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담방의 ‘생존수칙’…“접속시 번호·IP 주의하라”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0.03.29 14:00
  • 호수 158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범죄자들의 '세이프 헤이븐’ 텔레그램…추적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 없어

‘드루킹’ 김동원씨, 안희정 전 충남지사,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고담방’ 운영자 전아무개씨, 그리고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혐의로 구속되거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공통점은 또 있다. 이들과 관련된 사건의 중심엔 텔레그램이 있었다는 것이다.

텔레그램은 한때 ‘사이버 망명지’로 통했다. 기밀이 철저히 유지된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텔레그램 측도 보안성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단 이는 양날의 칼이다. 강력한 보안성이 불법 콘텐츠의 유통 경로마저 감춰버리기 때문이다. 일찍이 해외에선 텔레그램을 두고 ‘범죄자들의 세이프 헤이븐(Safe Haven·안전 피난처)’이란 낙인을 찍었다.

 

"짭새가 텔레 수사하겠냐"

“한국 짭새(경찰의 비속어)가 텔레(텔레그램) 수사하겠냐.” 고담방의 한 가입자는 지난해 8월 이와 같이 적었다. 텔레그램은 추적이 힘들어 불법행위를 잡기 어려울 것이란 취지에서다. 텔레그램의 보안은 ‘종단 간 암호화(E2EE·End to End Encryption)’란 기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는 메시지를 쓸 때부터 확인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내용을 암호화하는 기술이다. 암호를 풀 수 있는 키(key)는 수신자와 발신자만이 갖고 있다.

예를 들어 기존 메신저에선 발신자가 “안녕”이란 메시지를 보내면 전송 과정에서 ‘#!$^%’ 따위의 알 수 없는 기호로 암호화된다. 이것이 서버에 도착하면 해독돼 다시 “안녕”이란 원문으로 바뀐다. 반면에 텔레그램에선 “안녕”이란 메시지가 발신자의 단말기에서부터 먼저 암호화된다. 이는 서버에 전달돼도 해독되지 않고 그대로 암호 형태로 남아 있게 된다. 즉 서버를 뒤져도 메시지 원문을 확인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국내 수사 당국이 텔레그램 서버를 압수수색하더라도 소용없을 수 있다. 또 글로벌 보안매체 CSO는 “이용자의 대화 기록을 저장해 두는 것은 비영리 회사인 텔레그램에 비용이 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데이터를 보관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더군다나 텔레그램 서버는 그 위치마저 베일에 싸여 있다. 텔레그램은 홈페이지에 “우리 팀은 러시아를 떠나 베를린, 런던, 싱가포르 등에 본진을 차리고자 시도했다”며 “지금은 두바이에 있지만 규약이 강화되면 또 떠날 것”이라고 했다. 수사 협조 가능성도 미지수다. 텔레그램은 ‘사적 대화와 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금지’를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다.

 

바뀌는 텔레그램…”조사 협조할 것”

그러나 전혀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텔레그램 본사는 2018년 8월 “테러 조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텔레그램은 프라이버시 규약을 통해 “당신이 테러 용의자라는 법원의 결정을 받게 되면, 우리는 당신의 IP 주소와 전화번호를 관계 당국에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음란물 등 불법 콘텐츠의 유통 제재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텔레그램은 지난해 5월 인도 온라인 매체 TNM으로부터 ‘아동 성학대 자료를 어떻게 막고 있나’란 질문을 받고 이와 같이 답했다. “텔레그램 내 아동 학대와 테러리스트의 선전 등을 차단하기 위해 이용자들로부터 신고를 받아 처리하고 있으며, 자동 시스템과 인력을 통해 적극 조정하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은 고담방 내 별도 채팅방인 ‘생존가이드’에도 올라왔다. 운영진은 그러면서 "텔레그램도 아동 음란물·테러에 관해 협조한다고 합니다. 가입할 때 번호와 접속할 때 IP에 주의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라고 공지했다. 

텔레그램 밖에서 활동한 흔적도 n번방 가담자들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최종상 경찰청 사이버수사과장은 3월26일 KBS에 “텔레그램을 이용하더라도 결국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기에 트위터나 페이스북, 블로그 등에 올린다”며 “이런 부분은 국제 공조가 돼 있고 협조를 받아 수사한다”고 설명했다. 고담방 운영자 전씨도 블로그를 따로 관리한 바 있다.

텔레그램 고담방 내에서 외부 링크로 연결된 대화방 '생존가이드'.  운영진은 텔레그램 본사가 아동 성학대 자료에 대처하는 방법이 담긴 기사를 공유하며 "텔레그램도 아동 음란물·테러에 관해 협조한다고 합니다. 가입할 때 번호와 접속할 때 IP에 주의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라고 공지했다. ⓒ 텔레그램 캡처
텔레그램 고담방 내에서 외부 링크로 연결된 대화방 '생존가이드'. 운영진은 텔레그램 본사가 아동 성학대 자료에 대처하는 방법이 담긴 기사를 공유하며 "텔레그램도 아동 음란물·테러에 관해 협조한다고 합니다. 가입할 때 번호와 접속할 때 IP에 주의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라고 공지했다. ⓒ 텔레그램 캡처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