박사방’ 개설자인 조주빈은 스스로를 ‘박사’로 칭하며 피해 여성들에게 몸에 칼로 ‘노예’라고 새기게 하는 등 잔혹하고 엽기적인 행각을 벌였다. 이들은 악마의 얼굴을 하고 막대한 범죄 수익을 챙기며 돈의 향연을 벌였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