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대표 자산가 2명이 말하는 코로나19 사태 생존법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3.27 15:00
  • 호수 158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위기 오래갈 것…무리하지 말되 체질 개선해야”

“겨우 희망이 보이려던 찰나에 역대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전국 주요 상권에선 매일같이 곡소리가 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우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상권이 바로 서울 명동이다. 명동은 중국, 일본 등에서 온 관광객들에 매출 85%가량을 의존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명동에 악몽이나 다름없다. 명동의 상점들은 매출 감소에 업종 불문 개점휴업 상태다. 일부 식당이 문을 닫았고, 360여 개에 달하는 노점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코로나19 사태 직격탄을 맞아 한산한 명동 거리 ⓒ시사저널 이종현
코로나19 사태 직격탄을 맞아 한산한 명동 거리 ⓒ시사저널 이종현

관광객 회복기에 최악 위기 발생 

명동 상권을 이끄는 자산가들도 갑자기 날아온 카운터펀치에 어안이 벙벙한 상황이다. 소유 건물의 임대료를 낮추는 등 고통 분담에 동참하고 있지만,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 조짐으로 자산가들에게도 비상이 걸렸다. 명동 자산가들은 대부분 맨손으로 명동에 진출해 의류업, 화장품업, 부동산임대업 등으로 부를 축적했다. 한·일, 한·중 관계 경색,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등 메가톤급 악재들 가운데서도 명동을 꿋꿋이 지켜 왔다. 누구보다 탄탄한 위기 극복 노하우를 갖춘 이들에게도 이번 사태는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시사저널은 명동 대표 자산가 2명을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인터뷰에 응한 자산가는 황동하 서울 명동관광특구협의회 회장(59)과 김병희 희성앤에이치 회장(65, 직전 명동관광특구협의회장)이다. 각각 명동의 의류업과 화장품업 부흥을 이끈 두 사람은 상권 발전을 위해서도 누구보다 앞장서 왔다. 

황 회장과 김 회장을 만나기 위해 찾은 명동 거리는 놀랄 만큼 썰렁했다. 평소 손님들로 북적이던 화장품·의류·액세서리 상점 등은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도 전혀 찾지 않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 속 행인들은 따로따로, 잰걸음으로 거리를 지나쳐 갔다. 가게 점원들은 무기력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3월23일 명동의 개인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황 회장은 묻기도 전에 “정말 너무 큰일”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2018년 1월 제10대 명동관광특구협의회 회장으로 취임해 상인들 간, 관(官)과 상권 간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 명동 상인들은 조만간 다시 밀려들 중국인 관광객을 맞이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고 황 회장은 전했다.

정부에 현실적인 상생안 요구 

황 회장은 “(보건·외교 문제 등이 해소돼) 올해 중국, 동남아시아, 유럽 등지에서 한국을 찾는 관광객이 2000만 명에 이를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조금씩 대응하던 차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질 줄 누가 알았겠나”라며 “최상의 분위기에서 최악의 위기가 닥쳐온 셈”이라고 말했다. 3월24일 희성앤에이치 회장 집무실에서 만난 김 회장 역시 “올 상반기 중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방한하면 중국의 한국 단체관광 규제가 풀리리라고 기대했다”면서 “그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피해를 많이 봤던 명동 상권에 희망이 보인다고 했는데, 코로나19로 더 심각한 상황이 됐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이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메르스의 영향은 제한적·부분적이었으나 코로나19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고 소비활동, 물류 등이 멈추다 보니 가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위기 국면”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황 회장, 김 회장을 비롯한 명동 상권 건물주들은 20~50%가량 임대료를 인하했다. 황 회장은 “사태 초기 임대료를 20% 낮췄다가 지금은 절반만 받고 있다. 다른 건물주들도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다 임대료 인하에 동참했다”면서 “그렇게 해도 장사가 워낙 안되다 보니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는 상인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건물주로서 내야 하는) 세금을 고려하면 건물주들에게도 이른바 ‘착한 임대’, 임대료 인하폭 확대 등에 얼른 동참하라고 강요만 해선 안 된다”며 정부의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임대료 인하 보전책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월27일 “민간의 ‘착한 임대인’이 임대료를 인하하면 그 절반을 정부가 분담하겠다”고 밝혔다. 황 회장은 “촌각을 다투는 상황인데 아직 ‘구체적인 임대료 지원 지침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소리만 들린다”면서 “자영업자·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못지않게 ‘보전’이 중요하다. 보전이 제대로 이뤄지면 임대료 20% 깎아줄 건물주가 40% 깎아주고, 50% 인하할 사람이 100% 안 받는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했다. 

두 자산가 모두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 회장은 “빨리 극복되길 바라는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와야 획기적으로 가라앉을 듯하다”고 진단했다. 황 회장도 “오래갈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사태 초기 우리 정부가 중국인 입국을 막지 않았던 건 시장에서 불행 중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며 “다른 측면에선 긍정적인 요소가 별다르게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현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3월24일 오후 명동 중심가에 위치한 화장품 브랜드 ‘클라뷰’ 매장은 여느 가게들과 다름없이 한산했다. 클라뷰는 김 회장이 론칭한 화장품 브랜드다. 김 회장은 1992년 화장품 유통 전문점 ‘뷰티렛’을 열어 10여 년 동안 전국 화장품 소매업계 매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유통 노하우, 탄탄한 자금력 등을 바탕으로 충분히 준비한 끝에 단독 브랜드 클라뷰를 선보였다. 클라뷰는 20여 개국으로 판매되며 연매출(지난해 기준) 200억원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해외 매출 비중이 70%에 이르는 클라뷰도 코로나19 사태를 비켜갈 수 없게 됐다. 그러나 김 회장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사업에 뛰어든 초기부터 철저한 수익 관리와 시장 분석, 신축적이고 빠른 변화 등 원칙을 꾸준히 지켜온 덕이다. 

김 회장은 “클라뷰 국내 매장 상황이 좋지 않은데, 해외 매출엔 큰 변화가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타격이 현실화할지도 모르겠다”고 덤덤하게 설명했다. 그는 “평소 이어온 사업 철학을 잘 유지할 계획”이라며 “기본적으로 사업은 잘될 때보다 안 좋을 때가 많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소신을 지키며 꿋꿋하게 나아가다 보면 위기도 지나가더라”고 했다. 위기라고 자기가 해 온 사업 범주를 크게 벗어나거나 무리하게 투자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김 회장은 제언했다. 

황 회장은 “지금 같은 때 누구든 새롭게 도전하긴 힘들고 그저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며 위기를 지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위기에 정면 대응할 순 없더라도 최소한 미래에 대비한 전략은 세워야 한다고 황 회장은 강조했다. 

황동하 명동관광특구협의회 회장 ⓒ시사저널 이종현
황동하 명동관광특구협의회 회장 ⓒ시사저널 이종현

“위기 재발하지 말란 법 없다” 

황 회장은 1983년 무일푼으로 상경해 노점상에서 신발가게 주인으로, 이후 6개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명동 최고의 ‘옷장수’가 됐다. 굳이 사드 사태 등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황 회장에겐 매 순간이 벼랑 끝이었다. 그는 리어카 한 대로 출발해 죽기 살기로 돈을 벌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고 성공을 맛보던 중 2000년 복합쇼핑몰(밀리오레 명동점) 등장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매출 30%가 증발해 직원 인건비를 댈 수 없을 정도까지 갔을 때 돌파구를 찾아냈다. 취급해 온 상품 중 제일 많이 팔린 니트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체질 개선 전략은 적중했다. 황 회장은 동대문에서 니트 장사를 다시 시작해 승승장구했다. 그는 역설적으로 주변에 늘 “사업하면서 단 한 번의 위기도 없었다”고 말하고 다닌다. 그럴수록 더 불안한 마음이 들어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어서다. 

코로나19로 외국인 관광객 유입이 막힌 게 명동에 분명 엄청난 위기지만, 체질 개선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황 회장은 말한다. 황 회장은 “사태가 잦아든다 해도 명동은 다른 상권보다 더 늦게 복구될 것이다. 항공 여객 수요, 호텔 예약 등이 차례로 살아나야 겨우 관광객이 들어오기 때문”이라면서 “이번과 같은 비상사태가 재발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리스크를 상쇄시키려면 내국인이 명동 상권을 이용하게끔 만들어야 한다”며 “중저가 화장품 매장과 길거리 음식 등에 편중된 명동 상권을 다양한 업종, 즐길거리, 먹거리가 공존하는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전체 명동 방문객 중 내국인 비율을 40%로 끌어올리는 게 황 회장의 숙원이다. 

명동 대표 자산가들은 위기 상황을 살아가는 자영업자, 직장인 등에게도 조언을 했다. 어느 순간부터 명동에서 리어카 장사를 하는 젊은 상인들이 정식 매장 운영, 자금 축적, 건물 매입 등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자산가들은 전했다. 하루에 100만원, 200만원씩 팔 수 있는 노점을 포기하지 않고 안주해 버리는 탓이다. 사드, 코로나19 등 위기 땐 노점의 유일한 생명줄인 매상이 끊겨버린다. 또 186개나 난립해 있는 화장품 매장들은 사드 사태 이후 줄어드는 매출 때문에 상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관광객 회복이 한줄기 희망이었으나, 코로나19로 물 건너갔다. 잘되는 것에만 치중하고 미래에 대비하지 않은 결과들이다. 앞서 김 회장은 화장품 매장이 너무 늘어나 할인율이 높아진 시기에 과감히 매장 수를 줄여 손실을 줄인 바 있다. 

김병희 희성앤에이치 회장 ⓒ시사저널 이종현
김병희 희성앤에이치 회장 ⓒ시사저널 이종현

“기웃대지 말고 몰입해야 부자 꿈 이룬다” 

금수저와는 거리가 멀었던 김 회장은 1970년대 중반 중소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사업을 해서 부자가 되겠다는 목표로 열심히 돈을 모았다. 월급의 절반 이상을 악착같이 저축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1980년대 중반 종잣돈 7000만원가량을 마련했다. 잠실 13평 아파트가 500만원 정도 하던 시절이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화장품 회사에 근무하는 동생과 함께 철저히 시장 조사를 했다. 화장품 매장을 열어 많은 돈을 벌어들이면서도 수익의 반 이상을 저축했다. 10여 년 동안 지출을 줄이려 신용카드까지 다 부러뜨리고 밤낮없이 사업에 매진했다. 아울러 수익은 한 달 내지 두 달 단위로 나눠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자금력이 탄탄하니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고 사업 성장이나 투자 기회가 생기면 과감히 도전할 수 있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같은 대위기 상황에는 더욱 빛을 발했다. 그는 IMF 때 경매 매물로 나온 명동 건물을 매입하며 현재 1000억원대 자산을 일구는 계기를 만들었다. 김 회장은 “젊을 때나 사업을 시작하는 시기에는 자기 일에 온전히 몰입해 목표에 다가갈 수 있는 기반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국내 증시가 폭락하자 이를 ‘인생역전’ 기회로 삼으려는 20~40대가 주식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황 회장은 “젊은 직장인들이 죄다 주식 얘기만 하고 있더라”면서 “자기 위치를 지키며 뚜렷한 목표를 세워 나가야 할 시기인데 다소 안타까운 게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뭐라도 갖다 팔면 돈이 됐던 과거와 지금은 분명히 다르다”면서도 “자신만의 길을 찾고, 그게 맞다 싶으면 죽기 살기로 임할 필요가 있다. 단순하지만 명확한 성공 법칙”이라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